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우연히 눈에 띈 대통령의 잔뜩 낡은 신발 밑창.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신발이길래 저렇게 밑창이 닳을 때까지 신었을까 궁금해했다. 그 구두가 청각장애인들이 만드는 수제구두 ‘아지오(Agio)’라는 것이 알려지고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아지오는 경영악화로 2013년에 폐업을 한 상태.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많은 관심 속에서 화려하게 다시 날개를 펴고 대박신화를 써내려갔을까? 물론 그 길이 눈앞에 넓게, 환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보이는 탄탄대로 대신 아지오는 다른 길을 택했다. 원칙을 지키면서 다 함께 가는 길이었다. 청각장애인이 만드는 구두, 직접 손으로 만드는 구두, 신는 사람에게 최고의 편안함을 선사하는 구두라는 길을 말이다.
시각장애인 대표와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만든 아지오의 스토리를 담은 책, 『꿈꾸는 구둣방』을 출간한 ‘아지오’를 대표해 창업자인 유석영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이야기.
(‘아지오’는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의 구두 브랜드 이름이다. 대중들에게는 ‘구두만드는풍경’ 보다 ‘아지오’로 많이 알려져 있어 회사를 가리킬 때 ‘아지오’로 지칭했다)

아지오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스토리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모르고 시작한 엉뚱한 일이죠. 사실 비즈니스는 사업성, 충분한 이익, 그리고 분배까지 생각하면서 해야하는 일인데, 청각장애인들도 일을 할 수 있고, 일하면 즐거워할 것이고, 정직하고 좋은 물건이면 고객들도 사줄 거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거든요. 당연히 고생이 따를 수 밖에 없고 곡절이 많을 수 밖에 없었죠.
책은 개업 후 3년 만에 폐업을 결정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가장 아팠던 실패의 순간으로 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은 좋은 재료로 질 좋은 구두를 만들면 고객들이 알아봐줄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감성적이었죠. 저희가 도전을 했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결국 시장 돌파력이 약해서 처절하게 패배하게 되었어요. 시작은 할 수 있지만 그게 실패했을 때 장애인들은 더 큰 상처를 받아요. 이미 장애 때문에 상처를 받은데다 희망을 갖고 왔다 그게 무너질 때 받는 상처는 더 크거든요. 다시 시작할 때는 그런 아픔과 상처가 없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대통령의 구두가 이슈가 되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지만, 무턱대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지오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굉장히 신중했거든요. 많은 시간을 망설이고, 기다리고, 점검하고, 그렇게 다시 시작했을 때는 넘어졌던 순간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다시 일어나 나아가더라도 같은 유형의 실패는 하지 말자, 그 실패를 통해서 더 건실하게 커 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서론 부분에 담고자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12년간 일하다 장애인 복지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관심을 갖고 아지오를 만들게 되셨는데요. 일이란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특히 장애인에게 일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한 것 같아요.
모두에게 일은 권리이자 의무죠. 일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하고도 연결이 되고, 일에서 얻어지는 소득이 결국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 되고요.
저도 살아오면서 장애 때문에 일에서 배제되고, 다른 사람들은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 청소년기부터 있었어요. 굉장히 속상했죠. 그래도 저는 어쨌든 도전도 해보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충분히 해오면서 살아온 사람이지만,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분들이 많거든요. 능력과 솜씨가 있는데도요.
장애를 가진 경우, 장애로 인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장애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예산이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단순히 장애인들에게, ‘이만큼 줄테니 이것 가지고 살아요’라고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장애인들이 직접 사회 안에서 일을 하고 소득을 얻는 것이 문제 해소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죠. 게다가 일이란 것은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자존감, 자존심, 그리고 자부심을 통틀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대표님은 시각장애인인데 청각장애인 직원들과 일을 하시잖아요.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한 그룹으로 보기 쉽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와 현실이 있더라고요. 대표님도 낯선 청각장애인 문화와 접하면서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84년인가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를 했을 때의 일이에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달리기를 했어요. 시각장애인은 총소리를 듣고, 청각장애인은 깃발을 보고 출발을 하는 거죠. 그런데 시작 전인데 깃발이 조금 흔들렸고, 청각장애인이 그걸 보고 뛰어버린 거에요. 감독관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제지를 하는데 청각장애인은 그걸 못 듣고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차이에 대해서 배려를 못한 거죠.
저도 그랬어요. 모두 불편하고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화려한 것도 볼 수 없고 이동하는데 제한도 받으니까 시각장애인이 제일 불편하다 생각했죠. 내가 시각장애인이니까.
그런데 복지관 관장을 하면서 가까이서 청각장애인들을 대하니 그분들도 또 다른 측면에서 굉장히 애를 먹고 있었고, 또 문화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한번은 청각장애인들과 캠프를 갔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큰 소리를 내고 밤새 쿵쿵거리면서 다니는지 속으로 욕을 했다니까요. 그런데 다음날 생각을 해보니까, 들리지 않으니까 내가 내는 소리가 시끄러운지 모를테고, 청각장애인 문화에서는 몸짓과 움직임이 바로 언어니까 동작이나 표정을 크게크게 하게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그런 부분을 몰라줬구나 싶었죠.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태를 택한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자주 듣긴 하지만 단순히 ‘사회 공헌을 하는 기업’ 정도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사회적 기업이란 무엇인가요? 아지오를 만들면서 사회적 기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회적 기업은 경제와 사회공헌이라는 두 개의 바퀴를 굴리면서 여기서 나오는 이익과 파생되는 여러 가지를 사회에 다시 재환원하는 것이에요. 사회 공헌에는 캠페인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거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한다거나 그런 모든 것이 포함되는데, 아지오의 경우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죠. 그리고 고객들의 발을 편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 그리고 정직하게 신발을 만드는 것 모두 사회적 기업의 틀 안에 있는 것들이고요.
사실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 구두 업계는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외출이 많이 줄어서 구두를 찾는 분들이 적어지니까요. 다른 기업 같은 경우에 인력 감축을 하기도 하지만 아지오는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니까, 사업이 어렵다고 인력 감축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죠. 그런 조건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아지오의 구두를 구입하신 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또 그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면서 연결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희망이 보이기도 해요. 거북이처럼 느려 보이긴 하지만요.
아지오는 처음부터 제대로 만든 수제화를 지향했는데요. 이 선택이 처음에는 수지 타산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미 선발주자들은 해외에서 구두를 대량으로 만들어와서 상표를 붙여서 팔고 있는데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진정성으로 다가서자 생각했죠. 고객들의 발을 진정으로 생각하자는 의미에서의 접근이었죠. 구두는 확실히 손이 많이 갈수록 더 부드럽고 편해지고 예뻐지거든요.
가성비는 떨어져요.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한 번에 대량으로 만들 수 없고요. 하지만 직원들이 점점 담당 업무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만들 수 있는 수량도 늘어나고 품질도 좋아지고 있죠.
아지오만의 특색 있는 서비스라고 하면 직접 찾아가서 고객의 발을 실측해 구두를 만드는 것인데요. 사실 직접 찾아가서 발을 실측한다는 것도, 개개인에게 맞는 구두를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구두가 참 어려운 산업이에요. 까다롭고 리스크도 많고요. 한편 보람도 있어요. 남다른 발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이 아지오 구두를 만나서 발이 편해졌다, 일 할 때 지치지 않는다, 건강해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는요.
사실 실측 그 자체는 마이너스가 나는 일이에요. 전국 어디나 출장비는 3만원이거든요. 그런데 또 인력이나 비용 문제로 몇 달 실측을 안 했더니 주문이 떨어지더라고요. 실측을 다시 시작하니까 주문이 오르고요. 아지오는 직접 발을 재서 구두를 만든다는 이미지가 고객들에게 각인이 된 것 같아요.
어쩌다가 아주 독특한 발을 만나면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수정을 하는데, 거기에 따른 비용과 손해도 있지만 결국은 그분들이 우리에게는 스승이 돼요. 그런 독특한 발에 맞는 구두를 만들면서 기술력도 늘고 아지오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도 쌓이거든요.
2017년에 다시 아지오의 문을 열게 되는데, 당시 대통령의 구두로 유명세로 타면서 많은 투자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쉽게 외부에서 투자를 받기 보다는 신중하게 계획하고 차근차근 협동조합으로 문을 다시 열었어요.
유혹이 굉장히 많았어요. 돈이 될 것 같으니까 투자하겠다는 얘기도 많았고요. 무엇보다 주문이 많아지니까 제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까 위탁을 줘서 더 많이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아지오의 구두는 청각장애인이 만들어야 아지오의 구두인 거거든요. 힘들 때면 자꾸 초심의 뿌리가 건드려지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처음의 원칙들을 무너뜨리지 않고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책에는 처음의 폐업 이야기부터 직원들과의 갈등까지 굉장히 솔직하게 쓰여 있어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여러 어려움을 맞닥뜨려 고민하는 과정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어요.
이 책에는 지금까지의 사건이나 에피소드, 그리고 커가는 과정 속에서 겪은 성장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담았어요. 고객의 발에 맞는 구두를 만들지 못해서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서 전달하는 에피소드도 있고, 처음에 직원들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에서의 소통의 오류 같은 것들도 숨기지 않고 가려고 했어요. 성공 비법을 알려주기 보다는 서투른 아마추어가 노력해서 도달한 지점까지 만이라도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생각을 했죠. 저희가 처음 시작을 할 때도 그렇고 다시 문을 연 것도, 고객들의 호응과 소통 덕분이거든요. 저희 안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서 공유하고, 그걸 통해서 새롭게 발전해가는 방향을 찾고 싶었어요.
책을 엮으면서 지난 시간들을 다 꺼내놓고 보니까, 우리가 참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구나 싶더라고요. 경제적인 빚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빚도요.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함께 일해준 직원들, 그리고 아지오의 구두를 구입해준 고객들에요. 이 빚은 회사를 더 튼실하게 만들고 더 좋은 구두를 만드는 것으로 갚아야겠구나 생각합니다.

2017년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다시 출발을 하면서 아지오도 기업으로서도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실패가 주는 교훈이 가장 컸어요. 경제를 읽는 것, 소비자를 읽는 것, 마음을 사는 것,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세우는 것, 이런 것들을 모두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좋은 물건을 만들면 알아주겠지, 우리 진정성을 알아주겠지, 그런 소극적인 자세로는 안된다는 것도 배웠어요. 우리가 만드는 물건을 통해서 고객들을 행복하게 하고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신발장에 이미 유명 브랜드의 구두를 갖고 있는데도 아지오의 구두를 선택하는 분들은 ‘가치있는 소비’를 원하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분들이 원하시는 ‘가치’를 우리가 만들어야겠죠.
우리가 만들어놓고 잘했다 만족하기 보다는 고객이 바라는 그 지점까지 가야한다는 깨달음도, 그 뿌리는 실패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인 것 같고요.
아지오가 앞으로 도달하고 싶은, 지향하는 방향이라면 무엇인가요?
수치적인 목표라면, 지금은 1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30명까지 고용을 늘리고 싶어요. 초기 목표가 30명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달성을 못했거든요. 그리고 직원들을 공정별 장인으로 만들어내고 싶어요. 장인이 되어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가 큰 목표 중 하나죠.
사실 30인을 고용하고 급여를 얼마를 주고 이런 수치적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지오에서 일을 함으로써 청각장애인들의 경제적 상황을 충분히 좋아지게 하고, 그분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앞으로 추구하고 밀고 나아가야 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이 책에는 성공이 담겨 있진 않아요. 성공을 향해 가는 모습, 실패라는 아픔을 겪고 그것을 긍정으로 넘어서 시즌2를 일궈가는 모습이 담겨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달려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고요. 책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책을 읽고 ‘나도 한 번은 아지오 구두를 신어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고요.
편한 자세로, 기쁜 마음으로, 풍경을 그려가면서 책을 읽으면 가슴에 남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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