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다산북스 콘텐츠개발 1팀장입니다. 2년 전 '신사팀장'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콘텐츠개발 1팀이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인터뷰에서는 다산북스 15년의 역사와 대표님의 출판 노하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앞으로 다산북스가 그려나갈 출판의 미래와 출판 시장을 이끌어나갈 다산북스 인재들이 유념해야 하는 점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산북스 식구들은 물론 출판업 종사자, 그 외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과 다산북스 도서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의미 있는 내용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Q. 그럼 이번에는 디자이너로서 질문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현재 다산북스에서는 디자이너가 개발팀에 한 명씩 속해 있습니다. 이 조직에서 디자이너도 리더로 성장할 수 있나요? 만약 디자이너가 리더가 된다면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할까요?
본부 체계가 되면 디자이너도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이 있지요. 첫째는 ‘사업적 능력’입니다. 디자인을 넘어 그것을 사업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의 개발 팀장들은 콘텐츠 개발 능력 외에 마케팅 능력도 요구받습니다. 단순히 책만 만드는 게 아니고 그 일을 비즈니스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는 ‘카테고리에 대한 탐구정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주력하는 카테고리와 그 카테고리 리딩 상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디자이너도 디자인 조직에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형태는 이미 회사 내에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다산이 그렇고, 또 다양한 본부 체계로의 전환도 하나의 시도라고 볼 수 있지요. 매출 50억 원 이상이 되어 하나의 본부로 발전하면 그 안에서 디자이너가 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 디자인 팀장이 있어야겠지요. 디자이너도 리더가 되어 자기 비중을 높여가야 합니다. 개발 팀장이나 마케팅 팀장처럼 의사결정을 할 때 디자인 팀장도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팀 안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자세부터 보여줘야 합니다. 1년에 내가 이만큼의 디자인을 소화하겠다는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한데 그 부분은 1팀 디자이너가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에 비해 디자이너 수가 많은 편입니다. 각 팀에 한 명씩 배치했으니까요. 이는 콘텐츠의 완결성과 디자이너 개개인의 역량 발전을 위한 회사의 투자입니다. 가급적 외주로 진행하지 않고 내부에서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하고, 그 과정에서 개발팀과 마케팅팀과 소통하면서 역량을 키울 수 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비전도 있을 수 있지요. 개발자처럼 디자이너도 임프린트 형태로 독립하는 방향입니다.
Q. ‘디자이너의 임프린트’란 결국 외주를 뜻하는 건가요?
완전한 외주라기보다는 회사 안에 존재하는 외주가 되겠지요. 만약 디자이너가 ‘내가 내 작업물을 책임지면서 어떤 사업적인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회사 내 외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다산북스라는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한 상태로 다양한 팀(거래처)을 경험하다 보면 클라이언트의 이해와 요구가 무엇인지 폭넓게 경험할 수 있겠지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을’의 입장이 한번 되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모든 혁신은 비주류에게서 나오는데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갑’은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만 하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을’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창의성이 계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안 그래도 최근에 디자이너 분이 기획을 하셔서 컨셉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서로 간의 영역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습니다.
그렇죠. 서로 다른 생각이 연결될 때 좋은 비즈니스도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디자이너가 기획을 할 때는 그것이 ‘취향’인지 ‘대중문화’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취향도 중요합니다. 취향이 넓어지면 그게 대중문화가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취향이 확산되지 않으면 그건 그냥 취향으로 끝나는 거예요. 저는 취향이 가진 개별성이나 독립성을 시대의 새로운 정신과 어떻게 연결해 대중문화로 만들지에 대해 많이 고민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출판사, ‘The Joy of Story’가 그런 의미니까요.
Q. 우리 과장님이 다산북스 최초의 디자인 임프린트 대표님이 되실 겁니다. 이번에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지난 대담 때 대표님께서 우리 다산북스의 성공 비결이 다양하지만 그중 최고가 ‘구성원들이 경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제는 회사가 규모도 커지고 성장함에 따라 오히려 반대로 그 성공의 기쁨이 발목을 잡는, 혹은 거대한 규모가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산북스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조직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농담조로 ‘경험 없는 친구들’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고요. 하고 싶다는 의지는 강한데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요한 역할과 책임을 맡지 못했던 것이지요. 우리 회사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선입견이 없었는데요. 누구에게나 역할을 부여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우리 조직에 잘 적응해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요.
저는 그때 전통적으로 편집에 능통한 사람보다는 경험은 좀 부족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게 더 빨리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지금 시스템과 조직 형태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주류로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주류’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생각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야 해요. “내가 다 해봤어. 이런 건 안 돼”라는 말이 나온다는 건 조직이 퇴보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열려 있지 않다는 신호, 새로운 세대를 품지 못한다는 신호이지요.
그래서 구성원들이 ‘유연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다 옳다는 마음을 버리세요. 다양성과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모든 생태계도 생존 능력이 떨어집니다. 열려 있어야 진화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진화, 즉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현실을 수용해야 합니다. 정확한 현실 진단이 필요합니다. 자기 팀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인정하고 수용해야지, 그저 과거에 하던 대로 문제를 바라봐서는 절대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조직은 언제나 위기에 처합니다. 그럴 때 퇴보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잘 읽고 그것들에 대해 변화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Q. 그런데 너무 변화에만 적응하려 하면 나만의 색깔, 즉 다산북스만의 색깔이나 우리의 본질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진 핵심가치는 지키는 상태에서 변화를 도모해야겠지요.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되는 우리만의 색깔이 무엇인가요? ‘The Joy of Story’입니다. 스토리의 즐거움을 전한다는 것, 여기에 더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한국적 감성을 전한다는 것, 이 색깔을 잃어버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 기조를 토대로 차별화된 스토리를 발굴하고 새롭게 혁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The Joy of Story’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애민정신’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지요. 성경에서 전하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인간은 생명체로서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평등하게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애민정신입니다. 두 번째는 ‘실사구시’입니다. 살다 보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을 계승해 독자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합니다. 즉, 책을 통해 솔루션을 제시해주는 것이지요.
인간은 본래 서로 생각을 나누고 그를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삶의 가치를 느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Story’가 필요합니다. 그 스토리를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기는 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스토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먹고 살고, 이야기를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여기서 ‘Joy’의 개념이 나옵니다. 스토리의 즐거움, 즉 스토리를 통해 인류에게 높은 경지의 즐거움을 전해야 하는 것이지요. 어려운 걸 보다 쉽게 전하면 그것이 ‘대중화’입니다. 우리는 지식의 즐거움과 가치를 독점하지 않고 대중에게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어려운 것을 보다 쉽게, 쉬운 것을 보다 깊게, 깊은 것을 보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창조함으로서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걸 굉장히 잘한 사례가 ‘캐릭터’입니다. 디즈니를 예로 들 수 있겠지요. 꿈과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캐릭터를 통해 쉽게 풀어 인간에게 전달하니까요.

Q. 제가 다산북스에서 굉장히 많이 느끼는 부분이, 기업이란 건 생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 존재하는 구성원의 성향이 곧 그 기업의 성향이 되는데, 여기서 오래 다니고 또 잘 다니는 분들을 보면 ‘파도타기’에 능하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케팅도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데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지금 출판 세대에게 부러운 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변화의 중심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창업했을 당시 저희 다산북스와 쌤앤파커스, 위즈덤하우스가 신문광고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조선일보 전면광고를 잡으면 1800만 원에 육박했습니다. 절실함을 갖고 광고에 임했지요. 그랬기에 그 세 회사가 출판계의 주류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출판 환경에서 우리가 공략해야 할 마케팅 지점과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은 어디인가요? 그걸 빨리 깨닫고 수없이 실패해봐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더 디테일하게 짜야 합니다. 그 전략을 세우고 우리 콘텐츠를 어떤 인플루언서와 연결할 것인가, 누구에게 제안해 책을 알릴 것인가 그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홍보할 수 있는 연결망을 갖추어야만 마케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