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책을 만드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쓰는 일과 같다. 나는 언제나 ‘좋은 시’를 쓰고자 가슴앓이를 한다. 무슨 책을 만들어도 독자의 마음 한편을 강하게 울리고 싶다. 나의 화두는 시적으로 사유하되 과학적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만든 책이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올 때 나는 그 책을 좋은 책이라고 여긴다. 좋은 시도 쓰고 나면 언제나 내게 말을 걸어오고 독자의 심장에도 말을 붙인다. 그쯤 되면 책도 자식이나 애인처럼 예뻐 보이고, 자꾸만 보듬고 싶어진다. 그런 상태를 조용히 즐기다 보면 콘셉트, 제목, 목차, 카피, 마케팅마저 스스로 말을 건네오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책을 구성하는 분신들이 건네오는 그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나는 책 만드는 일을 25년째 해오고 있다. 다산북스를 창업해서 운영한 지도 1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9년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침 없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책 만드는 일을 다른 어떤 일보다 귀하게 여겼던 데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책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좋은 시를 한 편 쓰는 일과 같다”라는 말을 아끼고 사랑한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자신의 마음 한편이 울려야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전할 수 있다. 그 울림이 깊고 보편적이어서 크게 사랑받는 것은 시인의 작품 중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그 한 편 한 편이 똑같이 소중하다. 시인의 그 첫 울림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한다.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시상을 잡고 첫 구절을 썼으리라. 거기에 바닥을 다지고 뼈대를 세워 긴장감이란 살을 채워 넣었으리라. 그러고는 다시 헐고 세우기를 몇백 번, 또 읽기를 수백 번. 결국 모든 구절이 마음에 걸리지 않고 자연스레 흐를 때에야 시인은 자기 품에서 시를 놓아준다.
시인의 가슴에 닿는 첫 번째 울림소리가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콘셉트다. 이 울림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야만 우리는 책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좋은 울림소리는 당연히 세상과 통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첫 울림의 소리를 찾기 위해 먼저 시인(저자)에게 그 울림소리를 잉태한 비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을 알고 싶으면 언제나 첫 질문은 이래야 한다.
“왜 이 책을 꼭 써야만 했나요?”
그 비밀을 제대로 포착하느냐 마느냐에 책의 성패가 결정 난다. 그러나 책을 만들고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점점 형식적인 프로세스에만 집착할 뿐 스스로 한 사람의 시인(저자)이 되어 그 위치에 서보지 않는다. 첫 울림의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서는 아마 수백 번, 때로는 수천 번 저자와 독자의 무의식 속으로 들락날락하기를 반복해야 그 첫 울림의 소리를 귀신같이 잡아낼 수 있다.

“‘좋은 책을 기획한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다’라는 진리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많은 사람이 이 소중한 진리를 버리고 마구 기획을 하고 책을 만든다. 미친 짓이다. 나도 미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꾸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 마음을 울리는 것, 공명(共鳴)하는 것이 있을 때만 책을 기획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출간하는 책이 많아질수록 독자나 저자와 공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함께 울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책이 만들어지랴. 그렇기에 그 공명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책 만들기를 잠시 중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는 무작정 많은 책을 만들기보다 내가 만든 단 한 권을 통해서라도 그 첫 울림의 소리를 정확히 들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책은 저마다 자신만의 울음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 지식, 감동도 인간의 가슴속에서 울려 나오는 울음의 한 줄기다. 울림이 반복되다 보면 울음이 되고 긴장감 있는 울음소리는 천만인의 가슴을 적시는 시대성이 된다.
공명(共鳴), 함께 운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최고의 깊이이며 새로움이다.
내가 다시 25년 전의 새내기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내 마음을 공명시키는 이유를 찾고 싶다. 단지 성과를 잘 내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내 삶이 온몸으로 공명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 그런 이유를 찾을 때 책 만들기(기획)는 하나의 새로움으로 우리 삶에 다가온다. 새로움은 깊이에서 나온다. 우리가 책 만들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깊이 빠져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깊이의 최고 경지는 공명(共鳴)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이유가 있을 때 그것을 향해 매진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에게 책을 만드는 이유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 속에서도 공명의 씨앗이 싹튼다. 그래서 출판계 후배들이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루빨리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공명의 씨앗을 가슴에 품기를 바란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가슴속에 울음이 가득 고여 혼자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 비로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진짜 이유, 책을 만드는 진짜 이유가 그들의 가슴속에도 귀중한 선물처럼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