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열일곱 살 빅토리아는 달콤하기로 이름난 내시 복숭아 과수원집에 산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폭력적인 남동생, 비뚤어진 상이군인 이모부 사이에서 의지할 곳 없이 자란 빅토리아는 이방인 윌과 사랑에 빠지고, 있는 그대로 관심받는 게 어떤 건지,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용감하게 만들 수 있는지 배워간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윌은 낯선 피부색 때문에 마을에서 배척당하다가 피부가 벗겨진 시신으로 협곡에 버려진 채 발견된다. 빅토리아는 평소 윌을 위협하던 남동생이 한 짓임을 직감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끝없이 좌절한다. 한편 배 속에서는 아기가 자라고 있었기에, 빅토리아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척박한 고지대 산꼭대기로 도망친다.
혼자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되는 식량과 라즈베리를 먹으며 견디던 빅토리아는 숲으로 소풍 온 신혼부부를 목격한다. 영양실조인 자신과 달리 젖이 도는 산모를 본 빅토리아는 아기의 뒤통수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을 틈도 없이 그 차에 아기를 태워 보낸다. 거의 정신이 나간 채 고향으로 돌아오니 남동생과 이모부는 집안일을 돌볼 여자가 없는 집을 떠나버렸고, 아버지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빅토리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무도 지키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남긴 복숭아만큼은 끝까지 지켜내리라 다짐한다. 그러던 중 강을 댐으로 막고 마을을 저수지로 메울 거라는 소문이 도는데……. 새 땅에 도착한 내시 복숭아와 빅토리아는 다디단 열매를 머금을 수 있을까?
『흐르는 강물처럼』 줄거리
Q1. 첫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국 출판에 대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A1. 《흐르는 강물처럼》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고 기대됩니다. 꿈이 이루어졌어요. 북미와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출판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 이야기가 한국 독자들의 마음과 정신에 울림을 준다면 좋겠습니다.
Q2. 그동안 교육자로 사시다가 소설가가 되신 여정이 궁금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신 건 언제인가요? 또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의 집필 기간과 과정이 궁금합니다.
A2.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아홉 살 때 학교에서 두 페이지 분량으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서 66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써 갈 정도였어요. 박사 과정까지 글쓰기와 문학을 전공한 덕에 거의 30년 동안 대학 교수로 일하게 되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글을 쓸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죠.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인 빅토리아 내시에게 고마워요.빅토리아 덕분에 제가 글 쓰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물론 가르치는 일, 양육하는 일에도 여전히 집중했지만요. 조금씩조금씩 쓰느라 《흐르는 강물처럼》을 마무리하기까지 약 12년이란 세월이 걸렸어요. 마침내 소설을 완성하고, 문학 에이전시를 찾고, 이후 출판사를 찾아서 제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Q3. 작가의 말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의 시작을 캠핑 중 본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을 보고 일기장에 쓴 글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글이었나요? 혹시 당시 쓰셨던 글의 첫 문장 또는 기억에 남는 구절을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A3. 캠핑 중이었던 그날 제가 목격하고 일기장에 기록했던 내용은 《흐르는 강물처럼》 12장에서 묘사한 내용과 거의 일치해요. 수풀 사이로 걸어 나와 풀숲을 가로지르는 암사슴 한 마리. 어미를 따라오는 첫 번째 새끼 사슴, 뒤이어 나타난 더 작고 가냘픈 새끼 사슴. 그걸 보는데 ‘두 마리 새끼를 어떻게 다 살릴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됐어요. 어미 사슴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고요. 저도 그 암사슴처럼 두 아이의 엄마였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데, 그때의 경험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와 상처투성이 모성에 관한 내용이 소설에 담기리란 걸 일찍이 알고 있었죠.
Q4. 주인공 빅토리아 내시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순종적인 딸이었던 그녀가 아이를 낳고, 복숭아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강인하게 바뀌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빅토리아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드러내고자 하셨을까요?
A4. 빅토리아 캐릭터에는 제 가족을 비롯해 지역 목장과 산악 공동체에서 제가 알고 지낸 많은 여성의 다양한 자질이 묻어 있습니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하는 여성들. 강인하고, 충실하고, 상냥하고, 겸손한 여성들이죠. 이야기가 시작될 때 빅토리아는 겨우 열일곱 살이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모릅니다.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던 순진함이 윌슨 문을 만난 순간부터 한 꺼풀씩 벗겨지죠. 마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빅토리아는 자신의 깊이와 능력을 발견해 나가요. 우리 주변에도 자기 선택이 지닌 힘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한계에 부딪혀 위축된 여성이 너무나 많습니다. 빅토리아가 살던 그 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사실이에요. 쉽지 않겠지만, 참된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려면 반드시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빅토리아가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Q5. 지금 살고 계신 엘크 산맥이 어떤 곳인지, 또 그리고 이전에 사셨던 곳은 어디인지가 궁금합니다. 그곳의 자연환경이 소설의 탄생에 어느 정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A5. 몇 세대에 걸쳐 콜로라도 야생지에서 살아오면서 제 안에는 이 지역을 향한 깊은 유대가 형성되었고, 그러한 유대는 자연스레 삶 전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 숲, 초원, 강으로 둘러싸여 있죠. 저는 평생 이런 야생의 풍경을 탐험해 왔고, 자연은 늘 가장 큰 스승이었습니다.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제 글이 콜로라도를 향한 사랑의 노래가 되기를, 이곳 풍경의 아름다움과 가혹함을 독자와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삶에 자연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길 희망했습니다.
Q6. 윌슨 문이 빅토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이 몹시 운명적이라고 느껴지는데요. 한편으론 등장이 너무 짧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독자들이 윌슨에 대한 이미지를 갖기 전에 비극적 죽음을 맞았으니까요. 이 캐릭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6. 맞아요. 윌슨 문의 이야기는 비극적입니다. 원주민 처우의 역사가 비극적이기 때문이죠. 1948년 시골에서 타지 출신의 어린 원주민이 마주쳤을 법한 인종차별의 공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윌슨 문의 캐릭터를 통해 중요한 생각을 탐구하고 싶었어요. 첫째로, 윌이라는 청년을 고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떠돌이’로 만든, 세대에 걸친 비극적 원주민 이주 정책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둘째로, 윌처럼 사랑스러운 청년에게 가해진 격렬한 인종차별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유지되었는지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빠른 속도로 서로를 깊게 이해하는 윌과 빅토리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만으로 편견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윌은 남들과 매우 달라 보이고 여러모로 알 수 없는 존재지만, 이러한 이유가 윌을 향한 빅토리아의 사랑을 가로막지 못하며, 이는 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수용적인 마음을 가졌더라면 윌슨 문도 받아 마땅한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었겠지요.
Q7. 소설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누구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7. 제 전심을 다해 빅토리아 내시를 사랑합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최대한의 진정성과 공감을 담아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빅토리아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회복력을 지녔고, 부드러우면서 강인하며, 흔들리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성장합니다. 독자들이 빅토리아를 보면서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연약함과 강인함을, 고난을 마주하더라도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한다면 좋겠어요. 비슷한 이유로 잉가, 젤다, 루비앨리스, 루카스도 무척 좋아합니다. 다들 결함이 있지만 성실하며 결단력 있는 캐릭터예요. 그리고 하나같이 슬픔 앞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Q8. 소설 속 핵심 줄기가 되는 과일로 사과나 배, 체리가 아닌 복숭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A8. 콜로라도 복숭아는 극상의 달콤함으로 유명합니다. 복숭아를 재배하는 곳은 대부분 밤공기가 서늘하되 낮 기온은 따뜻하며 미네랄이 풍부한 눈석임물이 흐르는 지역이에요. 이런 요소가 복숭아의 맛을 좋게 하거든요. 복숭아꽃이 얼마나 섬세하고 서리에 취약한지, 콜로라도 복숭아 한 알 한 알이 기적처럼 보일 정도인데, 실제로는 몇 세대에 걸친 농업 전문 지식과 세심한 관리의 결과물입니다. 역경에 맞는 능력, 그리고 이식했을 때 새로운 토양에서 회복력을 발휘하는 능력 때문에 복숭아를 중심 모티프로 선택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빅토리아의 여정과 평행을 이루는 상징성이 있으니까요. 또 자기 삶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공간’인 복숭아 과수원을 지킴으로써 빅토리아가 목적의식과 소속감을 잃지 않길 바랐고, 다른 모든 걸 잃었을 때 복숭아가 그녀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Q9. 수몰 지구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린 소설 속 인물들처럼, 한국에도 개발로 인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향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빅토리아는 흔한 실향민 소설에서처럼 고향을 지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먼저 떠나는데,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9. 지난봄 유타주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는데, 그의 조부모님도 마을에 들어서는 댐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고 하더군요. 소설 속에서, 그리고 실제로 콜로라도 주 아이올라 주민들이 겪었던 상황과 똑같았죠. 고향을 잃는 건 인간사에서 보편적인데, 실향민들은 특수한 종류의 슬픔을 안고 산다고 생각해요. 아이올라 주민 대부분은 마을이 저수지 아래에 잠기지 않게 마을을 지키려고 싸우지만, 빅토리아만큼은 이를 마을을 탈출할 기회로 여깁니다. 빅토리아에게 고향은 슬픔과 상실, 비극의 장소가 되어버렸으니까요. 빅토리아는 마을을 떠나기 전에 가족의 소중한 유산인 복숭아 과수원을 구할 수만 있다면 마을이야 얼마든지 사라져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과수원을 구해내기로 마음먹습니다.
Q10. 대학교에서 이주 1세대 및 위기 학생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어떤 지원 프로그램인지, 이를 통해 학생들이 어떤 영향을 받길 원하시는지요?
A10. 2018년까지 힘든 상황에 처한 이주민 학생들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창립하고 이끌었습니다. 수혜자들은 보통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에요. 저소득층 출신이면서 고등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성적이 저조한 학생이 대부분이죠. 제가 이끌었던 프로그램은 이 학생들이 대학 교육이라는 꿈을 끝까지 이룰 수 있도록 추가 지도와 격려, 학교 차원에서의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Q11. 차기작을 집필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11. 다음 소설도 콜로라도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선조들이 농사지으며 살았던 남동부 평야와 상그레 데 크리스토 산맥이 배경이에요. 다음 소설도 캐릭터와 장소가 중점이 될 거예요. 또 20세기 초기의 콜로라도 주의 인구 유입과 탄광업, 최초의 여성 산악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Q12. 소설을 감상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12. 무엇보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과 상실, 비극, 회복력, 모험으로 가득한 이 여정에 저와 함께해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이 여정을 통해 여러분도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길, 어떤 어려움이 길을 막을지라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발견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