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는 13년 차 사회인이자 살림 초보인 저자가 ‘제비(제로웨이스터이자 비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유쾌한 생활 에세이다.
다소의 불편함과 귀찮음은 분명 있지만 또 의외로 쏠쏠하게 재미있고 묵직하게 뿌듯한 ‘제비’의 이야기,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이은재 저자와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인디스쿨에서 강연도 하시고, 블로그에서는 제로웨이스X비건 매거진을 연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독자님들과는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셨네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3년 차 초등교사이자 신간 에세이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를 쓴 저자, 이은재입니다. 저는 2017년부터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했고, 지구 환경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없나 찾다가 후에 비건 지향도 하게 되면서 제비(제로웨이스터+비건)가 되었습니다.
제가 실천을 해 보니 정말 뿌듯하고 좋았지만, 여럿이 같이 실천해야만 더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각자 성격과 상황이 다른 제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리기는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주변 10명 중 고작 1~2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지만, 만약 100명에게 말할 수 있다면 최소한 10~20명은 내게 공감해 주지 않을까? 1,000명에게 말할 수 있다면 100~200명이 내게 공감해 주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강연도 하고 블로그에 제비 매거진도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또한 그동안 제가 겪은 일 중에서 재밌는 일화들을 골라서 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네요.
랩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대형마트의 채소보다 재래시장의 흙 묻은 채소를 구매하고, 샴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는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MBTI가 INTP인데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어떤 현상을 보면 그 원인과 결과를 꼭 따져 보는 성격이에요. 시작은 몇 해 전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 하늘이었던 것 같아요. 답답하고 뿌연 하늘을 노려보다가 특정 나라가 너무 미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곳에서는 이렇게 막대한 먼지가 발생하는지 원인을 거슬러봤어요. 아마 엄청난 수의 공장들이 있겠죠. 그럼 왜 엄청나게 많은 공장이 거기 있을까? 그 공장에서는 무엇을 만들고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제 주변 물건들이더라고요. 내가 값싸게 사서 쉽게 버리는 저 물건들이 미세먼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저도 뿌연 하늘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또 2017년에 쓰레기 대란이 있었어요. 중국이 더는 전 세계 플라스틱을 수입하지 않기로 해서 그동안 신나게 자국의 쓰레기를 수출하던 나라들이 모두 난리가 난 거죠. 한국도 그중 하나였고요. 그때 처음 ‘내가 버린 쓰레기가 가는 장소’를 생각해 봤어요. 서울의 쓰레기는 서울이 아니라 수도권에 매립되는 걸로 알아요. 하지만 내 집 근처에 쓰레기를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의 집 근처에 묻는 것 역시 좋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거죠. 저는 제 집 근처에 쓰레기를 묻고 싶지 않으니 그렇다면 쓰레기를 애초에 안 만드는 게 상책이구나, 이런 책임감이 생겼어요.
‘제비(제로웨이스트+비건)’가 되기 전과 후를 비교해봤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일상이 전보다 재밌어졌어요. 매일 요리조리 창의성을 발휘해서 쓰레기 없이 사는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에요. 오스트리아인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저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현대인들이 ‘돈’과 ‘편리’를 추종하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힘은 점점 잃고 있다고 역설했는데,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고 제 안에 잠재력을 찾은 것 같아요. ‘내 안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힘이 이토록 많이 있었구나.’ 싶어요. 그리고 ‘(어떤 물건이) 굳이 없어도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 뭐랄까, 생존력이 올라갔죠.(웃음)
비건 지향을 하면서도 비닐 포장을 지양하다 보니 가공식품보다는 제철 채소, 과일, 곡식을 주식으로 삼았어요. 그러자 돈이 확실히 절약되고 소화가 잘되고 피부가 맑아졌습니다. 또 ‘내가 몰랐던 맛있는 게 이렇게 많았다니….’ 싶어요. 절기마다 제철 채소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고, 눈개승마, 비름나물 이런 보도듣도 못했던 채소를 좋아하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고기가 최고의 음식이라 생각했을 땐 굳이 알려 하지 않았던 새로운 미식의 세계가 열린 거죠.
‘제’로 1년 살기 vs ‘비’로 1년 살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실 건가요?
아마 제. 둘 중 먼저 시작했기도 하고, 조금 더 애착이 가는 활동이 제로웨이스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안 먹으면 버려질, 햄이 든 김밥을 먹을 때는 있어도, 쓰레기가 나오는 비건 가공식품을 사는 건 훨씬 더 주저하게 돼요.
책 중에서 ‘들깨 감자 미역국’ ‘무국적 카레’ ‘깻잎 페스토’ 등 비건 레시피를 소개해 주시기도 했는데요. 독자님들께 추천하고 싶은 비건 레시피가 있다면 함께 나눠 주세요!
요즘 계절에 딱 맞는 참외 아이스크림 레시피 알려 드리고 싶어요. 저도 어떤 분 블로그에서 배워서 여름마다 잘 먹고 있어요. 보통 아이스크림에는 우유가 들어가는데 여기엔 두유가 들어갑니다. 참외의 표면을 깨끗하게 닦은 다음에 껍질째 깍둑깍둑 썹니다. 밀폐용기에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 두세요. 믹서에 언 참외 조각을 넣고 두유를 자작하게 조금 부은 다음 갈아 주시면 끝입니다. 설탕 없이도 참외 특유의 투명한 단맛과 두유의 담백한 고소함이 어우러져서 정말 깜짝 놀랄 만큼 고급스러운 맛의 여름 디저트가 돼요.

‘도시 생활자의 힙하고 쿨한 지구 사랑법’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지구야 미안해!”를 외치게 되는 순간순간의 연속인 것 같아요. 도시에 사는 우리가 일상에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습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도시인이 일상에서 환경을 어떻게 보호해?’라는 질문에 대답은 한두 문장으로는 불가능해요.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는 그 질문에 대한 저의 한 권 분량의 대답입니다. 만약 제가 방법을 대충 몇 개 골라서 나열한다면, 분명 그게 전부 맘에 안 들거나, 혹은 이미 다 하고 있어서 새롭지 않은 분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도시인이 환경을 보호할 방법은 엄청나게 다양해요. 한 권의 책이 될 만큼요. 그 많은 아이디어 중에는 누가 봐도 어려운 것도 있지만 사실 쉬운(조금 귀찮은)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걸 전부 다 할 필요 없이 그중에서 내가 끌리거나,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취사선택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추천한다면, 저는 이 세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엘리베이터를 나 혼자 타는 상황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단을 올라보면 어떨까요? 전신운동이 되는 건 덤입니다. 양치할 때 물을 컵에 받아 쓰면 어떨까요? 물을 최대한 틀어 놓은 상태라면 7초마다 1L의 물이 낭비됩니다. 주말 나들이 삼아 내가 사는 지역의 제로웨이스트샵을 검색해서 구경 가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요즘 전국적으로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중 어린이들과 함께한 ‘플라스틱 방앗간 챌린지’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어른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린이들은 기후위기나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요.
학교에서 만나는 열 살 남짓한 어린이들은 똑똑해서 이미 지구 온난화도 알고 북극곰 사진도 다 본 상태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종종 그런 걸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의 역할은 밥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쑥쑥 크는 거지, 어른들이 만든 환경 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위기, 오염 이런 단어들로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교실에서 환경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합니다. 바람직한 생활 습관을 잡아 주는 정도죠. 플라스틱 샤프 대신 연필 쓰기, 물티슈 남용하지 않기, 되도록 음식 남기지 않고 먹기, 빈 교실에 조명과 에어컨 꼭 끄기 등등. 가끔은 학급 이벤트로 친환경 챌린지를 하고 상품을 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인지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채식에 대해서는, 아직 성장기인 아이들에게 저의 생각을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기에 공장식 축산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는 아이들에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끔 급식 메뉴에 생소한 나물이나 채소가 나온 날이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넌지시 그 채소의 특징이나 영양가에 대해서 귀띔해 주곤 했습니다. 생각보다 ‘낯설어서’, ‘잘 몰라서’ 채소를 안 먹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소를 키울 때 나오는 메탄가스로 기후위기가 심해져. 그러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돼.”가 아니고 “이것 봐, 제철 채소도 이렇게 매력 있고 영양가가 가득해!” 이런 게 어린이를 위한 적절한 수준의 환경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에게 기후위기나 환경오염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작가님의 의견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이들은 말랑말랑합니다. 즉 어른의 행동이 먼저 바뀌면,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따라 바뀝니다. 제가 지구 환경에 신경 쓰는 이유도, 어릴 때 우유팩을 펴서 말리던 어머니를 봤던 기억, 전기 먹는 하마인 TV 셋톱박스를 밤마다 끄던 아버지를 봤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른들의 그런 행동이 강연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환경 교육보다 훨씬 강력한 교육이죠.
작년에 저희 반 아이들에게 딸기 제철이 언제냐고 물으니 당연한 얼굴로 1월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어른들도 1월에 딸기를 먹긴 하지만 제철이 봄이라는 걸 기억하잖아요. 탄소발자국이 큰 겨울딸기를 알면서 먹느냐 아예 모르고 먹느냐 이건 큰 차이입니다. 지금의 어른들은 아마 이 풍요와 편리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거예요. 그러므로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행동으로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지향’, 비건 ‘지향’처럼 지향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어렵게만 느껴지던 제로웨이스트나 비건에 대한 부담감이 덜어지는 느낌이더라구요. 완벽해야 할 것만 같아서 시작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로웨이스트나 비건을 지향하는 것이 완벽(?)에 가까워지려면 내 ‘편리’와 ‘편안’과 어긋나는 지점이 생겨서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구를 위하는 대부분의 실천은 내 ‘건강’과 내 ‘지갑의 안녕’과 이어집니다. 택배를 포기하고 장바구니를 무겁게 들 자신이 없다면, 빈방의 형광등을 끄거나 설거지할 때 물을 약하게 트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고(가벼워진 전기세, 수도세는 덤!), 맛있는 삼겹살을 포기할 자신이 없다면 장 볼 때 수입된 채소를 고르는 대신 국산 제철 채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저렴하고 영양 가득!) 부엌에서 고기 없이 카레를 끓이거나 햄 없이 볶음밥을 볶는 실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의외로 맛이 비슷해요.)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지구뿐 아니라 내 체력도 키울 수 있는 행동이죠. 이렇게 내 건강에 도움이 되고, 돈도 절약되며, 무엇보다도 내가 재미를 느낄만한 실천들을 골라야 부담도 적고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완벽하게 다 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서로를 보완하며 나아갈 뿐이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 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도 궁금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환경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위기에 대한 책임도, 변화에 대한 희망도 결국 우리 어른들에게 있으니까요.
인터뷰 출처 – 교보 북뉴스(http://news.kyobobook.co.kr/people/interviewView.ink?sntn_id=15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