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작가 소개
글 이화진 : 1992년생. ‘상상’이 유일한 취미이고, 친구이고, 희망인 악어 1.
JTBC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편」, 「부부의 세계」 보조 작가이며, 현재 OTT 드라마 기획 및 집필 중이다.
그림 루리 :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2020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제26회 황금도깨비상(그림책 부문)’을, 2020년 장편 동화 『긴긴밤』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든 것이 막막해 홀로 긴긴밤을 걷는 것 같은 시기에는 옆 사람의 작은 숨결이 위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짧은 한숨일지라도요. 함께 숨을 쉬고,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길게 펼쳐진 어둠도 금세 접힐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바삐 좇아가기보다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고, 멀리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더 나아 갈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는 건 어쩌면, 짧고도 짧은 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한숨이 그리고 다른 이의 한숨이 한데 모여 오늘의 호흡을 일구고 내일을 살게 하는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각자의 걱정을, 고민을 털어내며 내쉬는 묵직한 숨 한가운데에도 기댈 수 있는 온기가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중들과 소통을 이어가던 두 작가가 만나 새로운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따스한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한 『긴긴밤』의 루리 작가와 <부부의 세계> 등 여러 화제작을 만들어 낸 글라인의 이화진 작가가 만나 이제껏 보지 못한 그림책이 나왔는데요. 자기 자신과 혹은 세상과 호흡하는 법이 서툴러 어색한 한숨만 내쉬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도시 악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저 알아주어서, 고치려 들지 않아 주어서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이야기 속 악어를 그려낸 이화진 작가와 루리 작가가 전하는 따뜻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도시 악어』의 캐릭터와 내용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고,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되었나요?
이화진 | 평소 동물을 좋아해요. 파충류는 다른 종에 비해 공포나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오해하는 부분도 많아요. 악어만 해도 그렇죠. 악어는 포악한 외모와 달리 보기보다 겁이 많은 동물이에요. 외국에선 도시화가 되면서 종종 주택가에서 야생 악어가 발견되기도 하고, 누군가가 밀수해서 키우다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원해서 온 건 아니지만 달리 돌아갈 곳도 없이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악어의 상황과 내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이게 맞는 걸까, 내 자리는 어디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거든요.
루리 | 도시 악어 원고를 봤을 때 악어 캐릭터에 매료되었어요. 어린 시절,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즐겨 읽었던 『아리게의 외출』(지금은 절판되었음)이라는 그림책이 떠올랐어요. 제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습작 역시 악어가 주인공인 그림책이었고요. 그 후로도 악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꼭 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이 그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시 악어』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갔던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루리 | ‘내가 이곳에 어울릴까’,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하는 보편적인 감정을 ‘도시에서 살아가는 악어’를 통해 풀어낸 점에 가장 공감이 갔고, 마음을 움직였어요.
이화진 | 18, 19쪽의 ‘더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하고 실망하는 문장이요. 악어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고자 거칠한 피부를 관리받고, 이를 반듯하게 다듬고, 꼬리를 자르려고 하지만 바뀌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며 읊조리는 문장인데요. 악어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들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바꾸려 했지만, 그마저 잘되지 않아 속상해하죠. 계속 내몰리다 보니 스스로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된 악어가 애처로웠어요.
『도시 악어』 그림 중에 가장 공들여 표현한 장면은 어떤 것인가요?
루리 | 페이지로 하면 10~11쪽, ‘나는 토마토를 좋아해. 햇볕을 좋아하고~ ‘ 이 원고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악어는 그저 좋아하는 일을 소소하게 즐기고 있는 것뿐인데, 타인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 악어의 그림자가 무섭게 표현된 부분에 가장 공을 들였던 것 같아요. 클라이맥스 부분은 아니지만, 이런 오해는 너무도 쉽고 어처구니없게 일어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본인의 글을 그림으로 그린다고 했을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우려했나요?
이화진 |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라는 구절이 있어요. 어항 속의 새끼 악어를 생각했어요. 유리의 곡률 때문에 왜곡된 세계 속에 갇혀 있다가 처음으로 고개를 내밀고 낯선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새끼 악어의 이미지를 떠올렸죠. 더 이상 보호자가 없는 상태로 세상에 내몰린 느낌이 잘 살았으면 했는데, 독자에게 그림으로 전달될 수 있을지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루리 작가님의 섬세한 스케치와 뛰어난 전달력에 놀랐어요. 상상했던 동그란 어항보다 각진 사각형의 수조가 훨씬 삭막하고 답답해 보여 좋았어요. 수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새끼 악어의 시선과 구도가 더 애잔해 보였고요. 악어의 입에 테이프를 붙인 디테일도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시 악어’ 캐릭터에 본인의 어떤 모습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하나요?
루리 | ‘라디오헤드’의 〈Creep〉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천사 같고 특별한 너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고, 그에 반해 찌질이에다 괴짜인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도시 악어'가 이 가사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I don’t belong here’의 감정을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것에 특히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화진 | 인정욕구요. 남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 그건 외로움에 기인한 갈증 같아요. 분명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단절된 것만 같은. 외롭고 불안한 마음 때문에 인정받고 싶은. 그런 외로움은 나만 느끼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시 악어』는 성인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어떤 점이 다른가요?
루리 |《토이 스토리》 1편을 본 게, 제가 영화 속 앤디와 비슷한 또래인 초등학생일 때였어요. 그리고 3편이 나왔을 때 저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앤디도 대학에 가느라 장난감들과 작별인사를 하더라고요. 내 어린 시절과 작별을 하는 것만 같아서 펑펑 울었죠. 그러다 직장인이 되어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을 때 4편이 나왔어요. 장난감들도 나름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고요. 《토이 스토리》는 그렇게 나랑 같이 커 주었죠. 저는 그래서 이제 다 컸는데도 그림책을 보고 동화책을 읽어요. 어린이도, 어른도, 장난감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사는 세상 아닌가요. 『도시 악어』도 그런 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시 악어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람(지망생)으로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요?
이화진 | 어떤 사람들은 보조작가 업무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오히려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하거나 프로 작가님들의 작업을 옆에서 함께 하다 보면 배우는 점이 많거든요. 경험이라는 건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남아요. 시련은 시련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살면서 고민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그것은 항상 온전히 내 몫이었고, 홀로 끙끙 앓았죠. 그런 저에게 드라마나 영화는 따뜻한 위로와 현명한 조언을 건넸어요. 도시 악어가 물에 빠져서야 ‘맞아, 나 악어였지’ 하고 깨달은 것처럼, 저도 이 자리에서 일하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곤 해요.

『도시 악어』가 독자들에게 어떤 작품이 되길 바라나요?
루리 | 내 이야기처럼 들려서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노래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림책도 그 노래 같았으면 좋겠어요. 가끔, 답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괴롭힐 때가 있잖아요. ‘어울리지도 않는 이곳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 정답을, 어울리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질문도 정답도 다 잊게 되는 순간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화진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도시 악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구나. 다들 조금씩 외롭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위안. 저마다 나름의 답을 찾는구나 하는 깨달음.
인터뷰 출처 – 교보문고 북뉴스 (http://news.kyobobook.co.kr/people/interviewView.ink?sntn_id=15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