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독자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며 깊은 공감과 용기를 준 소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가 5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일부 에피소드의 결말을 다듬고 표지에 환상적인 일러스트를 덧입혔지만, 소설이 던지는 따뜻한 위로와 이야기의 쾌감은 여전하다. 힘없는 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마녀식당, 잔혹하고도 따스한 세계를 만들어낸 구상희 작가와 서면으로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장편소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로 제3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셨어요. 어떤 계기로 공모전을 준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여러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광고를 봤어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를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장르 소설이라 응모할 공모가 마땅치 않던 차에 이거다 싶었죠. 공모전 도전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응모했어요. 그런데 마감 며칠 전에 광고를 보는 바람에 시간이 얼마 없었어요. 구상은 거의 완성을 해놓았기에 부랴부랴 줄거리를 쓰고, 써놓았던 초반부 원고를 수정해서 응모를 했어요. 공모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쓰다가 마감 1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지원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태어나서 가장 가슴 졸인 1분이었습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이, 음식을 통해 발현된다는 발상이 독특해요.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강의 얼개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우스운 얘기지만 ‘내가 혹시 마녀가 아닐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평소에도 공상을 즐겨하기도 하고, 판타지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마법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마법을 믿는 편인데요(웃음) 마법이 정말 실재한다면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상상해오곤 했어요. 음식은 자연의 에너지고, 먹는 행위는 그 에너지를 섭취하는 거니까 제가 상상한 마법과 닮은 셈이죠.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된 것 같아요.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상당히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맛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평소에도 요리를 즐기시나요?
처음 이야기를 구상할 때는 색다르고 이국적인 음식들을 마법의 요리로 표현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먹는 건 참 좋아하는 반면 요리는 잘 못해요. 미식가도 아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도 아니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먹어보지도, 만들어보지도 않은 요리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백숙이나 스테이크 같은 친숙한 음식들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랬더니 표현하기가 한결 수월해지더군요. 또 소설을 쓸 당시에 ‘먹방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그런 프로그램들도 도움이 됐어요.
책에 등장하는 ‘마녀’는 한국 사회에서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셨어요.
어릴 때부터 ‘마녀’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자로서 사람들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여성’이라는 점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마녀’라는 존재는, 각 문화마다 공통적으로 존재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지칭하는 말이 다르고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더라도요. 저는 우리 문화의 무녀도 마녀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녀라는 소재를 한국 배경에 녹여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겠다 싶었죠.
마법과 판타지 등을 소재로 가져오시면서 더 각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가요?
마법, 오컬트, 판타지, 이런 소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마녀‘식당’의 이미지를 다크하면서도 환상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했죠. 마법의 음식에 사용할 재료들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고요. 마법 재료들을 마구잡이로 지어낸 것 같지만, 실은 마법의 효력과 다 연관이 있는 것들이거든요. 예를 들어 직녀의 베 보자기, 선녀와 나무꾼을 이어준 노루의 사향, 삼신할매표 간장은 연을 이어주는 ‘연분말이 잔치국수’에 쓰이는 재료들이죠. 정말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이에요.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직녀의 베 보자기나, 삼신할매표 간장 같은 것들이 실재하지는 않을까?(웃음), 제가 ‘창작’해낸 게 아니고 실재하는 재료를 ‘발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마법 요리의 핵심 재료로 ‘맨드레이크’가 종종 등장합니다. 판타지 문학의 고전 『해리 포터』도 언급되고요. 일상에서도 판타지 문학을 즐겨 읽으시는지, 어떤 분야의 책을 즐겨 읽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판타지 장르를 정말 사랑합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도 판타지 장르의 거장인 닐 게이먼과 스티븐 킹이에요.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작품을 좋아하다보니 동화나 청소년 문학도 즐겨 읽습니다. 오컬트물이나 공포물도 좋아하고요. 판타지 문학 위주로 독서 편식을 하는 것도 같네요.

개정판을 펴내시면서 몇몇 에피소드는 결말을 다듬었다고 들었어요. 정해놓은 결말을 다시 손본다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셨나요?
각 에피소드의 결말은 제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은 아니더라도, 각 인물들이 그들 인생의 한 챕터 안에서는 행복한 결말을 맞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인물 하나하나를 정말 사랑하게 됐거든요. 하지만 딱 한 에피소드만은 해피엔딩을 주지 못했어요. 왠지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새드엔딩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 당시에 제가 좀 심술궂었나 봐요.(웃음)새드엔딩으로 마무리한 에피소드는 선미 이야기입니다. 선미는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를 소원으로 빌었지만, 사실 그게 그녀의 인생에서 최선은 아니었죠. 끝난 사랑에 집착하지만 않았다면, 스스로를 더 사랑했다면, 선미에게 더 나은 길이 펼쳐졌을 거예요. ‘집착하지 말 것. 더 나은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담아 새드엔딩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러다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선미 이야기가 꼭 새드엔딩으로 끝나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피엔딩이어도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개정판 속 선미는 초판 속 선미와 딱 한 가지 다른 선택을 해요. 사랑할 대상으로 헤어진 연인 성호가 아닌 바로 자신을 선택하죠. 그 선택으로 결말이 바뀌고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택’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합니다. 책임감의 문제로 읽히기도 해요.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소원을 이루는 대신 꼭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그렇고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중요한 화두로 많은 독자분들이 ‘선택’과 ‘대가’를 꼽아주시더라고요. 마녀식당의 세계 속에서 선택은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마녀식당에서 빌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니까!(웃음) 어떤 소원을 빌지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해요. 개정판에서 수정한 에피소드에서도 한 번의 선택이 결말을 바꾸죠.하지만 이야기를 만들면서 ‘선택’을 꼭 절대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무엇으로 상정한 건 아니었어요. 선택에 따라 인생의 길이 달라지더라도, 그게 끝은 아니니까요. 항상 다음 선택의 기회는 남아 있고, 설사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다음 선택은 잘하면 돼요.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 진이 소설의 시작에서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고요.아, 그리고 ‘대가’는 소설의 설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천사식당’이 아닌 ‘마녀식당’이니까요. 그리고 식당도 장사인데, 당연히 공짜로 줄 수는 없죠!(웃음)
등장인물의 선택을 지켜본 독자들이 무얼 느꼈으면 하셨나요?
저는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무엇을 느낄지, 무엇을 읽어낼지는 전적으로 독자분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자, 그 속의 인물들은 각각 하나의 인생을 담고 있거든요.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서 무엇을 느낄지, 무엇을 배울지, 무슨 의미를 찾아낼 지는 그 인생을 ‘사는 이’의 몫이잖아요. 그러니까 소설 속 세계와 인물들의 인생에서 무엇을 느낄지 역시 ‘읽는 이’의 몫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감히’ 독자분들에게 무엇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는 무척 조심스러워요. 물론 앞서 말씀드린 선미 이야기처럼 작중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보다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더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작가인 저는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안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독자분들의 몫이겠죠. 제 생각은 그래요. 저는 『마녀식당으로 오세요』가 다양한 의미로 읽혔으면 좋겠어요. 다만 읽는 재미를 위해 보태자면, 인물들의 동인은 명확했어요. 바로 ‘행복’이에요. 제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선택’은 모두 본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어요.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물들의 모든 선택은 본인을 위한 행복이 목표였죠.
‘후루룩 읽힌다’ ‘막힘없이 술술 잘 넘어간다’는 평이 압도적입니다. 초반부터 속도감이 굉장해요. 당연히 문학을 전공하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국문화를 공부하셨다고요. 소설은 어떻게 쓰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나 할까요(웃음). 원래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문과생이 공부를 업으로 삼는 것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소설을 써볼까? 하고 무심코 생각했던 게 진심이 되어버렸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만화책도 좋아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좋아했죠.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됐어요.
간절히 취업을 바라는 청년, 이별 범죄에 시달리는 청년 등 젊은 세대가 맞닥뜨린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또 무척 현실적으로 다뤄집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충분히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에 와 깨달은 것들을 저보다 젊은 세대들은 일찌감치 깨달은 것 같고요. 예를 들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 사실을 저는 늦게 깨우쳤는데, 요즘 10대, 20대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현명하죠. 저도 아직 젊은 세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세대가 거듭될수록, 인간은 더 나아지고 있음을 체감해요. 더 나아진 우리가 만든 세상 또한 더 나은 곳이 되겠죠. 취업 문제, 왕따 문제, 여성 대상 범죄 등등, 제가 소설 속에서 다룬 사회 문제는 과거에도 존재했어요. 그것들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논의가 되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 속에서는 이런 문제를 미시적으로 다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연대’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대한 약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걸 꼽자면 ‘연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이여, 연대합시다!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소설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처럼요. 요즘 들어 독자들이 마법 같은 이야기를 반기는 이유가 있을까요?
재미있으니까요!(웃음) 저 또한 판타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판타지 문학이 다양하게 창작되는 것이 정말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콘텐츠가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문화 소비층이 다양해지고 두터워지면서 비주류로 치부됐던 판타지 장르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직녀의 베 보자기, 선녀와 나무꾼을 이어준 노루의 사향 등, 동양 판타지로도 풀어낼 소재들이 숨어 있는데요.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을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진의 마지막 선택은 속편을 염두에 두고 써 내려가신 것일까요?
속편에 대한 계획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속편을 염두에 두고 썼죠. 여담인데, 손님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거둬가는 ‘검은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손님들이 음식 값으로 치른 아름다운 목소리나 인생의 기억 등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속편에서 다룰 계획이었어요. 그리고 소설이 조금 잔혹하다는 평도 있어서, 다크(Dark) 버전과 라이트(Light) 버전으로 나눠서 써보면 어떨까 혼자 계획을 세워두었죠. 이렇게 계획은 많은데……. 제가 소설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어서 당장은 어려워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쓸 거예요! 마블 유니버스처럼 마법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소설 시리즈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길에서 우연히 마녀식당을 만난다면 빌고 싶은 소원이 있나요? 작가님은 어떤 요리를 드시게 될까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좋은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싶어요. 말씀드린 판타지 소설 시리즈도 만들려면 오래 살아야겠죠. 그래서 만수무강하게 해달라고 빌 것 같습니다. 진시황제가 그리 찾으려 애썼다는 불로초가 들어간 요리를 먹게 될 것 같네요.
모두가 절박하고 힘든 시기입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이 책으로 큰 위안을 얻으실 텐데요. 이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마녀식당이 밤에만 영업을 하는 건, 마녀식당이 어둠 속의 등불 같은 곳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누구나 자신만의 마녀식당이 있다고 믿어요. 지금 아무리 힘들고 외롭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계속 걷다보면, 여러분만의 마녀식당이 눈앞에 나타날 겁니다. 스스로를 믿는 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반드시 이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