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김선식 대표의 출판 잘하는 법] 9~10번째 인터뷰에서는 출판 경영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꼭 출판이 아니더라도 창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팀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나 절실히 깨달은 건 결국 사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많은 경영자들이 인문학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지 그 이유를 좀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시고 학생 운동도 하신 걸로 아는데, 그 덕에 남다른 경영 철학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학생 운동과 경영이 똑같다고 느꼈어요. 회사에 경영지원팀, 재무팀, 마케팅팀, 홍보팀, 기획팀이 있는 것처럼 학생 운동 조직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팀이 다 있거든요. 단지 경영은 이익을 목표로 하는 반면, 학생 운동은 권력 교체나 사회 정의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 달랐어요. 이것은 결국 현대 사회는 조직 사회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갖춘 조직이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죠.

경영이라 하면 혁신이라는 말이 바로 따라 붙을 정도로 둘이 긴밀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직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환경이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경영은 변하는 환경 속에서 조직이 가진 자원을 가지고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모든 조직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데, 그러다 보면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푼다는 것이 바로 위험 속에 기회를 찾아낸다는 것이죠. 조직이 위기에 처해 있을수록 경영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무엇인지, 다가온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서 극복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혁신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쓰여 하나마나한 말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 아닌가요?
조지프 슘페터는 케인즈와 함께 경제학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 받던 인물입니다. 그가 제안한 개념 중에 ‘창조적 파괴’란 말이 있어요. 기존의 주류 시장을 만족시키는 것을 뛰어 넘어 기존 시장을 대체해버릴 정도로 파괴적인 혁신을 이어나가야 기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는 얘기인데 이런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죽을 다 벗겨낼 정도로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슘페터는 그걸 자본주의의 본질로 봤어요.

그렇게 변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경영자의 자질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제가 요즘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이 행복한 경영입니다. 경영자가 행복해야 경영을 잘할 수 있거든요. 독일 경제학자 하노 벡이 쓴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행복을 결정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설명하는데, 그 첫 번째 요소로 유전자를 이야기합니다. 무려 행복의 50%를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합니다. 성격, 기질 등 모든 면에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가 건강이고, 셋째가 일과 소득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종교, 다섯 번째가 우정입니다. 많은 사람이 관계에 목을 매지만 실제 우리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건 그리 크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저도 행복한 경영을 하기 위해 요즘 건강에 가장 많은 노력을 쏟는 것 같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다음으로 일의 전문성(경영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미션, 비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과 소득을 높여주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머지 종교, 우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화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것이군요.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것 같아요. 호모사피엔스를 움직이는 세 가지 동기 중 둘은 동물과 같아요. 생존과 번식이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세 번째 동기인 자아실현입니다. 다른 말로 풀면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싶은 욕망이에요. 프로이트가 성적인 만족과 불만족의 문제에 천착했다면, 그의 제자인 아들러는 자아실현에 보다 초점을 맞춰 행복의 의미를 밝혔습니다. 좋은 경영자는 구성원들의 자아실현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소개된 공동체 감각이나 타인에 대한 공헌 같은 개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죠?
네, 아들러는 행복이라는 게 존재 그 자체에서 나오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존재함으로써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에게 공헌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자아실현인 것입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누군가의 칭찬과 비난에도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그러지 못하고 자신이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공동체 감각도 그래서 발휘되는 것이고요.

공헌이나 자아실현은 성과와도 연결되는 개념인 것 같아요.
앞서 소개한 슘페터도 죽기 직전 자신이 사회에 공헌한 바가 적었음을 후회했다고 하는데, 그의 제자인 피터 드러커는 그 말에 큰 감명을 받고 공헌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가 경영학을 창시하고, 조직의 성장을 위해 성과라는 개념을 정리할 때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한 것이 바로 ‘어떻게 이 사회에 공헌할 것인가?’입니다. 이 문제를 고민한 사람만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좀 더 자세히 풀어주시지요.
성과를 내는 사람에겐 다섯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성과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성과가 무엇인지 물어야 하는 것이죠. 성과는 모두 이 질문, ‘어떻게 이 사회에 공헌할 것인가?’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인간에게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공헌하는 데 할애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셋째는 그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고, 넷째는 이를 위해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자기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죠. 이 다섯 가지를 습관적으로 터득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는데, 역시 핵심은 공헌입니다.
성과라는 게 꼭 생산성 측면에서만 말하는 게 아닌 것이죠?
그렇습니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했다면, 다른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성과입니다. 이를 위해선 내가 가진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고,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하나의 생산수단을 가져야 합니다. 그 생산수단을 많은 사람이 자아실현을 도울 수 있도록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큰 성과입니다.

아직 좀 추상적인 것 같은데, 성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성과는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단계는 직접적인 매출을 내는 것이죠. 편의점 사업이든 뭐든 일단 매출이 안 나온다면 접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가치를 생산하고 재반복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셋 번째 단계는 인재양성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피터 드러커는 성과에 대해 굉장히 심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것만 제대로 알아도 좋은 경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경영자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성과를 내는 방식을 터득하게 하고 스스로 인재로 성장하게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실제 해내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 같아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사실 2단계인 시스템 구축과 3단계인 인재 양성에 비하면 1단계 매출 만들기는 굉장히 단순한 과제입니다. 핵심은 효율을 효과로 바꾸는 것입니다. 효율은 노동력으로 하는 것이지만, 효과는 시스템과 생각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효율이 근육의 힘으로 하는 거라면, 효과는 근육의 힘뿐만 아니라 창의성까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또 세 가지가 필요하지요. 첫째, ‘고객의 기대 넘어서기’, 둘째, ‘나를 잃고 일에 전념하기’, 셋째, ‘경쟁자보다 비용을 낮게 통제하기’입니다. 이 세 가지 목표를 통해 효율을 효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1단계도 통과하지 못하는 회사나 팀이 태반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시스템 구축이나 인재 양성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매출의 벽을 못 넘어 이직하거나 업을 바꾸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방식과 취향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먼저 성공한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방식을 이해하면 1단계는 무조건 통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로 발전해야 하는데,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지요. 실패도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으므로 실패했을 때는 이를 시행착오로 여기고 전략과 방향을 수정함으로써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하는데, 계속 실패함에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이죠.
1단계를 통과한 리더가 2단계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개인의 취향이나 입장에 따라 성과가 들쭉날쭉해지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성공한 경험의 가치를 재반복, 재생산하기 위해 좋은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경영이 할 일은 중요한 가치를 규정하고 공통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합니다.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조직이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지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것만으로도 경영의 깊은 단계에 진입한 것이죠. 그리고 단순히 매뉴얼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회사가 정한 매뉴얼과 실제 업무 사이에 갭이 있을 때 이를 디테일하게 수정 보완하여 자기만의 노하우와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게 없는 사람은 매뉴얼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거니까요. 인간은 마음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디테일에 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매뉴얼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면 성공한 경험들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3단계는 인재 양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보다 한국의 출판사들이 이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필수적입니다. 잠재력이 있는 인재를 뽑아 내부에서 육성하는 것, 다시 말해 누굴 뽑고 어디에서 어떻게 교육하는가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당장의 능력이 부족해도 성장에 대한 욕구와 배워서 인재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채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인재를 키워내는 과정에서 경영의 최대 성과가 나오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이 상당히 큽니다. 그들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꾸준한 인재 양성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최소 3년 정도 조직이 잘 굴러가면 성과를 내면서도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는 조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적인 사고로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면 개인의 성장에도 조직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