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김선식 대표의 출판 잘하는 법] 6~8번째 인터뷰에서는 마케팅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원래 다른 인터뷰처럼 1회로 구성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많이 길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무려 3회차 분량이 나왔습니다. 그만큼 마케팅은 출판 전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인 거겠죠. 그럼 마케팅 잘하는 걸로 소문난 다산북스의 마케팅 노하우를 김선식 대표님께 직접 한번 들어볼까요?
이번에는 시장조사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기본은 서점 매대에, 그러니까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신간 매대에 있습니다. 매대에 어떤 책들이 놓여 있고 어느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고 있는지 파악하는 겁니다. 먼저 눈과 마음으로 이 책들을 보고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책들이 눈과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와야 합니다. 책을 보는 눈썰미와 감각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단순히 현 시점의 매대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매대를 구성하고 있는 도서의 구성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히스토리까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책의 히스토리(운명_책의 삶과 죽음)를 알려면 그 책을 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책의 시장조사는 제대로 읽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야 한 카테고리가 어떻게 융합화고 분화하는지 눈에 보이고, 앞으로 어떤 책이 시장을 이끌고 갈지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대표님도 예전에 마케터 생활을 해보셨는데, 그런 식으로 시장조사를 하셨던 건가요?
네, 저는 이 과정을 ‘책방 순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수시로 서점을 한 바퀴 돌면서 각 매대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통째로 외우고 마음으로 느끼는 연습을 10년 이상 반복했습니다. 처음엔 좀 어렵고 귀찮지만, 조금만 하다 보면 출판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디테일한 사정까지 한눈에 다가옵니다. 동시에 경쟁 출판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전략으로 시장에 나서는지 등 각각의 장점과 단점까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생활이 되고 체화되면 자연스럽게 매출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성장해왔습니다.

그게 눈에 보이면 당신은 이미 마케터!”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특히 판단이 제대로 안 설 때일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의문이 생기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해야 합니다. 서점 MD부터 저자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야 합니다. 독자와 가장 가까운 서점 직원과 콘텐츠와 가장 가까운 저자의 얘기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꼭 함께 듣고 동시에 참고해야 합니다. 회사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만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듯이 전문가가 될수록 맹점에 빠질 위험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시장조사를 할 때 자신의 구상을 점검할 수 있는 친밀한 네트워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독자의 마음을 미리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게 시장조사의 목적입니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두 번 성공하면 자신감이 많이 생기지만, 어떤 성공도 다음 책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책마다 고유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걸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때 큰 힘을 발휘하는 게 시장조사지요. 콘텐츠에 매몰되어 그 가치를 찾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야 하니까요. 크리에이티브의 핵심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는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가치의 관점을 확보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저자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건 뭔가요?
저자의 유명세에 쉽게 업어가거나, 각종 대중 활동으로 독자와의 만남 빈도수를 높이는 것을 저자 마케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게 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해보니 맑고 진실한 저자의 마음을 전할 때 비로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자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도 이 진정성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모든 저자에겐 이 책을 집필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다. 이 동기가 순수하고 진실하며 시대적으로 의미가 있음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저자 마케팅의 핵심입니다.
아,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요?
<덕혜옹주>가 좋은 예입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제게 무명작가라 성공하지 못할 거라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권비영 작가에겐 같은 여자로서 덕혜옹주를 바라볼 때 느끼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덕혜옹주’라는 캐릭터와 합쳐지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온 작가의 말이 “여자로서, 한국인으로서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입니다. 이 부분을 마케터가 발견한다면 작가의 진실한 마음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겠죠.

아, 역시 어설프게 머리를 쓰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마케팅은 감성을 전달하는 게 핵심입니다. 독자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어루만져야 해요. 그리고 그건 책을 쓴 저자들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편집자는 저자의 의미 있으면서도 선한 의도를 찾아내야 합니다. 저자의 내면에 숨어 있는 히스토리를 찾아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이죠. 이런 메시지가 있어야 저자 인터뷰 기사가 한 번을 나와도 판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진정성이 없으면 여기저기 노출이 많이 된다고 해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습니다. 머리로 쓴 카피는 절대 독자를 울리지 못합니다. 저자의 진정성 있는 마음, 나아가 그 진정성을 전달 받은 독자의 서평 등을 카피에 활용해야 합니다.
저도 반성이 많이 됩니다.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조금 더 진실성을 갖고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저자의 온기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진실된 히스토리를 찾아내 저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면 됩니다. 그렇게 저자의 출간 리스트와 활동이 쌓이면 고유의 브랜드를 갖게 될 겁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저자 브랜딩이니까요. 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출간 프로세스 전 과정에 저자를 참여시켜야 가능한 일입니다. 집필은 저자가, 편집은 편집자가 식으로 분절되면 저자 마케팅의 여지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점점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보다 정확한 독자를 겨냥한 마케팅이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분야별로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여전히 소설은 불특정다수가 읽는 시장입니다. 그래서 크게 성공하는 책도 많고, 반대로 거의 읽히지 않는 책도 많죠. 출판사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시장이에요. 뚜렷한 타깃 독자가 보이는 경제경영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 지식과 방법을 필요로 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게 확인되면 그들을 위해 책을 만들면 되거든요. 물론 타깃이 분명한 만큼 매출의 한계도 분명하지만요.

역시 출판도 카테고리나 포지셔닝 전략과 한시도 떨어져서 생각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런칭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카테고리를 열어야 합니다. 카테고리를 쪼개거나 새롭게 진화시킬 때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포지셔닝이 되지 않은 콘셉트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모임을 가질 때도 ‘술 마시러 가자’에서 ‘오늘은 소주를 마시자’로 좁혀가는 것처럼 모든 것을 카테고리로 사고하거든요. 새로운 카테고리가 등장하면 낯설게 느끼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존 본능이 꿈틀대기 때문에 결국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인식을 파고들 때 마케팅도 성공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면 마케팅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을까요?
마케팅은 가치를 교환할 상대를 잘 매칭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공률을 높이려면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볼 독자를 계속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본에 집중하면, 구체적인 마케팅 방법에 대해서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케팅은 속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신간을 띄우는 적절한 속도 같은 게 있을까요?
저도 예전에는 무조건 빨리 띄워야 한다고만 생각했고, 그래서 모든 마케팅 프로세스를 굉장히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일을 좀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빨리 올리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분야마다, 또 책의 성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어쨌든 마케팅은 그 책의 가치에 맞는 속도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천천히 붙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더 많은 독자에게 확장되고 오래 읽히는 책들도 분명 있거든요.

맞는 말씀이지만, 현실적으로 실무자 입장에서는 계속 신간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초기 반응이 미진하면 다음 신간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쉽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책의 콘셉트나 퀄리티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책의 가치를 집요하게 찾아내서 독자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어필하는 능력은 약해진 것 같아요. 그만큼 성공시키고자 하는 절실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속도가 늦고 꾸준하고 집요하게 가치를 어필해야 빛을 볼 수 있는 책들도 있는 만큼 책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측면에서 마케팅 접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마케팅을 어려워하는 출판인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마케팅은 어렵지 않습니다. 마케팅은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고객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만족스럽게 값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그 중요성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중요한 만큼 괜히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그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어요. 나에게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요.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가져와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고객과 연결시키면 되는 것이죠.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그 진실한 마음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이것이 마케팅의 기본 철학입니다.
기본 철학을 바탕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의 결점을 감추는 데 급급하지 않고,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마케팅의 태도와 행동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태도와 행동을 익히면 마케팅을 움직이는 구조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은 브랜드, 제품, 소비자, 세 주체가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이 세 요소를 모두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고 서로 사랑하는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들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하면 서로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 세 요소가 서로 없으면 살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리고 이 세 요소가 서로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