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신임 4팀장입니다. 줄여서 '신사팀장'이라고 할게요. 팀장으로서 경험도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 대표님께 당당히 배움을 청했습니다. 대표님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터득한 출판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아니 그 일부나마 제 것으로 만들어야 저희 팀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겠다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대표님과 식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지식을 저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웠기에, 다산북스 식구들은 물론 출판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독자들과 만나는지 궁금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그 두 번째 테마는 바로 "기획이란 무엇인가?"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출판 비즈니스에서 기획이란 무엇인가요?
기획은 문자 그대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책 몇 권 팔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입니다. 기획마다 경중이 있겠지만, 역시 핵심은 기존 것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당연히 기획자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좀 더 가치 있게 바꾸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기획은 시작되니까요.
그런데 의지나 생각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좋은 생각, 멋진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요. 바로 발품입니다. 누구나 좋은 생각은 많이 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도 많지만 그게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발품을 팔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 세상과 부딪칠 때 더 확장되고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행동 지침 같은 게 있을까요?
제게 기획의 기본을 제대로 가르쳐주신 출판사 사장님이 있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고 말씀하셨고, 출판인으로 살면서 그 가르침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첫째는 매일 신문을 읽고 스크랩을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저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두 생각이 아닌 행동에 초점을 맞춘 조언이지요.
창업 초기 출판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저자 설득이 더 힘들지 않았나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니 신생 출판사일수록 앞서 언급한 행동 지침이 훨씬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출판사의 역량이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준비해야 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우선 그 저자에 대해 가능한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의 전작들을 모두 읽고, 관련 자료를 이 잡듯 뒤져야 하지요. 자기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잘하고, 어떤 변신을 도모하고 싶어 하는지 그 맥을 정확히 짚고 있는 기획자에게 저자는 감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알아주는 저자를 만나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저자들은 귀신같이 다 압니다. 어떤 출판사, 어떤 편집자와 함께해야 가장 빛날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니 저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최적의 컨셉을 제안하면 99% 설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름만으로 책을 팔 수 있는 유명 저자는 이런 열정만으로는 설득할 수 없겠지요. 당연히 계약조건을 비롯해 보다 다양한 판단 기준을 갖고 출판사를 선택할 겁니다.
그렇다면 좋은 저자, 좋은 아이템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출판에서 기획은 내가 어떤 저자와 함께 작업하여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하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 가슴이 뛰는지를 살펴보면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없다면 가짜 기획이겠지요. 그런 가슴 뛰는 저자와 아이템이 있으면 바로 전화를 걸어서 일단 만나야 합니다.

시간을 갖고 준비하는 것보다 서두르는 게 더 좋을까요?
제 경험상 기획에서 속도와 순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부분 저자는 자기를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과 계약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만나자고 하고 시간을 좀 번 후에 실제 만나는 날까지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반대로 내가 먼저 찾은 게 아니라 저자가 찾아온 경우라면, 꼼꼼한 준비가 우선인 것 같습니다. 여러 출판사를 두고 저울질하다 고를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요.
흔히 저자 관리라고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자에게 진심과 성의를 다 하되, 그렇다고 무조건 끌려 다녀서도 안 되니까요. 편집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을 갖고 컨셉과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설정 등에 있어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만큼의 믿음을 주어야 하겠지요. 편집자 말을 들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따를 거라는 걸 저자들이 스스로 알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야 합니다. 가능성 있는 저자일수록 더 똑똑하게 그런 사실을 빨리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저자와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식사자리나 술자리를 자주 가지면서 서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게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자의 취향과 태도 등 많은 것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저자 역시 편집자의 능력과 진심을 더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기획자는 발도 넓어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렇기 때문에 연락했을 때 바로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출판 기획은 저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컨셉이 있어도 그걸 원고로 써낼 수 있는 저자가 없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은 한마디로 ‘사람 사업’입니다. 언제든지 좋은 저자를 소개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실제 저자나 회사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획으로까지 연결하지 못하는 젊은 편집자들이 많습니다.
젊은 편집자들은 우리보다 아이디어도 많고 트렌드에 대해서도 더 민감한 만큼 좋은 기획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내기획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편집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굳이 일반화해서 말씀드리자면 사람을 잘 안 만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기획은 사람을 만나 최초의 아이디어를 디벨롭하는 과정에서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 만나는 걸 힘들고 귀찮아하다 보니, 그냥 혼자 생각하고 외서에 의존합니다.
외서 기획도 기획자의 중요한 업무영역 아닌가요?
그 말도 맞지만 외서에만 의존하면 좋은 편집자로 성장하기 힘듭니다. 물론 외서 기획과 편집에도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이 있습니다. 단순히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감수성으로 바꾸는 작업 역시 고도로 창의적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저 제목과 표지를 우리 식으로 좀 바꾸고 해외에서 얻은 성과를 강조해 국내 독자들에겐 파는 것에 머물면 안 됩니다. 당장 매출은 만들 수는 있겠지만 계속 그런 쉬운 길을 택하게 되고 그러면 더 크게 성장하기 힘드니까요.
기획도 결국 좋은 컨셉이 관건인 거죠?
그렇습니다. 세상과 대중이 갖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지 고민해야 합니다. 더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마음의 결’을 읽는 것입니다. 그 결을 잘 읽어내면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처럼 좋은 컨셉이 탄생합니다.
실무적인 고민은, 기획 당시에는 그렇게 열병을 앓는 것처럼 와 닿았는데, 실제 출간할 타이밍이 되면 마음의 결도 바뀌고 시간이 흐른 만큼 트렌드도 달라져 있는 것 같다 고민이 된다는 겁니다.
아직 경험이 적기 때문일 것 같아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우선 처음부터 잘못 본 것일 수 있습니다. 일부 현상을 본 건데, 본질을 봤다고 착각한 거죠. 그런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많습니다. 그리고 컨셉은 정확히 찾은 게 맞는데 그걸 제목, 표지 등에서 잘못 구현한 것입니다. 모든 책은 만들수록 더 좋아진다는 걸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계속 집중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고 처음 생각했던 컨셉을 더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바로 그 과정에서 나아지는 1~2%가 전체 결과를 완전히 바꾸기도 합니다.
‘독자로부터의 기획’을 늘 다짐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컨셉을 ‘사고 싶게 만드는 힘’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질에 영향을 줄 때 지갑을 엽니다. 좋은 아이디어에 새로운 베네핏이 더해질 때 컨셉이 나오는 것이죠. 더 엄밀하게 말하면 컨셉은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획기적인 생각으로 없는 걸 창조하려 하지 마세요. 이미 있는 독자 니즈에서 컨셉을 발견하는, 눈 밝은 기획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문화 소비의 주체는 대중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니 아이디어도 대중 속에서 찾아야 하고, 대중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좋은 기획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판단할 권한과 실패할 권리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책임지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지는 일에 선을 그으려는 경우가 많으니, 판단을 상사에게 미루고 도전을 머뭇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임편집이라는 말의 무게를 스스로 느끼고, 책임편집자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물론 성과관리는 기본이고요.
기획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 중요한데, 현실 인식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사랑하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 파악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서 성과가 나오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또 잔머리로 하는 기획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카테고리의 지형도를 바꾸겠다는 포부를 갖고 발로 움직이며 자신 있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획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