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신임 4팀장입니다. 줄여서 '신사팀장'이라고 할게요. 팀장으로서 경험도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 대표님께 당당히 배움을 청했습니다. 대표님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터득한 출판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아니 그 일부나마 제 것으로 만들어야 저희 팀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겠다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대표님과 식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지식을 저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웠기에, 다산북스 식구들은 물론 출판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독자들과 만나는지 궁금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그 세 번째 테마는 바로 "편집이란 무엇인가?"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출판 비즈니스에서 컨셉이 뭐기에 그렇게 중요한가요?
지난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컨셉(Concept)은 차별화된 아이디어(Idea)에 베네핏(Benefit)이 더해진 개념입니다(C=I+B). 새로운 아이디어로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힘(효용)이 바로 컨셉에 있지요. 그만큼 컨셉은 사람들을 주목시키고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군부 독재시절에는 “군부독재타도, 민주주의 쟁취!”라는 한마디가 그런 힘을 지닌 강력한 컨셉이었습니다. 출판에서의 컨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대정신을 읽는 좋은 컨셉의 책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셉력이 곧 편집자의 핵심 역량인 것이겠죠?
맞습니다. 달리 말하면 컨셉은 창의적인 사고의 핵심 결과물인 것이죠. 성공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보면 모두 어떤 일을 하건 컨셉부터 잡고 시작합니다. 특히 다른 콘텐츠와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요즘에는 컨셉의 우위성과 차별성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제목이 곧 컨셉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까요?
쉽게 말하면 제목은 컨셉의 화룡점정입니다. 컨셉을 한 마디 혹은 한 줄로 표현한 것이 제목인 것이죠. 그걸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카피고, 임팩트 있게 표현한 것이 이미지이고 디자인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컨셉을 선명하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물성화) 제목+카피+디자인인 것이죠.
좋은 컨셉을 구상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이 어떻게 트렌드에 올라타면서도 새로워 보일 수 있는가입니다. 트렌드에 올라타면 기존 책의 반복 같고, 무작정 새로우면 트렌드와 벗어나 있는 것 같으니까요.
좋은 지적입니다. 컨셉의 위대함이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입니다. 트렌드에 빗겨나 있는 책은 사람들이 잡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트렌드를 정확히 읽고 그 흐름을 내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질문해주신 것처럼 그러면서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겠죠. 차별화는 새로움과 다양성에 나옵니다. 요즈음에 ‘페미니즘’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를 어떻게 다양한 의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논의 새로운 생각들을 살펴보고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컨셉을 발견하게 됩니다. 좋은 컨셉이냐 아니냐의 판단 기준도 컨셉의 적합성(우위성)과 차별성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요?
핵심은 타깃 독자에 대한 철저한 관심과 이해로부터입니다. 피상적으로 20~30대 여자가 사겠지, 라는 정도의 독자 분석으로는 좋은 컨셉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책을 누가 읽고 어떻게 삶이 변할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독자와 동떨어지면 그저 원고에 매몰되어 기계적으로 책을 만들게 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깊게 고민하지 않게 되지요.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독자군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독자를 파악했다면 현재 그 독자들이 어떤 책을 사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건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발할 신간은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야 하니까요. 자기 색깔이 강한 편집자가 많은데, 이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자기 취향보다 시장을 신뢰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길 바랍니다.
평소에 컨셉력을 기를 수 있는 특별한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팔리는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서점에는 분야별로 베스트셀러 매대와 신간 매대가 다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책들이 판매되고 있는지 다 외우고 있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어떤 책들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시장에 어떤 책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자기 취향에 걸리는 것들만 보기 때문인데, 그러면 당연히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산북스가 지향하는 카테고리 전략의 출발이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서점이 나눠놓은 분야를 뛰어넘어 계속 생성되고 분화되는 시장의 진짜 카테고리를 끊임없이 읽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카테고리를 형성했는데, 이것이 계속 진화해서 ‘아들 성교육’ 세부 카테고리 시장까지 만들었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이 세부 카테고리를 개척한 셈이죠. 트렌드를 내 것으로 만들면서 새로운 제안으로 시장을 이끈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많지 않은 조그만 카테고리가 분야 전체를 집어삼키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회는 언제나 그런 시장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투’ 및 ‘대화법’ 카테고리가 그렇습니다. 자기계발 분야 안에 작은 카테고리로 여겨졌던 시장이 자기계발 분야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읽기 위해서는 책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줄 알아야 하고 언제나 내가 알고 있는 게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제든 선입견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새로운 기회가 눈에 보이는 것이죠.
역시 경쟁도서 분석은 한시도 게을리 하면 안 되겠습니다.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카테고리 분야의 책 10권만 읽어도 책을 만드는 수준이 달라집니다. 그것도 최근에 두각을 나타난 책을 읽으면 좋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의 스테디셀러도 검토해서 꼭 읽어야 합니다. 스테디셀러는 그 타겟 독자들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자동차도 스마트폰도 모두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 좋은 걸 만들기 위해 애쓰면서 지금 수준까지 올라온 겁니다. 출판 편집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컨셉을 충실히 구현해야 하는 표지문안 쓰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표지대지 컨펌을 하실 때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한마디로 말하면 완성도와 통일성입니다.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룬 표지문안이면 합격입니다. 가장 주의를 해야 할 부분은 동어반복이 있어서는 안 되고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심플한 솔루션과 메시지가 드러나야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표1부터 표4까지 각각의 역할에 대한 대표님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표1(앞표지)은 품격 있게 세일즈를 하는 공간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1에 담는 건 현명한 전략이 아닙니다. 너무 정보가 많으면 집중이 잘 되지 않습니다. 여백이 필요합니다. 그런 정보는 표4(뒤표지)에 담아야 하는데 이때에도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처럼 읽혀야 합니다. 표2(책 앞날개)의 역할은 여럿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저자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띠지는 철저히 광고지면이라고 생각하고, 광고 카피를 써야 합니다. 이 역할들이 제각기 조화를 이루면서 반복하지 않아야 좋은 표지문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라이팅이나 윤문 같은 본문 편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많은 편집자가 리라이팅과 윤문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편집자의 실력이 갈리는 중요한 업무 스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게 바로 원고 디렉팅입니다. 원고를 고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처음부터 좋은 원고가 나올 수 있도록 디렉팅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좋은 디렉팅을 하는 편집자를 귀신처럼 알아보고 신뢰합니다.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원고의 퀄리티를 높여야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고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원고 디렉팅을 저자에게 일방적 의존하게 되면 리라이팅과 윤문에 많은 시간을 뺏기게 됩니다. 그러나 원고는 원고본판의 법칙이 있듯이 편집자가 아무리 잘 고쳐도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차 구성의 묘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목과 표지가 책을 손에 쥐게 만들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면, 잘 구성된 목차는 그 책을 실제로 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목차는 내부 인테리어입니다. 아무리 입지와 브랜드가 좋은 집이라도 내부 인테리어가 형편없으면 실수요자의 선택을 받기 힘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컨셉이 일관성 있게 구성된 목차와 그 내용을 잘 조화시키면 독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반짝 팔리고 마는 책이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오래 팔리는 책의 비밀도 바로 잘 구성된 목차와 내용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