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비혼인 방송인 사유리가 정자 기증을 받아 홀로 아이를 출산한 소식은 큰 주목을 받았다. 출산과 가족의 형태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과 토론들로 주변은 시끄럽지만, 정작 사유리에게 그런 주변의 시끄러움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발적 비혼 출산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의 고민과 과정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 ‘젠’과의 소중한 하루하루 그 중심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 그 하나의 진심만이 있기 때문이다.

출산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젠과 함께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출산 후 1년이 정말 정신없고 몸도 마음도 힘들 때인데 책까지 쓰셨다니 굉장해요! 책은 언제부터 준비하셨나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난 번 책은 1년 정도 걸렸는데, 이번에는 작업이 더 빨리 진행되었어요. 그렇지만 재미있었어요. 젠을 위해서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젠에게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고요.
사유리 씨가 자발적 비혼 출산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관심이 쏠리다보니 이 부분을 과장이나 오해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책에서도 이 부분을 쓰면서도 표현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텐데요.
비혼모 홍보대사나 정자은행 홍보대사처럼 되는 건 싫었고요. 저는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비혼 출산이라는 결정을 한 것뿐이거든요. 저에 대해서 너무, 비혼모 멋있다, 이런 식으로만 얘기되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그래서 책에서는 표현을 부드럽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렇다’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비혼모는 이렇다’ 이런 식으로 확대되어서 단정적으로 읽힐까 봐 고민을 많이 하고 표현에 대한 수정도 많이 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책임있게 제대로 살아야되겠구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왜냐하면, 내가 실수를 하면 ‘역시 싱글맘이라서 그래’ ‘아이 아빠가 없으니까 그렇지’ 이런 식으로 다른 비혼모, 싱글맘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실수하지 않고 조심하려고 해요.
독자분들이 이 책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부분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제가 정답은 아니라는 거요. 저에게는 이 선택이 맞는 것이었지만, 사람마다 다 정답은 다르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나는 이 부분은 동의하는데 이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제 이야기도 그저 ‘아, 이런 생각도 있네’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교과서다, 워너비다, 그렇게는 생각 안 하고요.
책의 앞부분은 사유리 씨와 부모님의 이야기인데요. 저는 읽으면서, ‘아, 이래서 사유리 씨가 가족을 간절히 원했구나’ 싶었어요. 가족들 사이에서 좋은 영향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처럼 좋은 엄마, 아빠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거든요.
저는 엄마하고 사이가 정말 좋거든요. 아이가 생기면 엄마와 저 같은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엄마하고는 처음 병원을 찾아갈 때부터 함께 했지만 아빠한테는 임신하고 한참 후에 얘기를 했어요. 아빠는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노산이라서, 혹시 출산할 때 죽을까 봐 걱정하니까요. 나중에 임신을 알렸을 때도 아빠는, 아무 상관없다고, 사유리가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 얘기하셨고요.
지금은 제가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래요. 엄마 아빠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텐데, 아빠는 그때 내가 혼자 있어서 외로울까 봐 걱정이었데요. 그런데 지금은 사유리와 함께 있어주는 가족이 생겨서 다행이고, 그래서 젠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했어요.
저는 사유리 씨 부모님께서 사유리 씨의 선택을 담담하게 받아주고 지지해주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가족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제가 선택한 것을 지지해주셨어요. 그 부분이 너무 감사해요. 저도 젠이 커가면서 자기만의 생각이 생기면 그 생각을 많이 응원하고 지지하려고요.
그런데 막상 젠이 나중에, 나는 결혼해도 아기는 안 낳을 거야, 그러면 머리로는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해도 마음은 서운할 것 같아요(웃음). 아, 역시 생각이랑 현실은 다르구나. 아이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지지해준다는 것이 사실은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아이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지만, 또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니까요.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무거움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정신차려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고요.
한편으론 이런 마음도 있어요. 아이가 생긴 후에 더 어른이 되었다, 성장을 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가 아이가 없을 때는 그런 말들에 기분이 안 좋았거든요. 아이를 낳아야만 남들보다 우월해지고, 아이가 있기 때문에 뭔가를 더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거슬렸어요.
아이를 낳는 것이 터닝포인트가 될 수는 있지만, 아이를 갖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어요. 아이가 있다고 다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이만 낳고 무책임하게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기든 강아지든 다른 무엇이든 사랑하는 대상이 생겼을 때 책임감이 생기는 거라 생각해요. 나보다 더 소중한 누군가가 생기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느낄 때 성장하는 거고요.
사유리 씨하면 ‘솔직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솔직함’이라는 것은 사유리씨에게 정말 소중한 개성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솔직하니까’ 하면서 상처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거든요. 솔직하다는 건,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는 거에요. 나 살이 쪘구나. 이건 실패했어. 나는 사실 이런 생각을 했어. 이건 솔직한 거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너 실패했어, 너 살쪘어, 너 못생겼어’ 이런 말을 하는 건 솔직한게 아니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저에게 ‘용기가 있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나 봐요’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저는 아기를 포기할 용기가 없었던 거였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슨 수단이라도 써보려고 한거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선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어요. 보통은 아이를 원하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 이렇게 선택지를 너무 좁게만 봤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사실 다양한 것들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머리 속에서 ‘이건 안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강하니까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코끼리가 어렸을 때 쇠사슬에 계속 묶어놓으면, 나중에 몸집이 커져서 쇠사슬을 언제든 스스로 끊을 수 있는데도 쇠사슬 끊는 걸 포기하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본인 스스로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것 정말 죽도록 하고싶고, 그래서 뭐라도 하겠다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두려움 때문에.
비혼 출산을 공개하는 선택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낯선 일이니까 사실대로 말하면 말도 많아지고 힘들 것 같으니까. 그래서 잠깐 만났던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 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냐고, 그냥 사실을 말하라고 했어요. 아이를 위해서라도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그래, 내가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아이에 대해서 내가 계속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거짓말을 하면 끝까지 거짓말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거짓말하면 눈동자가 엄청 왔다갔다 하는데, 누가 물어볼 때마다 눈동자가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면 더 수상하잖아요(웃음). 중간에 말을 바꾸면 더 이상하고, 이상한 소문이 돌아도 해명하기 어렵고요.
사실대로 말하니까 지금은 마음이 편해요. 심플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해요.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살면 힘들어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요. 병실에서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고 또 분만실에 다른 보호자도 들어올 수 없었다는 건 몰랐어요. 힘들진 않았나요?
사람들이 많이 외로웠지? 괜찮아? 라고 물어보는데, 저는 정말 괜찮았어요.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기뻤거든요.
책을 쓰면서 젠과 함께했던 그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았을텐데요. 그 시간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어떤 장면인가요?
출산 후에 젠하고 퇴원을 하면서 본 하늘이요. 병원에서 창으로 파란 하늘을 보면서, 이 하늘을 평생 잊지 않을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기억할거라 생각했어요. 오늘도 하늘이 파란데, 하늘을 보니까 그날이 생각나요.
부모라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바라는 것이 많을텐데요. 젠에게는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희 엄마가 어렸을 때 집에 청소해주러 오는 이모님이 계셨다고 해요. 이모님이 항상 어린 딸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는 엄마가 청소를 하는 동안 TV를 봤고요. 어느 날엔가 엄마랑 외삼촌이 몰래 TV 코드를 뽑았는데, 아이는 TV가 안 나오니까 놀라고 그 모습을 엄마가 재밌어 했는데, 외할머니가 알고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데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요. 엄마가 그때는 외할머니가 왜 화를 냈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고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본인이 너무 창피하고, 그런 비겁한 행동 때문에 외할머니를 슬프게 한 것도 미안하고요. 엄마가, 사유리도, 손자도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이런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돈은 얼마나 많이 버느냐 보다 어떻게 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겁하게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어떻게 살아가느냐, 비겁하지 않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행복은 셀프」 「불행도 셀프」 이 두 글이 저는 기억에 남아요. 행복이나 불행이나 모두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거라는 얘기가요.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에 내 행복이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행복은 셀프, 불행도 셀프’ 이 말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행복이나 불행이나 자기가 느끼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 100명, 1000명, 모두 ‘저 사람은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해도 본인이 불행하다 느낄 수 있고, 모두가 ‘저 사람은 불쌍하네’ 생각해도 내가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한 거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아들에 대해서 ‘애가 불쌍하다’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댓글을 봐도 상처받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아들이 ‘엄마, 나 힘들어’ 라고 하면 상처받겠죠. 다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말해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도 까먹는 걸요. 깊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니까요. 그런 일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유리 씨도 그런 남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나요?
노력한다기보다, 아예 그런 말들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에요. 내 행복은 내가 결정하면 된다, 우리 아들이 결정하면 된다, 그걸 믿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젠이 곧 돌이잖아요. 폭풍 성장 중인데(웃음), 사진 많이 찍어 놓으셨나요?
젠이 몸무게가 12kg이거든요. 어부바 하면 정말 허리 나가요(웃음). 그래도 내가 언제까지 젠을 어부바 할 수 있을까, 20년 후에는 젠이 나를 업어줘야 하나, 그런 생각하면 커가는 모습이 재밌어요.
처음에는 웃고 있는 귀여운 사진만 찍으려고 했는데, 울고 있거나 짜증내고 있거나 인상 쓰고 있는 이런 사진도 많이 소중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표정들을 많이 사진으로 찍으려고 해요. 사진만 아니라 영상도 많이 찍으려고 하고요. 제 휴대폰 보면 99%는 젠 사진이에요. 제 사진은 없어요(웃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이 책은 그냥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에요. 하나하나 진지하게 보지 않아도 되고, 아, 이런 생각도 있구나, 사유리는 이랬구나,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이 책이 나중에 젠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네요.
그러니까요. 젠에게 한글을 열심히 가르쳐줘야 해요(웃음).
인터뷰 출처 – 교보문고 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