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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2024년 04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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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6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6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질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현실 속에서는 비극이란 조금도 아름답지 못해.
그건 추한 거야. 추하지.”

전시 혼란 속 일상에 자리 잡은 전쟁의 그늘
돈을 좇는 인간군상들의 민낯

다산북스에서 새롭게 출간된 『파시(波市)』는 박경리의 또 다른 걸작이다. 출간에 앞서 1964년 7월 13일부터 1965년 5월 3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총 274회)되었는데, 집필 시기나 한국전쟁을 소재로 다룬다는 점에서 『시장과 전장』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연재가 끝난 후 작가는 후기를 통해 전작 장편인 『시장과 전장』의 “마지막 손질”과 병행하여 썼다(「파시(波市)를 끝내고」, 《동아일보》1965년 6월 5일 자)고 직접 밝힌 바 있다. 또한 『시장과 전장』 주인공인 ‘남지영’이 작품 마지막에 야시장의 불빛이 반짝이는 피란처 ‘부산’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파시』의 무대로 부산이 등장한다는 데서 맞닿아 있으며, 추후 피란처에서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시장과 전장』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쟁을 그리고 있다면, 『파시』는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과 더불어 최후방 지역이자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통영 일대 섬을 주요 배경으로 한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방에 비해 후방은 피가 튀고 포성이 울리는 참혹한 전장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곳 역시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을 다시 영위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떻게든 한몫 잡기 위해 더 치열하게 돈과 욕망을 좇으며 저마다 살길을 찾아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 현장 한가운데 욕망으로 들끓는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격변한 시대상을 박경리는 『파시』에 충실히 재현하였다.

전쟁이라는 사건은 한민족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여파는 각 개인이 처한 계급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어떤 이는 가족을 모두 잃고 전쟁고아가 되거나 무일푼의 난민으로 전락하고, 어떤 이는 별다른 피해 없이 재력과 권력을 유지하기도 한 반면, 외려 전시 혼란을 틈타 불법적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등 전쟁을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는 이들도 있었다. 박경리는 그러한 세태에 주목한다.

“여하튼 요지경 세상이다. ……
돈독이 올라서 모두 얼굴이 누렇게 떠가지고.”

‘생계유지’라는 또 다른 격전의 현장
후방에서 박경리가 바라본 전쟁의 실상

박경리가 『파시』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전쟁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그것이 “당시 사회, 경제 전반의 문제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이야기는 ‘수옥’이 처음 ‘조만섭’의 손에 이끌려 부산에서 통영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통영 토박이인 조만섭은 부산 사는 처제(영자)의 부탁으로 홀로 피란 온 수옥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배에서 친구 ‘서영래’와 마주친다. 그는 부산과 통영을 오가며 밀수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후사를 보지 못한 터라, 어리고 예쁜 수옥에게 눈독을 들인다. 하지만 이후 수옥은 조만섭의 후처인 ‘서울댁’과 서영래 사이의 모종의 거래로 인해 단순한 심부름인 줄 알고 나갔다가 서영래에게 겁탈당하고 그의 감시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둘 사이에 ‘물건’처럼 거래된 수옥은 작품 속에서 전쟁으로 인해 삶이 “가장 고통스럽고 피폐해진 인물”이기도 하다. 수옥이라는 인물을 통해 『파시』는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불법적인 루트로 흘러드는 밀수품들처럼 거래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한국전쟁을 치르는 1950~53년의 통영은 잠시 인민군 점령기를 거치긴 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벗어난 비교적 안전한 피란처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통영은 ‘전쟁 특수’를 누린 것으로도 전해지는데, 감시가 삼엄한 부산을 피해 외려 통영의 밀무역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어장을 주업으로 삼던 통영 사람들은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밀무역에 뛰어들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파시(波市)’는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일반적으로 “바다 위에서 열리는 장”,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을 지칭하며, “항구 근처에 길게 늘어선 어시장”까지 포괄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당시 부산 일대에 대거 유입된 피란민들은 당장 생존을 위해 각자 생계를 꾸릴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주로 가진 물건을 ‘시장’에 내다파는 방식(“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혼란한 상황에서 그럴 만한 사정이 되는 피란민은 많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 부대에서 구호물자를 몰래 빼돌리거나 밀수, 절도 등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부산에는 각계의 고위층과 부유층이 모여들었는데, 이들은 후방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온갖 “일제와 미제 사치품”들을 향유하고 소비했다. 소설 속에서 종종 묘사되는 “상점마다 찬란한 일제, 미제 상품이 그득그득히 쌓여” 있는 풍경은, “전쟁이 지금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한편 배금주의에 빠진 사회 분위기 속에 점점 더 소외되고 고통받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혹은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여성들과 피란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도시 외곽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박경리는 이들의 행로를 끝없는 불행으로 밀어넣는 대신,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대신, 외부 세계의 폭력이나 절망, 낙인에 주저앉지 않고 새 희망을 품고 탈출구를 찾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을 향한 매질을 게을리 말고 성장되어가야 할 것을,
그리고 한 작가의 삶은 언제나 문학과 직결된다는 것을 깊이 다짐한다.”
“인간 정신의 대결에서 나는 얼마나 정직하였을까?”

박경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작품의 또 한 축은 조만섭의 외동딸 ‘명화’의 이야기다. 명화와 그의 애인인 ‘박응주’는 통영 바닥에 소문난 연인 사이로 둘은 결혼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명화의 친모가 정신이상으로 자살한 일로 인해 응주의 아버지 ‘박의사’는 혈통 문제를 들어 극렬히 반대한다. 명화 역시 간간이 떠오르는 죽은 어머니에 대한 환상으로 결혼을 단념하려 멀리 떠나려 하지만, 딸을 끔찍이 생각하는 아버지 조만섭에 대한 연민과 응주에 대한 감정을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고 고뇌한다.

‘박의사’는 아들 응주를 상류층인 윤 교수의 딸 ‘죽희’와 결혼시켜 징집을 피해 미국으로 도피시키려는 심산이다. 응주는 명화를 배신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에 반발하지만, 실상은 명화에게 애정보다는 책임감만을 느끼고, 징집 문제에 있어서도 단지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허영과 막연한 영웅심에 빠져 있을 뿐이며, 명화와 죽희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느 것 하나라도 확실하게 잡을 수 없는” 무기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외에도 수옥에 대한 사랑으로 그를 구해내는 ‘학수’, 몰락한 집안과 그의 신세를 비관하며 타락해가는 ‘학자’, 난봉꾼으로 빌어먹는 서울댁의 남동생 ‘문성재’, 그런 문성재를 사랑하지만 사랑하기에 끊임없이 속고 마는 ‘선애’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복잡하게 얽힌다. 박경리의 시선은 그 인물들 하나하나에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복잡한 내면과 심리, 고독과 불안을 드러낸다. “작품 중 가장 악역인 서영래까지도 인간이 지닌 고독과 눈물을 버릴 수 없었고, 다분히 이상화하려고 의도한 박응주도 사랑의 순교자로 만들 자신이 없었다”라는 작가의 말은, “최대한 정직한 자세로” 그들의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내면을 창조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의 소산이다.

박경리는 『파시』를 끝내고 “새로운 수법을 시도하여 그것이 크게 차질 없이 끝을 맺”었다며, “주관적 묘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객관적 눈으로 쫓아간” 문학적 실험에 있어 “작자 자신에게 적잖은 의의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술회한다. 『파시』가 박경리의 문학 세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토지』에 앞서 “문학의 본질이 인간과 삶의 탐구에 있음을 깨달”은 이후 ‘새로운 작법’으로 “그가 가진 문학적 신념을 처음으로 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 박경리가 ‘악전고투’하면서도 부단히 작품 속에서 그려낸, “한 시대의 질곡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쁨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슬픔 역시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믿었던” 그에 의해 영원히 기억되며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생동할 것이다.
  • 쪽수: 760쪽
  • 판형: 133*215mm
  • ISBN: 9791130652030

목차

  • 1. 기항자(寄港者)

    2. 등댓불

    3. 봉화서 온 여인

    4. 박 의사(朴醫師)

    5. 갈대처럼

    6. 이율배반

    7. 기다리는 여자들

    8. 슬픈 아버지

    9. 밤길에서

    10. 봄은 멀어도

    11. 밑바닥까지

    12. 섬[島]

    13. 마지막 주사위

    14. 귀거래(歸去來)

    15. 파시(波市)


    어휘 풀이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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