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현 다산북스 편집관리팀 팀장
하루는 아이가 물었다. 어른들은 왜 맨날 회사 가는 거야? 글쎄, 밥값 하려고? 아니지, 여섯 살 난 딸에게 들려주기에 적절한 말은 아니다. 회사에 가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도 아니고. 그럼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꿈? 희망? 성공? 자아실현? 가만, 자아실현을 어떻게 설명한담? 우물쭈물 망설였더니 아이가 먼저 답을 찾아냈다. 아하, 공부하러 다니는구나.
가끔 아이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도 그랬다. 회사에 공부하러 다닌다고? 회사는 학교가 아닌데. 그런데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나는 공부하러 회사에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더더욱 헷갈린다. 지난주 다섯 번째 본부장 교육 때는 조직 운영과 업무 노하우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이번 주 독서경영 시간에는 팀원들과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까치) 개정판을 함께 읽기로 했다. 다음 ‘R&D의 날’에는 지금 개발 중인 투고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올 초 팀에 들어온 편집자는 내일부터 10주 차 신규 입사자 교육을 듣게 된다. 아무리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교육에 진심이다. 어디냐고? 다산북스 이야기다.
어서 와, 10주 차 신규 입사자 교육은 처음이지?
다산북스에 입사하고 두 달쯤 뒤였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과 신규 입사자 교육을 듣게 되었다. 교육은 매주 월요일 저녁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장장 10주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었다.
앞의 5주는 대표가 강의를 맡았다. 다산북스의 창업 이념과 역사, 사명과 핵심 가치 등을 통해 다산북스가 어떤 출판사인지 알 수 있었다. 뒤의 5주는 기획편집, 출판마케팅, 전자출판 파트의 부서장이 경험과 노하우를 들려주어 어떻게 성과를 쌓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라 세세한 내용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첫 시간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강의 자료에 떡하니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왜 행복한가?”
“나는 왜 행복한가?”라니? 마치 느닷없이 길을 가로막고는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물어오는 누군가를 마주칠 때처럼 도전적인 질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편집관리팀이라는 이름도 낯선 신생 팀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었으니까. 이전 회사에선 늘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나 도제식 비슷한 교육을 받았는데 다산북스는 달랐다. 아무도 내게 뭐라 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으니 넘치는 자유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할까. 교정 교열이란 직무를 맡았지만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할지조차 막막하고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인 내게 왜 행복하냐고 묻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얘기를 5년 뒤 대표의 팀장 리더십 교육에서 다시 한번 듣게 된다. 팀장 리더십 교육도 스물여덟 명의 팀장이 대표에게 출판 비즈니스에서 성과를 올리는 방법을 배워보는 10주 차 강의였다. 첫 번째 강의의 주제는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였는데, 대표는 이 시간에도 “행복이란 무언가가 된다는 것에 있지 않으며 존재 자체에서 행복이 시작된다”며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은 절대로 깃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마 5년 전에도 지금도 대표는 다른 무엇보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5년이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을 또다시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귀가 뜨이는 느낌이었달까.
지금도 다산북스에서는 정기적으로 10주간의 신규 입사자 교육이 이뤄진다. 이제는 파주 사옥에서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진행한다. 대표에게 직접 다산북스의 철학과 비전을 들을 수 있음은 물론 대치동 일타강사 못지않은 부서장들이 강의자로 나서 조직문화와 회사 생활, 어린이 출판 사업, 기획편집, 출판마케팅과 홍보, 2차 콘텐츠 사업과 웹툰·웹소설 비즈니스 등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다산북스에 새로 입사한 분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일 없이 무사히 안착할 수 있으리라.
1년에 60권을 읽으면 100만 원?
신규 입사자 교육이 끝나면 교육을 함께 들은 동기들과 1년 동안 60권 읽기 미션을 수행한다. 한 달에 다섯 권씩, 1년 동안 60권을 읽고 독서록을 제출하면 회사에서 축하금 100만 원을 수여하는 제도다. 얼핏 보면 일주일에 한 권꼴로 읽는 셈이라 출판계 종사자에게는 만만한 과제 같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매달 다섯 권씩 읽고 독서록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산북스에서는 신규 입사자에게만 책읽기 미션이 떨어진 게 아니다. 독서경영이란 이름으로 책을 읽는 문화가 여러 그룹별로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각 팀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독서경영을 실시한다. 팀장은 본부장과, 본부장은 대표와 책을 읽기 때문에 직위가 높아질수록 참석해야 할 독서경영의 수도 많아진다. 대표의 경우 다달이 본부장 그룹, 마케팅홍보 그룹, 웹툰·웹소설 그룹과 개별 독서경영을 진행한다. 한마디로 책을 읽지 않는 자, 다산북스에 있을 수 없다는 경영 방침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독서경영 시간에는 미리 선정한 책을 읽고 와서 ‘본깨적’, 즉 본 것과 깨달은 것, 적용할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 사람이 책의 핵심 내용이나 인상 깊은 구절, 고민해 볼 문제를 서너 개씩 발표하면 그중 몇 가지 의제를 골라 다 함께 토의한다.
처음엔 이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독서를 경영의 무기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내 생각과 의견을 발표하기도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대표가 주재하는 독서경영에서는 의도와 목적이 분명한 책을 읽는다. 평소라면 절대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 이를테면 전략적 사고와 리더십, 조직 운영과 혁신, 마케팅과 브랜딩 등에 관한 책이 선정되곤 한다. 그런데도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며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터놓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된다.
독서경영은 혁신을 빠르게 실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해 보인다. 최근 다산북스는 ‘업무일지’를 ‘성과일지’로, ‘월간회의’를 ‘월간성과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을 가장 먼저 실행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역시 대표와 임원들이 sbi ‘출판사 경영역량 강화’ 강의와 독서경영에서 류랑도 저자를 만난 후에 나타난 변화다. 다 함께 책을 읽으며 한 차례 초점을 맞춘 뒤라 변화로 나아가기가 한층 수월하다. 회사에 새로운 흐름이 보이면 나는 재빨리 독서경영 보고서를 찾아본다. 변화의 실마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는 없어질 거라고?
2021년 4월부터 다산북스에서는 ‘R&D의 날’도 시행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을 R&D의 날로 정해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팀별 혹은 본부별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예컨대 콘텐츠사업본부의 경우 첫째 주에는 베스트셀러 분석, 둘째 주에는 서점 현장 방문, 셋째 주에는 독서경영, 넷째 주에는 심층 기획회의 같은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1년은 워라밸 제도를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주 5일 여덟 시간에서 일곱 시간으로 근로 시간을 한 시간 단축했다. 퇴근 시간이 여섯 시에서 다섯 시로 앞당겨진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금요일 오후마저 하던 일에서 손을 떼야 하니 당장 일할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R&D 활동을 끝내고 야근을 하거나 일거리를 들고 퇴근해야 하는 일이 생겨났다. 조직적으로도 생산성 저하가 화제에 올랐다. 시간관리와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머지않아 워라밸 제도든 R&D의 날이든 둘 중 하나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당 40시간 근로를 거의 32시간으로 줄여 하루의 근무일을 없앤 셈이니 경영자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경제적 손해가 적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워라밸 제도와 R&D의 날은 공존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니, 애당초 둘 다 선택할 수 없는 제도였다. 그런데 이 두 제도는 2024년 현재에도 굳건하게 운영되고 있다. 다산북스가 2021년 이후 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표는 이 성장의 원동력이 교육에 있다고 공언했다.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탐구를 통해 변화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한 덕분에 조직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다산북스가 학습하는 조직, 탐구하는 조직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결단이었다. 직원들은 R&D의 날을 통해서 여타 회의나 보고에서 풀 수 없었던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어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지난해 편집관리팀에서는 『다산북스 교정 용례집』 개발을 R&D의 날의 중점과제로 삼았다. 사전에서 찾기 어려운 우리말 지식이나 교열 사례를 틈틈이 기록해 두었다가 어휘, 문법, 띄어쓰기, 교열의 총 4장으로 구성된 용례집으로 묶어 사내 편집자들에게 배포했다. 편집자들의 교정 실력이 더 좋아질수록 팀의 일거리가 줄어들리라는 우리 나름의 큰 그림에서 벌인 일이었다.
또 사내 편집자들이 직접 강의자가 되어 자신의 업무 스타일과 노하우를 동료들과 나누는 편집자 릴레이 특강도 열었다.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아래아한글 활용 꿀팁과 원고 정리 가이드’ ‘일정 사수를 위한 프로세스 최적화 비법’ ‘저자와 편집자는 한 팀이 될 수 있을까’ 등 세 가지 주제로 세 명의 편집자가 교대로 강의를 준비해 발표했다. 신규 입사자 교육이나 독서경영은 회사가 제도적으로 장려하는 교육인 데 비해 편집자 릴레이 특강만큼은 순도 100%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강의라서 더 뜻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냥 일만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다산북스의 사내 교육 프로그램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신규 입사자 교육, 독서경영, R&D의 날 운영뿐만 아니라 본부별 교육, 팀장 리더십 교육, 본부장-팀장 멘토링과 코칭을 통해 교육을 내실화하고 있다. 직원들이 스스로 교육의 공급자나 수혜자가 되어 서로를 가르치고 배워가며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교육에 참여하는 마음이 늘 편치만은 않다. 일과 중에 교육을 듣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밀린 일을 처리할 때면 과연 이게 정말 맞는 길인지 ‘현타’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 반대로 이제부터 오로지 일만 하게 해줄까 하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듯하다.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교육을 통해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열성적인 교육 프로그램 탓에 한순간 내 일에 제동이 걸리더라도, 그 시간 덕분에 비로소 앞뒤를 살피며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모든 직원이 쓰는 성과일지도 훌륭한 교재라고 생각한다. 다산북스에서는 성과일지를 자세히 쓰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고 유용한 업무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겨울, 동료의 성과일지에 어느 초등학교에 걸린 현수막 사진이 올라왔다. 현수막에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배울 수 있는 환경. 바람꽃 산내초등학교 교직원 일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슬로건을 내건 산내초 선생님들이 참 멋져 보였다. 가르침에는 용기가, 배움에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나 역시 이곳에서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성과일지에 정말 멋진 슬로건이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동료가 곧장 이런 답글을 올려주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배우는 데에도 용기가…!! 다산북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용기를 주고받고 있지요…!!”
가르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오늘도 다산북스는 열공 중이다.
출처: 기획회의 604호(2024.03.20)
팔릴 만한 이유를 내밀 게 없다. 2년 하고도 2개월 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기획서를 출력하여 회의에 가져가면서 품은 내 심정이 그랬다. 영미소설 시장은 영광의 시절이 지나간 지 한참이었다. 현지에서 진작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이 나와도 분야 베스트 중상위권에 잠깐이나마 얼굴을 비추면 다행이었다. 저명한 작가의 신작도 국내 힐링 판타지물과 일본 로맨스소설에 맥을 못 췄다. 손꼽히는 어느 대형 문학 출판사에는 해외문학을 담당하는 마케터가 이제 단 한 명이라고 들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도 아니고, 이 상황에 아무도 모르는 작가의 순문학을 다산북스의 기획회의에 들이밀려니 당당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도 대형 출판사면 회사 이름에 걸맞은 이런 책 좀 내야 되지 않겠냐’ 하는 뻔뻔함만이 내가 꺼내든 유일한 카드였다.
영미소설을 향한 독자들의 푸대접에 “오호통재라” 하며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는 편집자로 나를 오해할까 하여 미리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 편집자로서의 나에게 해외문학이라는 분야는, 명절에 한 번 통과하는 지방 톨게이트 정도쯤 될 거다. 본업에서 그리 잘 풀리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나는 인문․에세이팀에서 인문서와 에세이를 만드는 편집자다. 다만 수년 전에 ‘매들린 밀러’라는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며 독자들로부터 받았던 희열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서, 그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은 마음에 기회를 틈타 가끔 외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해외문학 담당자도 아닌 사람이 난데없이 처음 듣는 아일랜드 작가의 순문학을 기획회의에 가져와서 빈약한 근거를 토대로 이 책은 꼭 내야 한다고 떠드니 반응이 어땠겠는가. 하도 양서라고 주장하니까 반대하긴 애매하고 그렇다고 찬성하긴 찝찝했을 거다. 다산북스의 기획회의에서 주고받는 의견은 회사의 그룹웨어에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자료로서 영원히 남게 된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지나 이 책이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지금도 일부의 반대 의견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지금에야 그 의견의 주인들이 조금 민망해할지 몰라도, 나는 그분들의 반대가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회사에나, 기획자에게나 딱 이 정도의 기대로 출발했다. 나중에 작품이 부커상 후보에 올랐어도, 그리고 작년 초에 배우 킬리언 머피가 영화로 제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어도 그 기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영미소설의 불황이 굳건했던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된 지 2년이 흘렀는데도 이 책이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 스테디셀러로 확실히 자리잡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로를 해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변화는 영화 <말없는 소녀>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고백하자면, 작년 4월에 미리 출간한 클레어 키건의 초역작이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조금도 밀릴 것 없는 명작 『맡겨진 소녀』는 원래 덤으로 사온 것이었다. 나는 애초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만 관심이 있었다. 『맡겨진 소녀』는 “아이템, 즉 소설 한 권을 사오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 새로운 작가 한 명을 데려올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다산북스 대표님의 주장에 따라 얼떨결에 같이 판권을 사온 타이틀이다.
기획회의에서 통과될 줄도 몰랐는데 소설 하나의 판권을 더 사오라니, 이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그런데 1년쯤 지나니, 덩달아 사온 이 『맡겨진 소녀』를 영화화한 작품이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꽤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 영화가 한국에 건너오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영화 이슈가 있다면 출판사는 그것을 반드시 타야 한다. 따라서 출간 순서는 덤으로 사온 작품부터 출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23년 4월 26일 『맡겨진 소녀』가 먼저 출간되었고 한 달쯤 후에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 배급사인 슈아픽처스와 함께 각종 협업을 진행했고, ‘내가 일을 하면서 이런 분들과도 엮이게 되는구나’ 싶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그분들께 지금 다시 생각해도 영광스러운 추천과 호평을 받았다. 극장에서는 유명한 작가와 평론가를 모시고 『맡겨진 소녀』와 <말없는 소녀>를 한 주제로 묶어 GV를 여러 차례 진행했고, 클레어 키건을 국내에 소개한 나 역시 GV의 게스트로 초청되는 희한한 일도 겪었다. 나는 그 상황 자체가 민망하여 우리 회사 직원 누구도 그 행사에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래서 『맡겨진 소녀』는 베스트셀러에 올랐을까? 영화 개봉으로 인한 이슈를 한창 타고 있을 때조차 끝내 그러지는 못했다. 종합 베스트는 물론이고 소설 분야 1위에도 결국 오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형 문학출판사에서 전사적으로 미는 국내소설을 넘어서기는 아무래도 힘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가고, 출간 후 수개월이 지나도, 블로그나 SNS 리뷰가 올라오는 빈도는 크게 줄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또 희망적인 사실은 영화나 소설만이 아닌 클레어 키건을 두고 이야기가 계속 돌고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줄곧 해온 이야기가 있다. 이미 뜬 작가보다 무서운 저자는 ‘독자가 도사리고 있는 작가’이다. 신간이 나왔을 때 드디어 나왔다고,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고 떠들어줄 독자들이 포진된 핫한 저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독자들 사이에 정말 무서운 흐름을 일으킬 수 있다. 『키르케』를 내기 전의 매들린 밀러가 그랬고, 『숨』을 내기 전의 테드 창은 훨씬 더 그러했다. 당시 나는 클레어 키건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즈음부터는 키건의 책을 향한 의구심이 회사에 여전히 존재하든 말든, 나는 이 작가의 후속작이 크게 잘되리라는 데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출간되자마자 꽤 잘 팔렸다. 해외소설 1위에 올랐고 영미소설치고 좋은 성적이었다. 출간 후 한 달쯤 지났을 때도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다. 온라인 서점 곳곳에서 소설 분야 1위에 올랐고 소설치고 종합 성적이 썩 좋았다. 대형 문학출판사보다 소설을 잘 팔고 있다는 현실이 어색했다. 출간 후 두 달이 지났을 때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알라딘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찍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 아닌 책 중에서 영미소설이 1위에 오른 일을 내 근래의 기억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나의 미천한 출판 경력에서 직접 기획한 책 중에 이만큼 팔리고 화제가 되는 책도 처음이다. 그래서 요즘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매일 아침 아일랜드 쪽을 향해 절을 하고 나서 출근한다고. 그러나 이 책의 성공이 내게 특별한 기쁨을 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의 글을 굉장히 좋아한다. 온갖 맛집을 찾아다니고 그에 대한 글을 써온 황작가는 말해왔다. 흔히들 주관적이라고 여기는 맛의 세계에도 “맛집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즉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맛집”이란 존재한다고. 매우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책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좋은 책은 존재한다. 그리고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나의 기준에서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좋은 책’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선전이 나에게 더없이 특별한 이유는, 때로는 좋은 책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상품도 종종 내왔던 듯한 나 같은 편집자에게, 좋은 책으로 성공하는 기쁨을 안겨주고 있는 데 있다.
앞으로도 나는 이 특별한 기쁨을 잊고, 객관적으로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책도 가끔은 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종종 그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내가 만들어온 상품들을 돌아볼 때 좋은 책의 비중이 훨씬 더 크기를, 그리고 좋은 책일수록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
들어가기 전에
“너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야.”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딸은 자신의 이야기를 엮으며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 이름 붙였다. 지난 10년간의 기록이었고,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와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양다솔의 글’이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란, 이를테면 수렵 채집인의 그것이다. “하루를 마치 하나의 삶처럼 살아내던 이들”의 마음. 그들은 절벽 위에 서서도 ‘내가 살고 싶은 하루’에 대해 생각했다. 양다솔도 그렇다. “절벽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늘도 아름답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고 쓴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의 것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이번 책에 『간지럼 태우기』에 실린 글들이 많이 들어갔는데요. 그 책을 쓸 때도, 제가 살면서 썼던 글들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 책을 낼 때도 제목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힌트를 주셨어요. 사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전혀 칭찬하거나 그러시지 않고 되게 비관적인 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몇 개월째 백수로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도 잘 모르겠는데, 의외로 그렇게 사는 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신다든지 다그치시지 않는 거예요. 어느 날은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절대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을 거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항상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 마음에서 모든 글들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서 제목을 짓게 된 거예요.
동명의 글이 첫 꼭지로 실려 있어요. 책에 담긴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는 글이에요.
이 책을 관통하는 마음가짐이 그랬다는 것을, 적어도 한 꼭지의 글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사실은 이 마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글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는 ‘절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절벽에서 보이는 절경”에 대해 “아슬아슬하고 평화롭고 아찔하고 몹시 아름다웠다”고 쓰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실은 쉬는 기간이 좀 길었는데요. 대부분 사람들은 회사에서 나오면 당장 불안감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똑같을 텐데’ 이러면서, (웃음) 그냥 쉬고 싶은 만큼 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 시간을 너무 여유롭게 보냈어요. 보통 스펙을 쌓는다든지 뭔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하는데, 저는 그냥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있음과 동시에, 사실상 별 수 없기 때문에 ‘아, 이제 또다시 노역을 하러 가야 될 때가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제가 어디를 다니든 저를 지키는 하루의 여러 가지 행위들을 놓치지 않을 거고 열심히 저답게 살려고 할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또 어떤 일이든 해야겠죠? 그렇게 담담하게 생각합니다.
내 ‘하루’를 산다는 것
“어쩌면 나의 조상은 수렵 채집인인지도 몰랐다”고 쓰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정착한 사람은 아무래도 계획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수렵 채집인들은, 계획이 뭐예요, 당장 주변에 있는 것들로 자기를 지키고 살리는 게 너무 중요하죠. 예전부터 저는 당장 오늘 하고 싶은 일들은 있는데 내년이나 내후년, 더 나중에 뭘 해야겠다거나 ‘이런 사람이 돼야지’ 하는 것들에는 깜깜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시대는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를 되게 무력하고 멍청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렵 채집인의 존재와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많이 위로 받았어요. 어쩌면 나는 정착민의 유전자보다 수렵 채집인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어서, 본능적으로 나의 근미래와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살게 하는 것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이 있고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멋대로 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으면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이 책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돈이 없다거나 지금 당장 삶이 막막하다고 해서 ‘하루’까지 그냥 넘겨버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너무나 내 것이고, 내 의지대로 살아볼 수 있는 거고, 내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포기를 하고 ‘내가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가난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음만큼은 엄청 돈 많이 벌어놓은 중년 여성처럼 살고 있는데요. (웃음) 모르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매우 가능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나중에 부를 얻고 나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더라고요. (웃음)
십대 때 글방에서 친구들과 글을 쓰기 시작하셨죠. 그 시기부터 계속 혼자 글을 쓰셨어요?
혼자는 아니고, 친구들하고 모임에 가져가야 되니까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글을 쓰면 무조건 친구들한테 보여주는 게 기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너는 글을 써야 된다’고 했나요?
글이 정말 좋다고, 계속 쓰라고 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저한테 너무 소중한 순간이 있으면 외장하드에 담듯이 글을 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간지럼 태우기』가 탄생하고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졌군요.
네. 이번 책에는 ‘격일간 다솔’의 글도 많이 들어갔는데요. 사실 『간지럼 태우기』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제가 살면서 했던 시도 중에 제일 잘 됐어요. 통계학적으로, 본인이 했을 때 제일 잘 된 걸 더 해봐야 되잖아요. 사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거거든요. (웃음) 누가 쓰라고 해서 쓰게 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글쓰기라는 것은, 제가 유일하게 사활을 걸고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정말 1의 뺀질거림도 없이 최선을 다해서 무진 애를 써가며 쓰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순수하게 다 소진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격일간 다솔’도 이슬아의 제안으로 하게 된 거였는데, 제가 우물쭈물하고 있다 보니까 옆에서 떠밀어주는 친구들이 있고 저는 또 기꺼이 떠밀려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잖아요.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하면 좋고요.
슬픔은 입장 차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녀와 내가 남남으로 만났다면 이것보단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에겐 엄마밖에 없었고, 엄마에겐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대표해서 서로를 증오했다”고 쓰셨어요.
저는 아버지도 (출가하셔서) 안 계시고, 또 외동딸이기 때문에, 진짜 세상에 나랑 엄마밖에 없다고 느끼는 때가 되게 많아요. 너무 사랑해도 당신밖에 없고 너무 싫어해도 당신밖에 없으니까… ‘감정이라는 게 무력해지는 어떤 차원의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뭐랄까요. 그녀가 저한테 얼마나 상처를 주든,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 사람이든,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그녀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그녀가 제발 부디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게 나한테 너무 중요한 거죠. 그녀가 어딘가에 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나한테 너무 큰 의미인 거예요. 진짜 그 사람마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그냥 백지 같은 그런 느낌이죠. 되게 무서우면서도 인생이 반쯤 끝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저를 위해서 그녀에게 더 잘해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더 내 곁에서 오래 행복하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출가하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멀어짐에 대한 아픔을 굉장히 늦게 느끼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아빠에 대한 감정이 되게 복잡했던 것 같아요. 「나의 코미디언」이라는 글을 정말 많이 울면서 썼는데요. 뭐랄까… 그래도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했고, 당신이 간 게 너무너무 슬프고, 그러고 보니까 당신이 간 이후로 당신만큼 웃긴 사람을 만난 적이 없고, 당신이 나한테 줬던 기억들이 나한테는 너무너무 근본적이고, 당신 같은 존재가 없다는 걸 거의 처음으로 인정한 글이거든요. 그게 불과 최근에야 가능했기 때문에. 사람이 정확한 때에 제대로 슬퍼하지 않으면 평생 숙제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아빠가 제가 어린 시절에 가지 않고 크고 나서 가주신 건 너무 감사하거든요. 덕분에 제가 이렇게 밝고 씩씩한 사람이 됐으니까. 지금도 셋이서 같이 살던 때가 꿈에 나올 정도로 너무 그리워요. 제가 외롭지 않았던 유일한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의 글에서는, 떠올리기 힘들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계속 웃음이 묻어나요.
제 생각에는 저의 가장 큰 방어 기제가 일단 유머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유머로 자기의 어떤 걸 얘기할 수 있다는 건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농담이라는 건 상대가 공감하지 않으면 웃지 못하잖아요. 나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 나의 시선에만 잡혀 있지 않고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그 문제를 꼬아버릴 줄 아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게 되게 다행이라고 느껴요. 또 나한테는 엄청 슬픈 얘기가 누군가랑 얘기하다 보면 갑자기 웃긴 얘기가 돼버릴 때도 많은데, 저는 그게 좋아요. ‘슬픔이라는 게 입장 차이구나’, ‘내가 이 얘기에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슬픈 거지, 한 걸음만 떨어진 사람이 보면 웃긴 얘기인데’ 싶은 거죠. 그런 가능성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도 활동하시잖아요.
네, 그래서 제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굽이굽이 슬프고 힘든 일도 많지만 보면 다 웃기구나, 그냥 우리 사는 게 참 웃기다, 사실 사람이 사는 얘기가 제일 웃기다, 생각해요. 그런 슬프고도 웃긴 얘기가 될 때 되게 좋은 것 같고요. 웃기기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진짜 슬프게 얘기해야 될 이야기를 슬프게 얘기하지 못하는 거면 안타까운 경우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슬픈 얘기는 슬프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얘기도 많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출처 – 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46187)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몬을 만들어라”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레몬은 쓰고 셔서 못 먹는 것을 말하는데요. 인생이 나에게 쓰디쓴 시련을 주더라도 즙을 짜고 설탕을 넣어 시원하고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이 저에게 레몬을 던져 준 때가 있습니다.
저는 반지하에서 봉제공장을 하시는 부모님의 반갑지 않은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으셨죠. 저는 4년이 지나는 동안 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다행인지 무관심 속에서도 공부에는 소질이 있어서 대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합니다.
어떤 의사가 될까 고민할 때 제일 힘들고 소외되는 정신과 환자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후 정신과 레지던트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합격할 거라 생각했는데 떨어지고 맙니다. 그때는 그 레몬이 너무 썼어요. 붙을 줄 알았기 때문에 떨어지면 뭘 할지 준비도 하지 않았죠.
그래서 1년 동안 미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미국 의사 면허증을 따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젊은 패기 하나로 미국행을 택합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죠.
열심히 준비해서 미국 의사 국가고시를 봤는데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저도 엄청 놀랐습니다. 그래서 존스홉킨스의 교수로 취업하게 됩니다. 그때 제가 받았던 레몬을 다시 되돌아봤어요. 만약 제가 레지던트에 붙었다면 이런 기회는 영영 잡지 못했을 거예요.
“Everything is happening for you, not to you.”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일어난다.
2017년, 인생은 저에게 두 번째 레몬을 줍니다. 저는 소위 ‘잘 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어요. 의사로서, 교수로서 인정받으며 결혼도 하고요.
41살이 되기 전날이었어요. 집에 가려고 운전을 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어요. 난생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습니다. 집에 가는 2시간 동안 통증이 온몸이 퍼지더니 오한이 일기 시작했고 집에는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어요. 이날을 기점으로 두어 달 만에 저는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명색이 제가 존스홉킨스 의사잖아요? 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다 했어요. 그런데 검사에서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그러더군요. 혹시 우울증이나 불안증 아니냐고. 15년 경력 정신과 의사인 저에게요. 저는 정말 죽을 만큼 아픈데 그들은 아니라고 하니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암흑의 시간이 6개월간 지속됩니다.
겨우 실마리를 찾아서 받은 진단이 자율신경계 장애, 신경매개저혈압이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아직 이 병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입니다. 진단은 나왔지만 답이 없는거죠.
당시 저는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서 일어나 앉지를 못했어요. 2년 가까이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냈습니다. 서러웠어요. 직장도 1년 반을 쉬어야 했고 내 인생이 바닥을 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병적인 피로감이었어요. 밥을 먹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오래 사용한 휴대폰 같았습니다. 배터리가 충전도 되지 않고 금방 방전되어 버리는, 10%밖에 남지 않은 휴대폰.
저는 모험을 좋아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신의 장난처럼 완전히 반대되는 난치병을 얻은 거예요. 일상생활을 해내질 못했어요. 그래서 남편을 미국에 두고 어머니의 간호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의 간호로 조금 나아지면 제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던 일이 있어요. 바로 걷기 연습입니다. 오늘 15분, 내일 20분… 매일매일 이를 악물고 연습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노력해서 30분 걷고 나면 그 다음날 병이 나서 몇 주 동안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매번 그러니 정말 못 해 먹겠더라고요. 의지도 한계가 있지, 이를 악물고 걸었는데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이게 반복되니 공들여 쌓은 것들이 무너지는 억울함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Everything is happening for me, not to me.
And I will make lemonade out of these lemons”
그때마다 이 말을 생각했어요. 이 모든 어려움도 나를 위해 일어난 거라고. 이 쓰디쓴 레몬으로 꼭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나를 다잡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인생에 쉼표를 얻은 것 같아요. 교수로, 의사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작가의 길이 보였어요. 누워서도 볼 수 있는 컴퓨터를 샀고 그때부터 저의 첫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 병을 이긴 것은 아닙니다. 같이 살아가는 거죠. 이 병이 한번 아프면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아프거든요. 힘겹게 버티고 있어요. 억울하고 속상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누가 저에게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저는 거절할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프면서 배우고 깨달으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그래서 아프기 전의 나보다 아프고 난 후의 나를 더 사랑합니다. 아픈 건 괴롭지만요.
여기 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과 같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지? 저 사람 탓이야 하면서 절망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이 고통 또한 나를 위해 존재하기에 꼭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두 사람에게 똑같이 2021년이 주어졌습니다. 둘은 어떤 1년을 살게 될까요?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 날, 두 사람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건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
본 내용은 도서 <마음이 흐르는 대로>와 세바시 지나영 교수 강연을 인용, 정리하였습니다.
세계 1위 유통 기업, 브랜드 가치 세계 1위, 미국 시가 총액 3위의 아마존. 아마존은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하며 지구상 가장 똑똑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아마존은 만년 적자를 내던 기업이었다. 그런 아마존이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 최고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존식 해결책’에서 찾을 수 있다. 아마존도 내부에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여느 회사에서 마주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아마존은 항상 자신들만의 독특한 ‘아마존식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마존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기존에 상식으로 자리 잡은 프로세스와 업무 방식을 과감히 파괴하고 뒤집기를 서슴지 않는다.
혁신의 대명사 아마존이 과감하게 퇴출시킨 3가지
| 첫째. 6-페이지 : 현대카드도 따라했다?! PPT 퇴출하기
‘회의가 시작되면 첫 20분 동안 으스스한 침묵이 흐르지요.’ 회의 참석자들이 짧게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에 앉으면, 그다음부터는 완벽할 정도로 고요한 침묵이 회의실을 감싼다. (…중략…) 회의 참석자들은 토론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6페이지짜리 문서를 읽어야 한다.”
지금부터 파워포인트 발표는 금지. 오직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만 사용할 것.
여느 기업들과 달리 아마존의 아이디어 회의 자리에는 프레젠테이션이 없다. 발표자도 청중도 없다. 오직 6페이지짜리 문서만이 존재할 뿐이다. 즉, 아이디어를 발표하고자 하는 모든 아마존 직원들은 상당한 분량의 ‘글’을 규격화된 서식에 따라 써야만 한다. 그것도 ‘완성된 보도 자료 형태’로 말이다.
아마존은 일찍이 많은 회사에서 시행해온 조직 운영 방식이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표적인 것이 회의 방식이다. 아마존의 회의 자리에서는 화려한 발표 기술과 번드르르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계량화하고 시각화해야 한다는 욕구와 유혹이 시달린다. 이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투입됨은 물론이다. 아마존에서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내러티브 문서로 쓰기만 하면 된다. 대신 아이디어는 더욱 철저하고 정교해야 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는 어설픈 생각을 위장할 수 있지만, 내러티브로는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둘째. 싱글 스레드 리더십 : 의사소통은 효율의 적! 의사소통을 제거하라
“아마존을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면 의사소통을 제거해야 한다. 의사소통을 독려할 필요는 없다.”
보통 회사 내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직 내의 의사소통을 독려한다. 하지만 아마존은 팀 간의 의사소통까지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하나의 프로젝트에는 하나의 팀이 전념하고,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에서다. 이는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생산성이 감소하는 기업 경영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아마존을 영원히 개발에만 전념하는 ‘스타트업’에 고정시킨다.
의사소통을 결함으로 인지하니 해결책은 기존과 매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그 답을 ‘싱글 스레드 리더십’이라 불리는 아마존의 혁신적인 조직 구조에서 찾았다. 싱글 스레드 리더십이란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주요 목표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일만 전담하는 분리 가능한 자율팀을 이끌도록 한다’라는 뜻이다.
팀 간의 조율에 필요한 시간적·인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모든 프로세스는 뛰어난 한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한 팀이 전념함으로써 성과 평가의 구조 또한 명확해졌으며, 구성원들의 의욕 또한 높아졌다.
| 셋째. 순서 파괴 : 고객이 최우선이다! 일의 순서를 파괴하라
‘순서 파괴’로 당신의 작업량을 줄일 순 없다. 하지만 명백한 진실은 이로써 실패할 확률이 ‘제로’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_제프 베이조스
“그래서 모형(Mock-up)은 어디 있죠?”
제프 베이조스는 아이디어 회의에서 고객이 누릴 완벽한 형태의 목업을 요구했다. 새로 기획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구현될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모형을 가져오라는 의미다. 이는 가장 초기 단계부터 고객이 누릴 효용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으로 아마존의 ‘고객에 대한 집착’ 원칙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은 결국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개발한다. 그런데 수십억을 들인 신제품이 고객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애초에 성공 확률이 없는, 개발할 가치도 없는 일에 시간과 돈과 인력을 퍼붓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마존은 ‘일의 순서’를 ‘파괴’한다. 개발자의 관점으로 일하는 ‘워킹 포워드(Working forward)’를 버리고, 철저히 고객의 관점으로부터 일하는 ‘워킹 백워드(Working Backwards)’를 실천한다. ‘될 놈’만 채택해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에 시간과 돈과 인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다. 순서 파괴는 프로젝트의 실패 확률을 ‘제로’에 수렴시키는 아마존만의 독창적 업무 방식이며, 아마존을 가장 ‘아마존’답게 하는 핵심이다.
저자 ㅣ 콜린 브라이어 · 빌 카
아마존의 기술 부사장과 디지털미디어 부문 부사장으로 아마존에서 총 27년을 근무하며 ‘제프의 그림자(Jeff’s shadow)’라 불린 두 저자는 <순서 파괴>에서 창립 이래 17년간 아마존에서 마치 ‘헌법’처럼 지켜지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단 한 가지 독특한 성공 원칙을 소개한다. 이들은 아마존의 다양한 혁신을 이끌었으며 아마존뮤직, 프라임비디오 등 많은 서비스들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