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신임 4팀장입니다. 줄여서 '신사팀장'이라고 할게요. 팀장으로서 경험도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 대표님께 당당히 배움을 청했습니다. 대표님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터득한 출판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아니 그 일부나마 제 것으로 만들어야 저희 팀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겠다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대표님과 식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지식을 저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웠기에, 다산북스 식구들은 물론 출판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독자들과 만나는지 궁금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그 첫 번째 테마는 바로 "출판 비즈니스란 무엇인가?"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비즈니스란 무엇인가?
모든 비즈니스의 본질은 거래입니다. 거래는 가치를 교환할 때 이뤄지죠. 그 거래를 쉽게 하기 위해 화폐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히 가치나 화폐에 대한 신뢰 없이는 그 어떤 거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화폐의 힘이 너무 세졌습니다.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독점적 지위를 갖고 돈으로 돈을 버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기 때문에 굳이 거래를 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가상화폐에 대해서도 여러 다양한 의미와 해석이 있지만, 결국 거래가 필요 없는 화폐로서의 기능이 극대화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게 본질처럼 되고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하지만 비즈니스의 본질은 거래입니다. 그러니까 비즈니스를 잘한다는 것은 시장에서 거래의 빈도수를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거래의 빈도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신뢰도를 높여야 합니다. 이런 개념을 ‘충성 고객’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충성 고객을 위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면 그들은 그 자체로 플랫폼이 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바로 ‘매칭’입니다. 그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도 그것을 원하는 소비자와 정확히 매칭될 때만이 가치 있는 거래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니까 모든 비즈니스의 성패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매칭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도덕적 판단도 끼어들지 못합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오직 인간에게 효과적인 가치를 줄 수 있는 것만이 살아남으니까요.
비즈니스의 핵심은 성과다
저는 비즈니스를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에 비유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무조건 망한다는 얘기입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일한 방법은 물살을 이길 만한 근육을 기르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그것이 바로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성과가 있을 때만이 지식 노동자들의 자아실현도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성과는 자기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자아실현에 다가가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
비즈니스의 핵심인 성과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 얘기는 아니고 피터 드러커의 말을 제 방식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선 우선 공동체 감각이 발달해야 합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 공동체에 공헌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만이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덧붙여 이런 생각을 해야 자신의 존재 이유도 찾을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자신의 업(karma)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곧 성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만 보는 무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이 세상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생명을 주신 것만으로 감사해 하며, 세상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집중해서 해결책을 찾고,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킬 줄 압니다. 그런 사람만이 세상 전체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책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
성과를 고민한다면 바로 이 영향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편집자 역시 자신이 만드는 책이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집중을 잘 못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책이 가지는 영향력보다는 자기의 미래만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영향력과 책으로 기여할 공동체에 대해 고민할 때 자기의 미래도 밝아집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숭고하지만, 그것만 고민하면 절대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를 넘어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공동체에 대한 공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과 경쟁사 대비 비용을 통제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과 비용을 통제하는 일 모두 창의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것, 그리고 비용을 마구 쓰면서 하는 것에 새로운 창의성이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진입장벽을 높일 때 혁신이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과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성과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컨셉 비즈니스를 지향한 다산북스
출판 비즈니스에 대해 말하기 앞서 비즈니스에 대해 길게 언급한 이유는 출판 역시 비즈니스의 하나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출판을 비즈니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합니다. 특히 출판 업계에 처음 들어오는 신입들의 경우에는 그저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지원했다는 사람이 많은데, 성과를 내는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출판을 비즈니스의 차원에서 접근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럼 이제 출판 비즈니스로 조금 좁혀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저는 출판 비즈니스의 핵심을 ‘저자 비즈니스’와 ‘컨셉 비즈니스’로 규정합니다. 전통적인 출판사들은 주로 저자 비즈니스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다산북스는 지식의 즐거움을 소수 엘리트만이 아닌 대중과 함께 나누는 애민정신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기 때문에 컨셉 비즈니스를 지향했습니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게 결정적 차이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1세대 출판부터 5세대 출판까지!
우리가 잘 아는 대형 출판사 대부분은 저자 비즈니스로 성공했습니다. 창비, 민음사, 한길사 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보다 더 이전에도 출판사는 있었지만 그때는 사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출판사들의 창립자들이 진정한 출판업의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세대 출판은 실천문학, 사계절, 김영사가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하, 김남주 시인 등이 이때 등장합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2세대의 눈에 1세대 출판은 계몽적이기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세대였습니다.
그러다 소련이 붕괴되고 학생운동이 몰락하면서 출판 시장의 분위기도 많이 바뀝니다. 출판 시장에도 서태지 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거죠. 바로 3세대 출판의 대표는 문학동네입니다. 엘리트문학에서 소외된 사람이 만들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면서 오래지 않아 시장을 장악합니다. 그 과정에서 몰락하는 출판사가 많았지만, 창비는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버텼습니다.
4세대는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에 성장한 경제경영 출판사들입니다. 21세기북스가 대표주자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제경영,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커집니다. 자본의 힘이 점점 커지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그 힘이 극대화 된 게 5세대 출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웅진의 임프린트 시스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자본의 힘으로 모든 걸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되기 시작합니다. 위즈덤하우스와 다산북스도 약간은 다른 의미에서 5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을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생각한 출판사거든요.
컨셉 비즈니스와 저자 비즈니스의 조화
컨셉 비즈니스는 바로 이 5세대 출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 시대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컨셉이 차지한 겁니다. 컨셉 비즈니스를 제대로 해낸 세 출판사들이 크게 성장을 했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저자도 좋은 컨셉만 만나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대중의 마음을 읽으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결국 선배 메이저 출판사들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은 출판업에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신념으로 뭉친 집단이 인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추구했기에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저자 비즈니스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저자와의 친밀한 관계,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편집자들이 디렉팅하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컨셉 비즈니스가 발달하면서 편집자들의 그런 역량은 요즘 많이 떨어진 느낌입니다. 저자와의 친밀도도 과거와 비하면 많이 낮아졌죠.
결국 다음 세대에서 출판 업계를 리딩하기 위해서는 저자 비즈니스와 컨셉 비즈니스를 결합해야 합니다. 다산북스가 지향하는 바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 차별화된 베네핏을 실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통해 높은 수준의 컨셉 비즈니스를 구현하고, 그러면서도 좋은 저자를 발굴해 그들을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저자로 브랜딩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저자 비즈니스를 구현할 때만이 새로운 시대의 출판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되어야 하는 6세대 출판
그렇다면 6세대 출판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출판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5세대에서 실험되었던 임프린트 시스템과는 좀 다릅니다.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처음 시작됐던 임프린트 시스템은 웅진 단행본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결국 오래 버티지는 못했습니다. 형식만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본도 충분히 있고 외부에서 대한민국 출판계의 최고 인재를 영입했는데도 실패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플랫폼의 핵심은 지식과 정보는 물론 성공 경험까지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잘하는 사람을 데려와 그의 노하우를 빼먹겠다는 태도로는 플랫폼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성공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내부 경쟁만 치열해지다 보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요즘 젊은 후배들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우리 세대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새로운 트렌드 등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은데, 그것을 비즈니스의 핵심과는 연결을 잘 못 시키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책 광고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4세대 선배들은 신문에서 이미지 광고를 했고, 저희 5세대는 신문에서 기사형 광고를 했습니다. 독자가 원하는 걸 명확히 파악했고, 이를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광고해 시장을 창출했습니다. 각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잘 알고 기민하게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6세대의 주역이 될 후배 출판인들은 따라 가는 데 급급합니다. 신문 매체의 힘이 줄어들고 SNS의 힘이 커지는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어디에서 뭐가 좀 된다 싶으면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대정신을 읽고 시장을 이끌고 가겠다는 태도와 각오가 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때보다 출판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게임, 웹툰 등 다른 경쟁 콘텐츠에 시장을 많이 빼앗긴 탓도 크겠지요.
출판업계가 좋은 후배 출판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못 만들어준 데는 선배들의 책임도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달리 보면 지금도 출판 비즈니스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비즈니스의 본질에 집중해 독자의 욕구를 제대로 읽어내는 데서 돌파구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수평문화의 핵심은 자유로운 질문
마지막으로 조직 문화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창조성이 중요한 비즈니스인 만큼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수평 문화의 핵심은 누구나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오랜 세월 질문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질문하는 것도 어렵고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런 경직성을 깨는 게 조직 전체를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수평 문화로 인해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일을 논할 때 계급장을 떼는 것입니다. 좋은 신념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끝까지 듣고, 반대 의견이 있어도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이 살아 숨 쉴 때만이 진정한 수평 문화가 가능한 것이죠. 자기 의견이 없는 기계적인 수평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울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하면 스스로 독립성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차별화할 수 있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차별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울 수 있고 공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다른 사람과 함께 울 수 있는 사람이 출판 비즈니스도 잘합니다. 다른 사람과 카타르시스나 비극적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만든 자기만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절대 다른 누군가와 공명할 수 없습니다.
책이나 신문광고에도 그런 게 다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뭐 모르면 인생이 끝장난다”는 식의 카피는 누구도 울리지 못합니다. 독자들 삶의 질적 변화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언제 어디에서나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