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너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야.”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딸은 자신의 이야기를 엮으며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 이름 붙였다. 지난 10년간의 기록이었고,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와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양다솔의 글’이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란, 이를테면 수렵 채집인의 그것이다. “하루를 마치 하나의 삶처럼 살아내던 이들”의 마음. 그들은 절벽 위에 서서도 ‘내가 살고 싶은 하루’에 대해 생각했다. 양다솔도 그렇다. “절벽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늘도 아름답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고 쓴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의 것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이번 책에 『간지럼 태우기』에 실린 글들이 많이 들어갔는데요. 그 책을 쓸 때도, 제가 살면서 썼던 글들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 책을 낼 때도 제목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힌트를 주셨어요. 사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전혀 칭찬하거나 그러시지 않고 되게 비관적인 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몇 개월째 백수로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도 잘 모르겠는데, 의외로 그렇게 사는 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신다든지 다그치시지 않는 거예요. 어느 날은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절대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을 거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항상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 마음에서 모든 글들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서 제목을 짓게 된 거예요.
동명의 글이 첫 꼭지로 실려 있어요. 책에 담긴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는 글이에요.
이 책을 관통하는 마음가짐이 그랬다는 것을, 적어도 한 꼭지의 글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사실은 이 마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글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는 ‘절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절벽에서 보이는 절경”에 대해 “아슬아슬하고 평화롭고 아찔하고 몹시 아름다웠다”고 쓰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실은 쉬는 기간이 좀 길었는데요. 대부분 사람들은 회사에서 나오면 당장 불안감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똑같을 텐데’ 이러면서, (웃음) 그냥 쉬고 싶은 만큼 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 시간을 너무 여유롭게 보냈어요. 보통 스펙을 쌓는다든지 뭔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하는데, 저는 그냥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있음과 동시에, 사실상 별 수 없기 때문에 ‘아, 이제 또다시 노역을 하러 가야 될 때가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제가 어디를 다니든 저를 지키는 하루의 여러 가지 행위들을 놓치지 않을 거고 열심히 저답게 살려고 할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또 어떤 일이든 해야겠죠? 그렇게 담담하게 생각합니다.

내 ‘하루’를 산다는 것
“어쩌면 나의 조상은 수렵 채집인인지도 몰랐다”고 쓰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정착한 사람은 아무래도 계획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수렵 채집인들은, 계획이 뭐예요, 당장 주변에 있는 것들로 자기를 지키고 살리는 게 너무 중요하죠. 예전부터 저는 당장 오늘 하고 싶은 일들은 있는데 내년이나 내후년, 더 나중에 뭘 해야겠다거나 ‘이런 사람이 돼야지’ 하는 것들에는 깜깜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시대는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를 되게 무력하고 멍청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렵 채집인의 존재와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많이 위로 받았어요. 어쩌면 나는 정착민의 유전자보다 수렵 채집인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어서, 본능적으로 나의 근미래와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살게 하는 것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이 있고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멋대로 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으면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이 책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돈이 없다거나 지금 당장 삶이 막막하다고 해서 ‘하루’까지 그냥 넘겨버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너무나 내 것이고, 내 의지대로 살아볼 수 있는 거고, 내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포기를 하고 ‘내가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가난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음만큼은 엄청 돈 많이 벌어놓은 중년 여성처럼 살고 있는데요. (웃음) 모르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매우 가능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나중에 부를 얻고 나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더라고요. (웃음)
십대 때 글방에서 친구들과 글을 쓰기 시작하셨죠. 그 시기부터 계속 혼자 글을 쓰셨어요?
혼자는 아니고, 친구들하고 모임에 가져가야 되니까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글을 쓰면 무조건 친구들한테 보여주는 게 기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너는 글을 써야 된다’고 했나요?
글이 정말 좋다고, 계속 쓰라고 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저한테 너무 소중한 순간이 있으면 외장하드에 담듯이 글을 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간지럼 태우기』가 탄생하고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졌군요.
네. 이번 책에는 ‘격일간 다솔’의 글도 많이 들어갔는데요. 사실 『간지럼 태우기』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제가 살면서 했던 시도 중에 제일 잘 됐어요. 통계학적으로, 본인이 했을 때 제일 잘 된 걸 더 해봐야 되잖아요. 사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거거든요. (웃음) 누가 쓰라고 해서 쓰게 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글쓰기라는 것은, 제가 유일하게 사활을 걸고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정말 1의 뺀질거림도 없이 최선을 다해서 무진 애를 써가며 쓰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순수하게 다 소진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격일간 다솔’도 이슬아의 제안으로 하게 된 거였는데, 제가 우물쭈물하고 있다 보니까 옆에서 떠밀어주는 친구들이 있고 저는 또 기꺼이 떠밀려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잖아요.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하면 좋고요.

슬픔은 입장 차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녀와 내가 남남으로 만났다면 이것보단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에겐 엄마밖에 없었고, 엄마에겐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대표해서 서로를 증오했다”고 쓰셨어요.
저는 아버지도 (출가하셔서) 안 계시고, 또 외동딸이기 때문에, 진짜 세상에 나랑 엄마밖에 없다고 느끼는 때가 되게 많아요. 너무 사랑해도 당신밖에 없고 너무 싫어해도 당신밖에 없으니까… ‘감정이라는 게 무력해지는 어떤 차원의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뭐랄까요. 그녀가 저한테 얼마나 상처를 주든,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 사람이든,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그녀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그녀가 제발 부디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게 나한테 너무 중요한 거죠. 그녀가 어딘가에 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나한테 너무 큰 의미인 거예요. 진짜 그 사람마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그냥 백지 같은 그런 느낌이죠. 되게 무서우면서도 인생이 반쯤 끝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저를 위해서 그녀에게 더 잘해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더 내 곁에서 오래 행복하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출가하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멀어짐에 대한 아픔을 굉장히 늦게 느끼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아빠에 대한 감정이 되게 복잡했던 것 같아요. 「나의 코미디언」이라는 글을 정말 많이 울면서 썼는데요. 뭐랄까… 그래도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했고, 당신이 간 게 너무너무 슬프고, 그러고 보니까 당신이 간 이후로 당신만큼 웃긴 사람을 만난 적이 없고, 당신이 나한테 줬던 기억들이 나한테는 너무너무 근본적이고, 당신 같은 존재가 없다는 걸 거의 처음으로 인정한 글이거든요. 그게 불과 최근에야 가능했기 때문에. 사람이 정확한 때에 제대로 슬퍼하지 않으면 평생 숙제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아빠가 제가 어린 시절에 가지 않고 크고 나서 가주신 건 너무 감사하거든요. 덕분에 제가 이렇게 밝고 씩씩한 사람이 됐으니까. 지금도 셋이서 같이 살던 때가 꿈에 나올 정도로 너무 그리워요. 제가 외롭지 않았던 유일한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의 글에서는, 떠올리기 힘들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계속 웃음이 묻어나요.
제 생각에는 저의 가장 큰 방어 기제가 일단 유머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유머로 자기의 어떤 걸 얘기할 수 있다는 건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농담이라는 건 상대가 공감하지 않으면 웃지 못하잖아요. 나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 나의 시선에만 잡혀 있지 않고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그 문제를 꼬아버릴 줄 아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게 되게 다행이라고 느껴요. 또 나한테는 엄청 슬픈 얘기가 누군가랑 얘기하다 보면 갑자기 웃긴 얘기가 돼버릴 때도 많은데, 저는 그게 좋아요. ‘슬픔이라는 게 입장 차이구나’, ‘내가 이 얘기에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슬픈 거지, 한 걸음만 떨어진 사람이 보면 웃긴 얘기인데’ 싶은 거죠. 그런 가능성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도 활동하시잖아요.
네, 그래서 제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굽이굽이 슬프고 힘든 일도 많지만 보면 다 웃기구나, 그냥 우리 사는 게 참 웃기다, 사실 사람이 사는 얘기가 제일 웃기다, 생각해요. 그런 슬프고도 웃긴 얘기가 될 때 되게 좋은 것 같고요. 웃기기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진짜 슬프게 얘기해야 될 이야기를 슬프게 얘기하지 못하는 거면 안타까운 경우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슬픈 얘기는 슬프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얘기도 많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출처 – 채널예스(http://ch.yes24.com/Article/View/46187)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몬을 만들어라”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레몬은 쓰고 셔서 못 먹는 것을 말하는데요. 인생이 나에게 쓰디쓴 시련을 주더라도 즙을 짜고 설탕을 넣어 시원하고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이 저에게 레몬을 던져 준 때가 있습니다.

저는 반지하에서 봉제공장을 하시는 부모님의 반갑지 않은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으셨죠. 저는 4년이 지나는 동안 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다행인지 무관심 속에서도 공부에는 소질이 있어서 대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합니다.
어떤 의사가 될까 고민할 때 제일 힘들고 소외되는 정신과 환자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후 정신과 레지던트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합격할 거라 생각했는데 떨어지고 맙니다. 그때는 그 레몬이 너무 썼어요. 붙을 줄 알았기 때문에 떨어지면 뭘 할지 준비도 하지 않았죠.
그래서 1년 동안 미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미국 의사 면허증을 따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젊은 패기 하나로 미국행을 택합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죠.
열심히 준비해서 미국 의사 국가고시를 봤는데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저도 엄청 놀랐습니다. 그래서 존스홉킨스의 교수로 취업하게 됩니다. 그때 제가 받았던 레몬을 다시 되돌아봤어요. 만약 제가 레지던트에 붙었다면 이런 기회는 영영 잡지 못했을 거예요.

“Everything is happening for you, not to you.”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일어난다.
2017년, 인생은 저에게 두 번째 레몬을 줍니다. 저는 소위 ‘잘 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어요. 의사로서, 교수로서 인정받으며 결혼도 하고요.
41살이 되기 전날이었어요. 집에 가려고 운전을 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어요. 난생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습니다. 집에 가는 2시간 동안 통증이 온몸이 퍼지더니 오한이 일기 시작했고 집에는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어요. 이날을 기점으로 두어 달 만에 저는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명색이 제가 존스홉킨스 의사잖아요? 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다 했어요. 그런데 검사에서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그러더군요. 혹시 우울증이나 불안증 아니냐고. 15년 경력 정신과 의사인 저에게요. 저는 정말 죽을 만큼 아픈데 그들은 아니라고 하니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암흑의 시간이 6개월간 지속됩니다.

겨우 실마리를 찾아서 받은 진단이 자율신경계 장애, 신경매개저혈압이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아직 이 병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입니다. 진단은 나왔지만 답이 없는거죠.
당시 저는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서 일어나 앉지를 못했어요. 2년 가까이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냈습니다. 서러웠어요. 직장도 1년 반을 쉬어야 했고 내 인생이 바닥을 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병적인 피로감이었어요. 밥을 먹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오래 사용한 휴대폰 같았습니다. 배터리가 충전도 되지 않고 금방 방전되어 버리는, 10%밖에 남지 않은 휴대폰.
저는 모험을 좋아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신의 장난처럼 완전히 반대되는 난치병을 얻은 거예요. 일상생활을 해내질 못했어요. 그래서 남편을 미국에 두고 어머니의 간호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의 간호로 조금 나아지면 제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던 일이 있어요. 바로 걷기 연습입니다. 오늘 15분, 내일 20분… 매일매일 이를 악물고 연습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노력해서 30분 걷고 나면 그 다음날 병이 나서 몇 주 동안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매번 그러니 정말 못 해 먹겠더라고요. 의지도 한계가 있지, 이를 악물고 걸었는데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이게 반복되니 공들여 쌓은 것들이 무너지는 억울함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Everything is happening for me, not to me.
And I will make lemonade out of these lemons”
그때마다 이 말을 생각했어요. 이 모든 어려움도 나를 위해 일어난 거라고. 이 쓰디쓴 레몬으로 꼭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나를 다잡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인생에 쉼표를 얻은 것 같아요. 교수로, 의사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작가의 길이 보였어요. 누워서도 볼 수 있는 컴퓨터를 샀고 그때부터 저의 첫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 병을 이긴 것은 아닙니다. 같이 살아가는 거죠. 이 병이 한번 아프면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아프거든요. 힘겹게 버티고 있어요. 억울하고 속상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누가 저에게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저는 거절할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프면서 배우고 깨달으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그래서 아프기 전의 나보다 아프고 난 후의 나를 더 사랑합니다. 아픈 건 괴롭지만요.

여기 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과 같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지? 저 사람 탓이야 하면서 절망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이 고통 또한 나를 위해 존재하기에 꼭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두 사람에게 똑같이 2021년이 주어졌습니다. 둘은 어떤 1년을 살게 될까요?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 날, 두 사람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건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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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도서 <마음이 흐르는 대로>와 세바시 지나영 교수 강연을 인용,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