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다산북스 콘텐츠개발 1팀장입니다. 2년 전 '신사팀장'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콘텐츠개발 1팀이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인터뷰에서는 다산북스 15년의 역사와 대표님의 출판 노하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앞으로 다산북스가 그려나갈 출판의 미래와 출판 시장을 이끌어나갈 다산북스 인재들이 유념해야 하는 점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산북스 식구들은 물론 출판업 종사자, 그 외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과 다산북스 도서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의미 있는 내용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Q. 다산북스에 다니며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변화한 점은 ‘마케터와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편집가가 마케터와 함께 일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까요?
제품을 만들 때 ‘연결성’을 늘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팀장들은 다 벤처 창업가입니다. 그중에서 성공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즉, 90%가 실패할 것이란 말입니다. 왜 실패할까요? 자기 기술만을 믿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제품을 만들고 나서 이것을 어떻게 마케팅적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필패합니다. 제작자, 즉 편집가는 마케팅팀과 홍보팀을 자신의 협력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가 만든 책의 매력적인 가치를 자기부터가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책의 가치를 어떻게 세상과 연결할 것인지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으니니까요.
지금껏 출판계에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편집 담당자가 마케팅까지 세세하게 알고 관리하는 걸 다산북스가 최초로 했습니다. 일종의 고정관념을 깨부순 것입니다. 사실 책을 만들면 편집가가 공을 다 가져가지요. 책의 담당자는 편집가이니까요.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높은 책임감과 도덕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잘되면 우리 탓, 안 되면 남 탓.’ 그런 마음을 버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마케터와 협업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책을 마케터가 자신 있게 MD와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표지가 어떻다’라든가 ‘제목이 이런 방향이면 좋겠다’는, 과감하고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출판의 꽃은 단연 기획·편집입니다. 모든 명예는 편집이 가져가는 만큼 그 옆에서 일하는 스텝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자세가 필수이지요. 좀 더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Q. 다시 리더십이란 주제로 돌아가 질문드리겠습니다. 저는 아직 오래 다니지 않았지만, 다산북스는 다른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인원 교체나 팀의 조직 개편이 잦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다양성 측면에서는 좋은 점이 있겠지만, 경영자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스럽지는 않으신지요.
팀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이동이 있었지요. 그런 과정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또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을 세팅하다 보면 당연히 불안합니다. 일정 수준의 불안감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불안함을 느낀다면 이제 좀 팀이 셋업이 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 불안감이 극도로 지나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불안도 일종의 망상이거든요. 내가 만드는 자기 보호 심리예요.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첫째, 운동을 해서 면역력을 높이고 외부 세계와 자주 접촉해야 합니다. 둘째, 솔직한 대화를 좀 많이 해야 합니다. 내가 내 안에 갇혀 있어서 불안한 겁니다.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저자도 많이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불안감이 내 안에서 수용됩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대체로 3년 단위로 조직을 개편합니다. 3년을 주기로 보고 더 높은 페이스로 조직을 변화시키면 회사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내부적인 요구와 외부적인 요구 두 가지 모두 개편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자기 혼란으로 인한 팀의 변화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안주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거든요.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지속적인 혼란과 불안은 좋지 않습니다. 다산북스 안에서 실패 좀 했다고 스트레스 받거나 그 실패에 지배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해도 우리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걸 믿고 구성원이 재미있게 일하면 됩니다.
궁극적으로 팀을 세팅한다는 건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팀 구성원들이 가진 장단점을 잘 조화시켜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Q.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는데요. 그렇다면 각 팀이 맡고 있는 카테고리를 리딩하기 위해서 팀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팀이 자기 분야에서 카테고리를 리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각오가 필요합니다.
첫째, 일단 자기 카테고리에 대해 깊어져야 합니다. 자기 책만 만들고 읽으면 한계가 드러날 것입니다. 경쟁작이나 그 분야 리딩 상품을 읽지 않는 게 모든 콘텐츠 사업의 실패 원인입니다. 책을 보더라도 50위권 안에 있는 책을 보세요. 그 책 안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눈여겨보세요. 어떤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팀의 학습입니다. 1팀으로 예를 들면, 팀에서 한 달에 경제경영도서 5권씩을 읽어보세요. 그렇게 한 3년만 하면 해당 카테고리에서 가장 강한 조직이 됩니다. 사실 답은 심플하거든요. 이런 조직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둘째, 해당 카테고리의 계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경제경영이라면 그 분야 고전들을 많이 읽으세요. 그래야만 그 분야를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전을 읽고 숙지하면 그 어떤 새로운 개념이 나와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충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오거든요. 해당 카테고리의 기본 개념과 그로 파생된 계통들을 이해하고 있어야 새로운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팀에서 그런 걸 한번 해봐도 좋겠습니다.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 시간에는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각자 다른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공통으로 지정된 책을 읽어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조직에 ‘학습’이 이루어지고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기가 버거울 거예요. 각자 바쁜 일들이 있을 테니까요. 2주 정도 기간을 두고 책을 읽고 한 번씩 진행해도 좋겠습니다. 권 수도 익숙해지면 점점 늘리는 방향으로요.
Q. 번외로 팔로워의 입장에서 한 가지 더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을 하다 보면 개중에는 자기 취향과 맞지 않거나 신념에 위배되는 원고를 더러 배정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 편집자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포용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후자가 답임을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 역시 리더십과 관련이 있는 질문이네요. 리더가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리더가 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하기 싫은 일’을 잘해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리더가 될 수 없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사를 다닐 때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책을 출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근데 그걸 2주 만에 만들라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 고민을 했습니다. 초고 수준의 원고만 있었는데 사장님의 친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지요. 저자는 부산에서 신발 제조 공장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을 2주 만에 만들라고 하니 정말 많이 고민이 됐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람에겐 이 원고가 얼마나 소중할까?’ 그래서 잘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도 원고를 고치고 외주 작업자도 썼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숨결을 담아내기 위해 세밀하게 고민해 책을 만들었지요. 그래서 결국 2주 만에 책이 나왔습니다. 그땐 제가 연봉도 많이 받지 않았을 때인데, 저자가 진실로 감동한 나머지 제게 큰 선물로 ‘진주목걸이’를 주더라고요. 받자마자 아내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책의 운명은 편집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작업의 셋업이에요.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어떻게 책을 만들 수 있을까요. 어려운 책을 맡으면 오히려 자기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식을 크게 전환시킬 필요가 있어요. 이번에 8팀에서 나올 <용기의 정치학>도 어려운 원고이지요. 그런데 지젝이란 대단한 사람의 원고잖아요. 그 속에서 기회를 발견해 책을 키워야지요. 처음 잡아온 키워드는 ‘절망’이었는데 이걸 ‘용기’로 전환시켰습니다. ‘우리 시대의 절망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라는 집요한 물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게 편집가가 가져야 할 마인드이자 책을 만들기 위한 셋업 작업입니다. 이 책을 해내야겠다, 이 책으로 나의 문제와 동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Q. 결국 태도의 문제이군요.
그렇습니다. 편집가는 모두 선수예요. 축구선수가 경기장에 나가서 벤치에 앉아만 있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축구선수가 매 경기 혼을 다해 달리듯이 편집가도 맡은 책에 정성과 혼을 담아야 합니다. 그럴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책을 만들면 안 됩니다. 이는 책을 만들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케팅을 하다가 좀 팔리지 않으면 ‘이 정도면 열심히 했으니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은 내고 나면 끝인가요? 아니지요. 담당자가 붙잡고 늘어지는 한 끝이 아닙니다. 3만 부를 팔았으면 다음 5만 부를 어떻게 팔 것인지, 5만 부를 팔았으면 어떻게 해야 10만 부를 달성할 수 있는지 끝없이 고민하는 자세 또한 편집가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