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크던 무남독녀 외동딸. 열일곱 어린 나이에 4박 5일 사찰체험에 나섰다가 그대로 2년을 절에 눌러앉았다. 웬만해선 있는 사람 내보내는 일 없는 스님이 나가라고 해 절을 나왔고,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평범한 스무 살을 보내나 했더니, 이번엔 아빠가 카카오톡 문자로 돌연 ‘출가’하겠다는 폭탄선언을 남긴 채 절로 들어갔다. 얄궂은 사연의 주인공은 최근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펴낸 양다솔(27) 작가다.

책을 펼치면 그가 겪어온 지난한 세월의 고통과 괴로움, 놀라움과 충격 그리고 짜릿하고 통쾌한 일들이 한가득 펼쳐진다. 웃음과 울음을 오가는 감정선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가도, 읽다 보면 각 잡고 앉아 책을 들어야 하는 순간도 온다. 알음알음 알려진 인기에 이 책은 세상에 나온 지 두 달도 안 돼 벌써 4쇄를 찍었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에, 원래는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잘 해봐야겠다며 시원한 포부를 밝힌 그를 전화로 만나봤다.
친구와 한창 어울리고 공부해야 나이에 절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열일곱 살 때였어요. 정말 우연히 간 거죠. 아빠가 절에서 진행하는 4박 5일짜리 프로그램에 저를 넣었거든요. 제가 간 곳은 산속 깊은 곳에 있었는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특히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여기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싶었는데, 스님이 할 일 없으면 절에 들어와 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눌러 앉았죠.”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절에서 나온 이유도 궁금합니다.
“절에선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항상 졸리고 배고팠고요. 졸음을 참을 수 없어서 일해야 할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잠을 자 혼도 많이 났죠. 그러면서도 집에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절에서 지내는 2년간 500배를 매일 했고요. 보통 한 시간에서 두 시간쯤 걸려요. 일이 많아서 500배 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저는 일과가 새벽 두 시에 끝나더라도 꼭 하고 잤어요. 이거라도 안 하면 난 집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요. 매일 500배를 한 사람은 제가 유일할 거예요. 제 마음속 트로피죠. 이 일을 계기로 스스로 한 약속 정도는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전 절에서 평생 살 생각이었어요. 근데 열아홉 마지막 겨울쯤 스님이 갑자기 나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스님이 먼저 나가라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웃음) 스님께서 그 시기에 해야 할 고민이나 친구들과의 만남도 중요하니 나가서 그런 시간을 보내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들어갔던 거라 절에서 나온 후 바로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에 들어갔죠.”
양 작가는 스무살 무렵 살던 집에서 독립해 나왔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대학 졸업 이후부터는 시민단체와 출판사에서 3년여간 일하다 올해 퇴사했다. 삶의 배경이 바뀌는 여러 순간에도 그는 글을 써왔다. 10대 시절 글 쓰는 모임에 들어간 이후로 꾸준히 이어온 그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2018년 수필집 ‘간지럼 태우기’를 냈다. 출판계의 황무지라는 독립출판으로 낸 책이라 기대는 없었지만 책은 의외로 잘 팔렸다. 첫 책의 성공으로 출판 제안을 받은 그는 3년 만에 이번 에세이로 정식 출판계에 출사표를 냈다.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책 두권을 내고야 만 그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인기에 전국 북콘서트를 하며 바삐 지내고 있다.

-원래는 출간 생각이 없었다고요.
사실 책을 낼 생각도 없었고, 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친구가 2년 동안 10번 넘게 제게 강요를 하더라고요. 책을 내야 한다고요. 다 거절했었는데 어느 날에는 ‘이번에는 팔 곳까지 마련해놨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얘가 안 팔리는 모습을 봐야 입을 다물겠구나’ 싶어서 시작했죠. 그간 썼던 글로 1주일 만에 표지까지 직접 포토샵으로 만들어 냈어요. 볼품없었죠. 안 팔릴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돼서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았고 이번 출판까지 이어졌어요.”

-요즘 북콘서트 외에 따로 하는 일이 있나요.
“‘격일간다솔’이라는 메일 구독 서비스를 만들어서 구독료를 받고 글을 보내드리기도 하고, 메이크업에 재주가 있어 개인 뷰티 컨설턴트 일도 하고 있어요. 메이크업 출장도 나가고요. 강연도 하고 글쓰기도 가르치고 있어요. 청탁 원고를 쓰는 경우도 많고요. 서점 아르바이트도 1주일에 이틀씩 했는데 이번 달에는 좀 바빠서 쉬고 있어요. 전 돈 주고 해달라고 하면, 못하는 것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해요. 행사 사회도, 노래도 부를 수 있죠.” (웃음)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 활동도 한다고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수필과 많이 닮았어요. 스탠드업 코미디도 무대, 마이크, 사람 이야기를 가지고 하는 거고, 수필도 종이와 연필, 사람 이야기로 하는 거잖아요. 근데 말로 해야 재미있고, 글로 해야 재미있는 게 있어서 말로 해야 재밌는 걸 스탠드업 코미디로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말하는 재주가 있어서 결혼식은 물론 각종 행사의 사회도 보고, 팟캐스트 게스트로도 출연했거든요. 친구들이 자기들만 듣기 아까울 정도라고 하죠. 그래서 계획적으로 사람을 웃겨보면 어떨까 싶어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두 번 60명 정도의 관객을 모시고 유료 공연도 했어요. 실력에 비해선 모임이 주목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사실상 거품이고, 언제든지 공중분해 될 수 있는 모임이에요. (웃음) 아주 웃긴 사람들도 아니고요.”
-무전여행으로 유럽에도 갔다고요. 혼자라 위험했을 것 같은데 반대는 없었나요?
“부모님은 이유만 타당하면 무엇이든 다 허락해 주셨어요. 절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였죠. 근데 이 여행만큼은 엄마가 반대하셨어요. 네가 떠나면 ‘관을 짜놓겠다’고도 하셨어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죽음은 운명이라 집에 있다가도 지붕이 무너져 죽을 수 있고, 길을 걷다가도, 지하철을 타다가도 죽을 수 있는데, 무전여행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냐’고요.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 죽겠다’고도 했어요. 무전여행은 제 로망 가운데 하나였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여행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돈은 안전한 잠자리와 식사, 이동을 보장해 주는 대신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막는 무언가이기도 했고요. 현지인들이 쉬는 곳에서 함께 쉬고, 그들이 먹는 걸 먹으면서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었어요. 물론 도움을 받지 못하면 어떤 것도 혼자 할 수 없다 보니 위험하기도 했지요.”

-3개월간 유럽 10개국을 다녔으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17kg짜리 가방을 메고 매일 걸었더니 돌아올 때쯤엔 6kg 정도가 빠졌어요. 굉장히 예뻐졌죠.(웃음) 근육도 많이 생겼고요.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해본 거라 행복했는데 위험할 때도 있었어요. 남의 집 소파에 신세를 지는 카우치 서핑을 보통 했는데, 스위스의 한 집에서 주인집 아들 때문에 불쾌한 일을 경험할 뻔했거든요. 이 일 때문에 화가 나 밤새 잠도 못 잤어요. 다음날 복수를 했죠. 약자처럼 보이는 이들에겐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을 깨주고 싶었거든요. 그런 짓을 다신 못하게 해줬어요. 나중에 보니 카우치 서핑 사이트에서 탈퇴했더라고요. 잘된 일이죠.”
-유럽 무전여행을 혹시 다시 갈 수도 있을까요?
“절대 안 갈 거에요.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고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고 위험한 상황도 많았어요. 전 운이 좋았죠. 여자지만 전 얕잡아 보기 힘든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절에서 하도 일을 많이 했더니 기초체력이 좋았어요. 절에서 나왔을 때 ‘체조 선수냐’고 주변에서 물어올 정도였죠. 몸에 근육밖에 없었고요. 웬만한 성인 남성 못지않은 몸과 힘이 있던 시절이었어요.”

-늘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유쾌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평소 때는 오히려 저는 늘 가라앉아 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요. 이럴 때는 비관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 걱정∙두려움도 많아요.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부터는 아주 밝아져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간은 밝은 사람인것 같아요. 비관적인 것치고는 용기를 잘 내고 상황을 헤쳐나가는 힘이 세죠.”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해요.
“이렇게 된 이상 작가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게 됐어요. 예전에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를 많이 고민했는데, 요즘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질문이 바뀐 걸 보면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쓰기가 저를 먹여살려줄 때까지 글을 써볼 작정입니다. 글쓰기 소상공인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야죠.”
글 jobsN 고유선
jobarajob@naver.com
인터뷰 출처 – 잡스엔 http://naver.me/x1DdHLV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