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현 다산북스 편집관리팀 팀장
하루는 아이가 물었다. 어른들은 왜 맨날 회사 가는 거야? 글쎄, 밥값 하려고? 아니지, 여섯 살 난 딸에게 들려주기에 적절한 말은 아니다. 회사에 가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도 아니고. 그럼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꿈? 희망? 성공? 자아실현? 가만, 자아실현을 어떻게 설명한담? 우물쭈물 망설였더니 아이가 먼저 답을 찾아냈다. 아하, 공부하러 다니는구나.
가끔 아이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도 그랬다. 회사에 공부하러 다닌다고? 회사는 학교가 아닌데. 그런데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나는 공부하러 회사에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더더욱 헷갈린다. 지난주 다섯 번째 본부장 교육 때는 조직 운영과 업무 노하우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이번 주 독서경영 시간에는 팀원들과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까치) 개정판을 함께 읽기로 했다. 다음 ‘R&D의 날’에는 지금 개발 중인 투고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올 초 팀에 들어온 편집자는 내일부터 10주 차 신규 입사자 교육을 듣게 된다. 아무리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교육에 진심이다. 어디냐고? 다산북스 이야기다.
어서 와, 10주 차 신규 입사자 교육은 처음이지?
다산북스에 입사하고 두 달쯤 뒤였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과 신규 입사자 교육을 듣게 되었다. 교육은 매주 월요일 저녁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장장 10주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었다.
앞의 5주는 대표가 강의를 맡았다. 다산북스의 창업 이념과 역사, 사명과 핵심 가치 등을 통해 다산북스가 어떤 출판사인지 알 수 있었다. 뒤의 5주는 기획편집, 출판마케팅, 전자출판 파트의 부서장이 경험과 노하우를 들려주어 어떻게 성과를 쌓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라 세세한 내용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첫 시간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강의 자료에 떡하니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왜 행복한가?”
“나는 왜 행복한가?”라니? 마치 느닷없이 길을 가로막고는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물어오는 누군가를 마주칠 때처럼 도전적인 질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편집관리팀이라는 이름도 낯선 신생 팀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었으니까. 이전 회사에선 늘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나 도제식 비슷한 교육을 받았는데 다산북스는 달랐다. 아무도 내게 뭐라 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으니 넘치는 자유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할까. 교정 교열이란 직무를 맡았지만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할지조차 막막하고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인 내게 왜 행복하냐고 묻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얘기를 5년 뒤 대표의 팀장 리더십 교육에서 다시 한번 듣게 된다. 팀장 리더십 교육도 스물여덟 명의 팀장이 대표에게 출판 비즈니스에서 성과를 올리는 방법을 배워보는 10주 차 강의였다. 첫 번째 강의의 주제는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였는데, 대표는 이 시간에도 “행복이란 무언가가 된다는 것에 있지 않으며 존재 자체에서 행복이 시작된다”며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은 절대로 깃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마 5년 전에도 지금도 대표는 다른 무엇보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5년이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을 또다시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귀가 뜨이는 느낌이었달까.
지금도 다산북스에서는 정기적으로 10주간의 신규 입사자 교육이 이뤄진다. 이제는 파주 사옥에서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진행한다. 대표에게 직접 다산북스의 철학과 비전을 들을 수 있음은 물론 대치동 일타강사 못지않은 부서장들이 강의자로 나서 조직문화와 회사 생활, 어린이 출판 사업, 기획편집, 출판마케팅과 홍보, 2차 콘텐츠 사업과 웹툰·웹소설 비즈니스 등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다산북스에 새로 입사한 분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일 없이 무사히 안착할 수 있으리라.
1년에 60권을 읽으면 100만 원?
신규 입사자 교육이 끝나면 교육을 함께 들은 동기들과 1년 동안 60권 읽기 미션을 수행한다. 한 달에 다섯 권씩, 1년 동안 60권을 읽고 독서록을 제출하면 회사에서 축하금 100만 원을 수여하는 제도다. 얼핏 보면 일주일에 한 권꼴로 읽는 셈이라 출판계 종사자에게는 만만한 과제 같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매달 다섯 권씩 읽고 독서록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산북스에서는 신규 입사자에게만 책읽기 미션이 떨어진 게 아니다. 독서경영이란 이름으로 책을 읽는 문화가 여러 그룹별로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각 팀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독서경영을 실시한다. 팀장은 본부장과, 본부장은 대표와 책을 읽기 때문에 직위가 높아질수록 참석해야 할 독서경영의 수도 많아진다. 대표의 경우 다달이 본부장 그룹, 마케팅홍보 그룹, 웹툰·웹소설 그룹과 개별 독서경영을 진행한다. 한마디로 책을 읽지 않는 자, 다산북스에 있을 수 없다는 경영 방침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독서경영 시간에는 미리 선정한 책을 읽고 와서 ‘본깨적’, 즉 본 것과 깨달은 것, 적용할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 사람이 책의 핵심 내용이나 인상 깊은 구절, 고민해 볼 문제를 서너 개씩 발표하면 그중 몇 가지 의제를 골라 다 함께 토의한다.
처음엔 이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독서를 경영의 무기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내 생각과 의견을 발표하기도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대표가 주재하는 독서경영에서는 의도와 목적이 분명한 책을 읽는다. 평소라면 절대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 이를테면 전략적 사고와 리더십, 조직 운영과 혁신, 마케팅과 브랜딩 등에 관한 책이 선정되곤 한다. 그런데도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며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터놓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된다.
독서경영은 혁신을 빠르게 실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해 보인다. 최근 다산북스는 ‘업무일지’를 ‘성과일지’로, ‘월간회의’를 ‘월간성과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을 가장 먼저 실행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역시 대표와 임원들이 sbi ‘출판사 경영역량 강화’ 강의와 독서경영에서 류랑도 저자를 만난 후에 나타난 변화다. 다 함께 책을 읽으며 한 차례 초점을 맞춘 뒤라 변화로 나아가기가 한층 수월하다. 회사에 새로운 흐름이 보이면 나는 재빨리 독서경영 보고서를 찾아본다. 변화의 실마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는 없어질 거라고?
2021년 4월부터 다산북스에서는 ‘R&D의 날’도 시행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을 R&D의 날로 정해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팀별 혹은 본부별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예컨대 콘텐츠사업본부의 경우 첫째 주에는 베스트셀러 분석, 둘째 주에는 서점 현장 방문, 셋째 주에는 독서경영, 넷째 주에는 심층 기획회의 같은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1년은 워라밸 제도를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주 5일 여덟 시간에서 일곱 시간으로 근로 시간을 한 시간 단축했다. 퇴근 시간이 여섯 시에서 다섯 시로 앞당겨진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금요일 오후마저 하던 일에서 손을 떼야 하니 당장 일할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R&D 활동을 끝내고 야근을 하거나 일거리를 들고 퇴근해야 하는 일이 생겨났다. 조직적으로도 생산성 저하가 화제에 올랐다. 시간관리와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머지않아 워라밸 제도든 R&D의 날이든 둘 중 하나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당 40시간 근로를 거의 32시간으로 줄여 하루의 근무일을 없앤 셈이니 경영자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경제적 손해가 적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워라밸 제도와 R&D의 날은 공존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니, 애당초 둘 다 선택할 수 없는 제도였다. 그런데 이 두 제도는 2024년 현재에도 굳건하게 운영되고 있다. 다산북스가 2021년 이후 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표는 이 성장의 원동력이 교육에 있다고 공언했다.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탐구를 통해 변화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한 덕분에 조직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다산북스가 학습하는 조직, 탐구하는 조직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결단이었다. 직원들은 R&D의 날을 통해서 여타 회의나 보고에서 풀 수 없었던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어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지난해 편집관리팀에서는 『다산북스 교정 용례집』 개발을 R&D의 날의 중점과제로 삼았다. 사전에서 찾기 어려운 우리말 지식이나 교열 사례를 틈틈이 기록해 두었다가 어휘, 문법, 띄어쓰기, 교열의 총 4장으로 구성된 용례집으로 묶어 사내 편집자들에게 배포했다. 편집자들의 교정 실력이 더 좋아질수록 팀의 일거리가 줄어들리라는 우리 나름의 큰 그림에서 벌인 일이었다.
또 사내 편집자들이 직접 강의자가 되어 자신의 업무 스타일과 노하우를 동료들과 나누는 편집자 릴레이 특강도 열었다.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아래아한글 활용 꿀팁과 원고 정리 가이드’ ‘일정 사수를 위한 프로세스 최적화 비법’ ‘저자와 편집자는 한 팀이 될 수 있을까’ 등 세 가지 주제로 세 명의 편집자가 교대로 강의를 준비해 발표했다. 신규 입사자 교육이나 독서경영은 회사가 제도적으로 장려하는 교육인 데 비해 편집자 릴레이 특강만큼은 순도 100%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강의라서 더 뜻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냥 일만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다산북스의 사내 교육 프로그램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신규 입사자 교육, 독서경영, R&D의 날 운영뿐만 아니라 본부별 교육, 팀장 리더십 교육, 본부장-팀장 멘토링과 코칭을 통해 교육을 내실화하고 있다. 직원들이 스스로 교육의 공급자나 수혜자가 되어 서로를 가르치고 배워가며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교육에 참여하는 마음이 늘 편치만은 않다. 일과 중에 교육을 듣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밀린 일을 처리할 때면 과연 이게 정말 맞는 길인지 ‘현타’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 반대로 이제부터 오로지 일만 하게 해줄까 하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듯하다.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교육을 통해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열성적인 교육 프로그램 탓에 한순간 내 일에 제동이 걸리더라도, 그 시간 덕분에 비로소 앞뒤를 살피며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모든 직원이 쓰는 성과일지도 훌륭한 교재라고 생각한다. 다산북스에서는 성과일지를 자세히 쓰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고 유용한 업무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겨울, 동료의 성과일지에 어느 초등학교에 걸린 현수막 사진이 올라왔다. 현수막에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배울 수 있는 환경. 바람꽃 산내초등학교 교직원 일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슬로건을 내건 산내초 선생님들이 참 멋져 보였다. 가르침에는 용기가, 배움에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나 역시 이곳에서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성과일지에 정말 멋진 슬로건이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동료가 곧장 이런 답글을 올려주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배우는 데에도 용기가…!! 다산북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용기를 주고받고 있지요…!!”
가르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오늘도 다산북스는 열공 중이다.
출처: 기획회의 604호(202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