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다산북스 콘텐츠개발 1팀장입니다. 2년 전 '신사팀장'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콘텐츠개발 1팀이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인터뷰에서는 다산북스 15년의 역사와 대표님의 출판 노하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앞으로 다산북스가 그려나갈 출판의 미래와 출판 시장을 이끌어나갈 다산북스 인재들이 유념해야 하는 점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산북스 식구들은 물론 출판업 종사자, 그 외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과 다산북스 도서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의미 있는 내용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Q.다산북스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진입해 적극적으로 디지털콘텐츠 투자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디지털 부문에 회사의 역량을 투자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와,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디지털 분야의 전망도 궁금합니다.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은 ‘변화를 다루는 능력’입니다. 변화에 잘 대응하고 적응할 수 있는가가 조직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우리가 ‘트렌드 선도자’가 되어 그런 변화를 이끌어가는 조직이 되면 금상첨화지요.
사실 다산북스는 디지털 사업 쪽으로 그렇게 빨리 진입하진 않았습니다. 빨리 했으면 벌써 몇 백 억짜리 사업체가 되었겠지요. 디지털이라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변화가 감지되면 그 변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변화의 중심에 몸을 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실체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면 그 사람에게는 변화가 무엇인지, 기회가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변화의 다른 말은 기회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골치 아픈 일이기는 하지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바빠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는 거예요. 우리는 절대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 사업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무얼 하든 가장 빠른 길은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겁니다. 일단 잘하는 사람을 주체로 세우고 작은 조직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배워 가면 됩니다.

디지털 사업을 하면서 가장 뜨거웠던 논쟁은 ‘디지털 도서가 종이책을 잡아먹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봐도 절대 그렇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방법에 대해 빠르게 학습했고, 그 이후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 출간하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전자책도 판매를 하려면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전자책에 대한 마케팅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가고 있습니다. 저는 전자책의 대두를 ‘독자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으로 보았고, 디지털 도서와 종이책 상호 간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팀을 세우고 나서 전자책을 만드는 것 외에 두 번째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제가 디지털 팀장에게 ‘현재의 디지털 팀은 종이책이 다 만들어놓은 것을 전환하는 역할에 불과하니 이제는 디지털 팀 고유의 콘텐츠를 생산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지요. 외부에서 웹 소설 쪽으로 잘하는 팀장과 팀원들을 영입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종이책 기반 도서가 100%였는데, 점점 디지털 팀 고유의 콘텐츠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종수도 많아졌습니다. 한 3년 정도 디지털 콘텐츠를 쌓기 위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지요. 경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디지털 팀원들이 야근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11시~12시까지 앉아서 상당히 많은 양의 원고를 작업했습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아 결단했습니다. 종수를 반으로 줄이라고 주문했습니다. 1년에 120종을 만든다고 해서, 과감히 50종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습니다. 팀원도 더 늘려서, 양을 늘리기보다는 이제는 좋은 웹 소설에 투자하고 승부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지금은 종이책을 기반으로 한 전자책보다 웹 소설 등 디지털 팀 고유의 콘텐츠 매출이 조금 더 크니, 이제 디지털 콘텐츠팀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어쨌든 그 결과 다산북스 내 디지털콘텐츠 본부의 조직이 상당히 규모가 커졌습니다.
네, 그렇지요. 현재 디지털 콘텐츠 본부는 다른 별도의 개발팀에 인원이 비해 많습니다.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50억 정도 매출을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 쪽으로 빠르게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웹툰은 사실 투자금이 많이 드는 사업입니다. 먼저 빠르게 전문가를 데려와야 했지요. 비즈니스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 저의 일관된 철학 중에 하나입니다. ‘좋은 웹툰 하나를 잘 만들어서 이것을 해외로 수출해 50억~100억 원의 매출을 만들자’고 먼저 본부장이 포부를 밝혔으니까 저도 물론 좋다고 했지요.


우리가 단행본 전자책 쪽에서는 매출 1위이지만, 다른 거대 플랫폼을 상대하기는 너무 힘듭니다. 카카오, 리디북스, 네이버, 문피아 등등의 플랫폼과 디지털 콘텐츠 전문출판사들, 즉 디앤씨미디어, 학산, 서울문화사 등등에 비하면 그들 매출액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10년 조금 넘는 디지털 사업으로 말이지요. 우리는 이제 막 30억 원 정도를 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저는 우리가 전자책 비즈니스를 엄청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인식 전환이 늦었고 집중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 쪽으로 활짝 열린 시장을 자기화하지 못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도 늦게 시작해서 차근차근 성과를 만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디지털 콘텐츠처럼 큰소리영어, 자생력 연구소, 코딩, 큰글자도서, 오디오북 등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신사업 분야에 여럿 투자를 진행하셨는데,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신 건지,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확실한 가능성을 알고 투자했다면 제가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요.(웃음) 큰소리영어의 경우에는 사실 제가 원래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큰소리영어』 책을 우리 출판사에서 곽세훈 선생님이 책을 출간하고 갑자기 몇 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영어교육에 대한 콘텐츠에 대한 목마름과 열망이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한국의 영어 교육의 문제를 꼭 해결하기 위해 책을 출간하셨고 저도 그 분에게 감동을 받아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지로 나섰습니다. 그 분은 세 자녀들을 『큰소리영어』방식으로 가르치셨고 결국 자녀들은 모두 코넬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라이스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물론 자녀들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분과 제가 뜻이 통했다는 것입니다. 왜 한국은 영어 공부에 이렇게 많은 비용을 쓰는데 효과가 없을까? 영어 사대주의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기타 등등 고민이 많았지요.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 책임을 넘겨받은 것입니다. 그 분이 제게 씨앗을 뿌리고 가신 셈이지요. 그래서 수익을 많이 냈냐고요? 지금 8년째 하고 있는데 큰 수익 못 냈습니다. 사실 사업이란 게 궁극적으로 보면 ‘3년 안에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3년 안에 토대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 대부분 큰 결실을 거두지 못합니다. 저는 큰소리 영어 교육 사업을 통해 교육 분야에 대한 제 사업적 능력이 모자람을 여실히 공부했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업적인 주체로 영어 문제를 내 문제로 보고 스스로 그것을 해결하고 풀어내야 하는데 그걸 실천하지 못한 것이지요.
두 번째로 자생력연구소(다산 전인교육 캠퍼스)는 저희가 송인섭교수님과 『송인섭 교수의 공부는 전략이다』라는 책을 냈어요. 교육에 대한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짚은 책인데요. 공부라는 게 학원에 가서 앉아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스스로 해야 하는 거예요. 공부뿐인가요. 영어 공부도 지루함을 견뎌야 하고 출판 공부할 때도 카피도 혼자 쓰고 디자인도 혼자 하고, 어느 정도 고독한 시간을 좀 견뎌야 하는 겁니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때 제대로 알게 되는 거지요. 송인섭 교수님의 『송인섭 교수의 공부는 전략이다』는 자기주도 학습법의 개념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제시한 책입니다. 이 분이 교육 심리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신데 숙대에서 교수로 계실 때부터 교원, 대교, 웅진 같은 곳에서 심리개발 검사도 개발해주셨고 교육연구 관련 국가 프로젝트에도 여럿 참여하셨고요.
교수직을 퇴임하시고 30년 동안 모아 온 연구 성과와 데이터를 다 저에게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자신은 그냥 학문만 연구하는 사람이지 이걸 알리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면서요. 저에게 2~3년 동안 계속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뜻을 받아들여 자생력 연구소를 함께 세웠습니다. 자생력이란 AI시대에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자기 일에 자신감이 있고 그 일을 할 때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자생력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이지요. 문제 하나를 풀어도 자신감 있게 풀고 또 그 문제를 행복하게 풀어야 합니다. 그저 반복해서 푸는 건 기계나 하는 일이잖아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생력은 꼭 필요합니다. 자생력의 핵심은 ‘공감적 창의성’이니까요. 공감적 창의성이 있는 아이들은 공감을 통해 그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풀어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을 위해 그런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파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 하고 있습니다.

코딩은, 이것 역시 제가 우리나라 미래 교육이 조금 걱정이 되서 뛰어든 사업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의 코딩 경쟁력이 떨어지면 디지털 경쟁력을 잃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코딩 교육은 정식 교과과정이 17시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할까요? 영어를 17시간 공부한다고 그것을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좀 더 체계적인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이 외우는 지식 교육에서 벗어나 코딩을 열심히 교육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미국, 영국, 일본, 중국을 우리가 앞설 수 있습니다.
코딩은 앞으로 미래 세계에서 꼭 필요한 언어입니다. 코딩이라는 게 뭔가요? 코드를 연결하는 것이잖아요. 자동차와 같은 하드웨어는 겉모습이고,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작동합니다. 코딩은 자동차의 뇌, 소프트웨어를 작동하게 하는 기초 언어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 만들어진 것을 좋아하지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불편하더라도 직접 만들어보는 게 중요하지요. 창조적 메이커의 시대입니다. 코딩은 영어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낮아 교육하면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영역입니다. 사실 제 본업(출판업)이나 잘하지 나라와 교육까지 고민한다고 누군가는 저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여러 가지 신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계속 진행하는 것은 꼭 그런 사명감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저자들을 만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힘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Q.큰글자도서와 오디오북이 남았습니다.
코딩교육사업, 자생력연구소, 그리고 큰소리영어를 합쳐서 신사업본부에 배치했는데 그 팀이 매출이 저조해서 굶어죽게 생긴 거예요. 뭘 해야 하나 항상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본부장 교육을 회사 내에서 했는데, 그때 새로운 카테고리를 찾다가 ‘큰글자도서’라는 분야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다른 회사에서 큰글자 도서를 담당했던 팀장이 우리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이력을 보니 신사업 쪽에 배치하는 게 제격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글자도서 신사업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책을 만들 때 직원들에게 글자 좀 크게 해주면 안 되느냐고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 글자가 작아도 괜찮았던 모양이에요. 지금 굉장히 많은 베이비부머들이 은퇴를 시작했지요. 그 사람들은 현재 세대보다 자본주의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파트값이 오르는 걸 혜택으로 경험한 세대니까요. 상대적으로 돈이 있는 계층이지요. 게다가 그 세대부터 대학에 50% 정도 진학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은퇴하고 어디로 가느냐? 갈 곳이 없으니 도서관에 많이 갑니다. 교육도 받고 돈도 있는 세대들이 도서관에 가서 인문교양서를 많이 읽어요. 또 공부도 많이 하고요. 저는 ‘그 사람들을 위해 큰글자도서가 필요하겠구나, 이게 기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큰글자 도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만드는 회사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디자인이나 편집에 신경을 많이 안 썼습니다. 도서관 수요가 있다 보니 처음에는 자기 회사에서 잘 안 팔리는 책을 고가로 만들어 주로 공급했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양질의 큰글자 도서를 만들어보자.’ 우리 책 중에 제일 좋은 책, 가장 최신의 책을 큰글자 도서로 만들어 타깃 독자에게 가치를 주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회사 책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책까지도 의뢰를 받아 제작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큰글자 도서의 플랫폼이 되어 1000종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한 해 300종 정도를 목표로 제작하고 있는데요. 300종을 해서 한 달에 1억 원의 매출이 생겼다면, 1000종을 하면 30~40억 정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저희는 2~3년 안에 1000종 정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사실 큰글자 도서 사업은 타이밍을 제대로 맞춘 우리에게 운이 좋은 사업입니다. 코딩 쪽으로 성과가 빠르게 나지 않다 보니 이쪽을 구상하게 되었지요. 저희는 기존 사업자들과는 다른 마인드로 접근했기 때문에 유통사와 도서관 사서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잘된 진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북이라는 것도 새로운 카테고리입니다. 내년에 사옥에 입주하게 되면 오디오 제작 스튜디오를 만들 계획입니다. 오디오북을 스스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을 만들고 종수를 늘려 본격적인 오디오북 시대를 준비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