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당장 직업도 먹고살 돈도 없지만 “쟤는 참 잘 살아”라는 말이 나오는 삶.
겨울이 오면 창문에 대대적으로 뽁뽁이를 붙이고, 내일 먹을 비건 도시락을 위해 자정까지 공들여 요리를 하고, 친구에게 싱싱한 꽃을 선물하기 위해 새벽 꽃시장에 간다. 이것은 임시적으로 견디는 삶도 아니고 안분지족의 소확행도 아니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속에서든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안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태도다.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로 화제를 모았고 동북구연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 활동하며 ‘격일간다솔’이라는 메일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양다솔의 첫 ‘정식 출판물’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독립출판이 아닌 정식 출판물로서 독자들을 처음 만나셨을 텐데요. 독자들께 선생님에 대한 소개와 첫 작품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제목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반응이 좋은데, 제목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필을 쓰는 양다솔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써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어릴 때 우연히 글방을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 제 취향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걔네랑 놀려면 글을 써갈 수밖에 없어서 썼던 글들이 세월이 지나며 꽤 모였습니다. 착한 친구들이 자꾸 저보고 모은 글 놔둬 봤자 어디다 쓰냐고 책으로 내라고 떠밀어서 10년간 써온 수필들을 모아 『간지럼 태우기』라는 독립출판물을 발행했습니다. 망할 거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운 좋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저도 정말 좋아하는 제목입니다. 저희 어머니 김한영 씨에게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데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글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고,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건 거의 극혐하십니다. 이번에 책을 보고도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그런 저희 어머니에게 칭찬은 늘 묵음입니다. 저에게 좀처럼 좋은 말을 잘 해주지 않으신다는 뜻이죠. 제가 백수 생활을 시작하고도 좀처럼 불안해하지 않고 매일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사는 꼬라지를 보고 “너는 참 마음이 가난하지 않구나.”라고 하신 말씀에 무릎을 탁 치고 눈물이 핑 돌아 제목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의 마지막에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를 넣었습니다. 참고로 이것도 엄마는 역시 별로 안 좋아하셨습니다.
출간에 앞서 메일링 연재 ‘격일간다솔’을 진행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격일간다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은 무엇이었는지, 그 글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일 처음 연재를 했던 창간호의 글들은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저에게는 모두 사랑으로 가득한 글들입니다. 오랫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듯이 써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베스트 워먼 윈즈」,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 「나의 코미디언」은 언젠가 꼭 써보고 싶다고 염원했던 주제를 풀어낸 것이라 애정과 함께 애잔함까지 갖고 있는 글들입니다.
꾸미기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저는 생각보다 관종이 아닌데요, 「베스트 워먼 윈즈」에서는 그럼에도 왜 그렇게까지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지, 지금 사회에서 설명하는 내러티브와는 조금 다른 저만의 서사로 풀어보고자 시도합니다. 제가 제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만 내 모습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는 어쩌면 제 의식을 형성한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행자 시절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풀어본 글입니다. 힘겹고 서투르고 각박하고 어딘가 난장판이었던 절 생활 와중에서도 제 안에 오롯이 남아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그대로 담아보려 했습니다.
「나의 코미디언」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다 풀리지 않는, 어쩌면 평생의 숙제가 될 수 있는 아빠라는 존재와 그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큰 용기 내서 한번 풀어보았답니다. 눈물 콧물로 세수를 하다시피 하면서 쓴 짠내 나는 글입니다.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 당시부터 ‘기쁨은 말로 하고, 슬픔은 글로 써야 한다’는 문장이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한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안에서 슬픔과 기쁨을 한 꼭지씩만 꼽는다면 어떤 글이 될지도 궁금합니다.
말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쁨도 마음 맞는 사람과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도 듣는 이에게 번져나가지요. 말로 슬픔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기도 합니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기쁨은 가볍고 간단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의외로 슬픔을 글로 쓰다 보면 거기엔 슬픔만 있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슬픔이 되기까지, 혹은 슬픔이 되고 난 후의, 혹은 슬픔을 닮은 다양한 감정과 느낌과 마음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읽는 이도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글 속에는 존재합니다. 또 무엇보다 슬픔을 글로 씀으로서 화자 자체가 슬픔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실 매일 자조와 불평과 하소연을 일삼는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서 슬픔 혹은 기쁨만을 오롯이 다룬 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감정을 뭉근하게 끓여낸 것만 같거든요. 하지만 「내가 때린 할아버지들」에는 묵직한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나의 코미디언」에는 슬픔이, 「일어나서 웃겨봐」와 「친구 발견」에는 기쁨과 닮은 것이 담겨 있지 않나 싶습니다.
행주에서 찌든 내가 나기 전에 팔팔 삶아내고, 추워지기 전 창문에 뽁뽁이를 바르고, 식물의 뿌리가 화분 아래로 나올 때쯤 분갈이를 해주고, 작가님의 하루를 보면 누구라도 “참 잘 산다”고 말할 법하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마치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것! 내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고, 그곳에서 나 스스로에게 선물 같은 지금을 주는 것이요. 편안하고 쾌적하고 안락한 집과 정성 들여 갓 지은 밥과 제 자리에 있는 물건들, 귀엽고 따듯한 고양이, 가볍고 건강한 몸, 사랑하는 친구들, 재미있는 이야기들, 노란 햇빛과 시원한 바람 그런 것들을 최대한 곁에 두는 것입니다. 분명 삶에는 그것 말고도 더 좋은 것들이 많을 텐데 저는 그 방면에는 별 재주가 없는 듯싶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꼭지들이 인상 깊었어요. 「모녀전철」에서부터 「엄마와 한 달 살기」에 이르기까지, 20대를 거치면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나 어머니와의 관계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엄마와의 관계는 저에게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숙제입니다. 언제나 제가 지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제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저와 가장 다른 사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저는 두 사람이 서로를 미친 듯이 사랑해도 이렇게 못 지낼 수 있구나 완벽히 실패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웁니다. 아주 가끔, 섬광처럼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 같은 것을 봅니다. 저희 엄마는 너무 소녀입니다. 본인만 모르시는데요…. 정신나이는 제가 더 늙었습니다. 맨날 자기를 글로 쓰지 말라고 윽박지르는데요, 제 글 속에 있는 엄마는 엄마가 아닙니다. 엄마처럼 보이는 저일 뿐입니다. 엄마처럼 보이는 제가 다년간 쓰인 글 속에서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조금씩 편해지는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
「일어나서 웃겨봐」라는 꼭지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을 창단할 당시의 단상이 나오는데요. 읽는 동안 마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설적인 크루의 시작을 제가 엿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 속 구절처럼 ‘품이 많이 드는 동아리 모임’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가 작가님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가장 재밌는 것은 답 없고 대가 없는 것들이지요! 아무 득이 없는데, 그냥 재미있어서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언제나 최고가 아닌가 싶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도 그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 바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작당을 벌이는 것인데요. 죽을 때 스칠 주마등 메모리를 만드는 것이죠~ 이건 뭐 만나는 족족 행복한 것이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주는 에너지만큼 어마무시한 것은 없으니까요.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 모여 정기적으로 자신의 삶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요. 서로의 가장 훌륭한 청자가 되어주고, 응원자가 될 수밖에 없죠.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장면들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같아요.
2장 제목인 ‘열혈우정인의 삶’이 보여주듯 작가님의 인생에서 ‘친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같습니다. 표4를 열광적인 추천사로 빼곡히 채워준 친구들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이어져온 어딘글방 동료들과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책에는 ‘내 삶의 모든 칭찬은 친구들에게 아웃소싱되었다. 친구들이 나로 하여금 그 칭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칭찬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메마른 한 사람의 삶을 촉촉이 적시려면 얼마나 많은 애정이 필요할까요.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자체가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는 것만큼이나 친구가 되기 쉬운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저를 쓰게 하고, 제 글의 빛나는 구석을 발견해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주고, 책을 내도록 힘을 돋워준 것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처음은 당연히 친구의 권유였다. 내 삶의 중요한 것들이 으레 그래왔듯 이번에도 친구가 등을 떠민 것이다. (…) 고집 세고 편협한 인간이 친구 말까지 안 들으면 큰일 난다는 말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다.’ 라는 문장이 말해주듯, 저는 친구들에게 늘상 등을 떠밀리는 류의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들은 혼자 구석에서 구겨져 있는 저를 불러내어 천천히 펴내서 새로운 세상으로 떠밀어줍니다. 그러면 저는 못 이기는 척 부드럽게 떠밀립니다. 심지어 비건이라는 엄청난 것을 결심한 계기도 친구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함께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들과 함께 흐를 수 없다면, 그것만으로 첫 번째 이유는 충분했다.’ 친구들이랑 밥 못 먹는 일이 있다면 인생에 의미가 없다, 그것이 비건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저의 짧은 생에서, 친구의 말을 듣고 후회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만족도 100퍼센트, 재등떠밀림율 100퍼센트입니다.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제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는지,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과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구절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순간 제 마음은 한없이 가난해지곤 합니다. 당장 직업이 없고, 대책이 없고, 먹고살 돈이 없는데 그 누가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웃기게도 저의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아랑곳 않고, 그 사실을 완전히 까먹어버리곤 하는 것입니다. 소위 분수에 안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돈. 부와 가난은 삶을 명확히 규격화합니다. 집을 구할 때나 직업을 구할 때, 진로를 결정하고 학교에 진학할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선택이 반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피부로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열심히 성실히 뼈 빠지게 그리고 심지어 훌륭히 일한대도, 삶은 어쩌면 아주 조금밖에 나아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것을요. 그런 맥락에서, 얼마나 가졌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하루는 어쩌면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저는 그 사실을 왕왕 까먹습니다. 자꾸만 백만장자처럼 입고, 마시고, 차려먹고 마는 것입니다. 가난과 부를 넘어서, 그것은 양다솔이라는 사람의 본연의 영역이고 그것은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이 언제나 형형할 것이라는 외침과도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대책이 없는 채로요. 저는 그런 괴상하고 사치스러운 저도 여기 잘 살아 있음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앞으로 내 앞에 어떤 하루가 닥칠지라도, 마음만큼은 결코 가난해지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연재나 다음 책을 준비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즐겁고 신나는 제안을 받으면, 너무나 감동적인 사람을 만나면,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만나면 왕왕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제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를, 건강하기를, 이왕이면 맑고 풍요롭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출처 – 교보문고 북뉴스
http://news.kyobobook.co.kr/people/interviewView.ink?sntn_id=15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