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근무하며 에세이 출간
“누군가는 당신을 염려한다”는 메시지 닿길

유난히 출동이 많았던 어느 날. 새내기 소방관인 백경(가명)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 식사를 못했던 거죠. 배는 고픈데, 메뉴를 고르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라면으로 때우자니 물을 붓기만 하면 출동에 걸리기 부지기수고, 식당에 가도 종종 민원이 접수돼 난감했거든요. 근무 시간에 농땡이를 피우는 것 아니냐는 민원이었죠.
그때 팀원 중 한명이 근처 빵집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새로 생긴 빵집인데, 골목에 위치한 데다 빵도 아주 맛있다면서요. 그렇게 우연히 가게 된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빵집 사장님이 환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습니다. 근무복을 입은 백경씨와 동료들을 보고 소방관인 걸 한눈에 알아봤던 겁니다.
사장님은 백경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소방관분들이 오셔서 정말 영광이에요” “저도 어릴 때 소방관이 꿈이었는데 몸이 약해서 포기했어요” “제가 프랑스에서 빵을 공부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소방관들이 영웅 대접을 받아요” ….
백경씨는 그 친절함이 처음엔 낯설었다고 합니다. 혹여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해요. 사장님이 주문하지도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쥐여줄 땐 ‘이런 호의를 받아도 되나’ 덜컥 겁도 났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추천하는 빵 몇 개를 골라 황급히 가게를 나섰습니다. “벌써 가시게요?”라며 아쉬워하는 사장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요.
그리고 며칠 뒤, 소방서에 수십개의 빵이 배달됐습니다. 그 빵집 사장님이 동료들과 함께 먹으라며 보낸 거였죠. 그게 벌써 8년 전. 사장님은 그 뒤로도 종종 소방서에 빵을 보내왔습니다. 백경씨가 문득 ‘소방서에 빵을 보내다 빵집이 망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어떡하지’라는 농담 섞인 걱정을 할 만큼이요.
사장님은 알고 보니 소방서 뿐만아니라 인근 보육원 등에도 꾸준히 빵을 기부해왔다고 합니다. 백경씨는 사장님의 이처럼 따스한 마음을 글로 적어 지난 20일 ‘엑스’에 올렸죠. 그 글은 약 50만회 조회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백경씨는 2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장님처럼 소방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참 감사하고, 더 잘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며 “그래야 그분들께서 보여주신 진심이 무색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염려합니다” 9년 차 소방관이 띄운 편지
백경씨는 어느덧 9년 차 소방관이 됐습니다. 누적된 시간만큼 시민들과의 소중한 추억도 켜켜이 쌓였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심정지로 어머니를 잃게 된 한 아들의 편지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백경씨를 보고, 아들은 며칠 뒤 소방서에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비록 어머니는 백경씨의 노력에도 세상을 떠났지만요. 행색이 허름했던 아들이 쓴 편지에는 “저희 같은 사람도 살리려고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구할 수 없었던 생명들에 대한 죄책감이 쌓이면서, 백경씨의 마음 역시 병들어 갔다고 합니다. “컵에 물이 차서 넘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억눌렀던 감정들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어요.”
백경씨는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여러 복잡한 감상을 인터넷에 한줄 한줄 진심으로 써내려갔죠. 그리고 그 글을 본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를 출간하게 됐습니다.

그가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생긴 습관이 있어요. 복도식 아파트나 다리를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올려다보게 돼요. 그곳에 선 분들은 아마도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없고, 염려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실 거예요. 근데 저는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거든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분명 저 하나 뿐은 아닐 거예요.”
익명으로 글을 쓰는 그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생긴 ‘간절함’을 전하기 위해서죠. “소방관이 되기 전엔 아무 걱정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소방관으로서 책무나 사명감에 대해 늘 고민하면서 살게 됐어요.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는 건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는 것처럼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어렵게 닿은 기적이 독자분들께 잠시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8591265
독립운동 외조부 이야기 첫 장편으로 탄생
“나를 키운 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한국인 최초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재미동포 김주혜
10년 전 겨울, 김주혜 작가는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해에만 총 열세 편의 단편을 쓰고 나서야 작가로 인정받았지만 경제적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다음 달 월세 걱정에 발을 동동 굴렀고 배가 고파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굶주림과 가난은 20대 젊은 작가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답답한 마음에 한겨울 공원을 달리던 중 불쑥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눈으로 소복하게 덮인 나무들 사이로 나타난 호랑이 한 마리, 그리고 그를 따라온 사냥꾼의 모습…. 수십 년 세월의 흐름과 등장인물의 군상이 별자리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 길로 집으로 뛰어가 단번에 스무 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2021년 미국에서 출간 직후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 14개국에 번역 출간된 ‘작은 땅의 야수들(원제 Beasts of a Little Land)’은 그렇게 기적처럼 탄생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정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호랑이의 형상이 이 소설에 바친 6년이란 시간의 출발점이었죠.”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600페이지 분량의 이 장대한 소설은 김 작가의 첫 장편이다. 1917년부터 1965년까지 20세기 한국사를 종횡무진하며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기생 ‘옥희’와 사냥꾼의 아들 ‘정호’를 비롯한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풀어냈다. 1987년생으로 아홉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줄곧 그곳에서 살아온 작가의 출세작이라고 믿기 어려운 작품이다. 불현듯 평양과 제주를 넘나드는 한반도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 강한 가족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한 외조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상징인 호랑이를 떠올린 것은 작가로서의 운명에 가까웠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아닌 한국인 작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국내에선 2023년 출간된 ‘작은 땅의 야수들’은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최고권위 문학상인 톨스토이문학상(야스나야 폴랴나상) 해외문학상을 수상하면서다. 한국계 작가가 이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인 데다 때마침 시상식이 열린 10월 11일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던 날이었다. 심사위원단으로부터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에 비견되는 평을 받은 김 작가는 “오늘은 한국문학에 있어 정말 대단한 날”이라며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긍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상금은 한국범보전기금에 모두 기부했다.
지난 6월 신간 ‘밤새들의 도시’ 국내 출간 이후 거주 중인 영국으로 돌아간 김 작가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특별 인터뷰 요청에 그는 흔쾌히 응했다. 한국인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주제로 첫 장편을 출간한 건 무척 용감한(혹은 무모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이 주제여야만 했던 강력한 동기가 있었나?
나 역시 이 소설을 출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더욱이 미국 출판계에서 일을 해봤기 때문에 독자의 눈높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겨울 공원에서 호랑이의 이미지를 떠올린 강력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작품 세계로 끌어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가 대한독립을 주제로 책을 낸 게 재미 문학가 강용흘 선생의 1931년작 ‘초당(The Grass Roof)’ 이후 90년 만이라는 거다.
생의 대부분을 타국에서 살아온 작가가 반세기를 넘나드는 방대한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국문학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동력은 뭔가?
지난 몇 년간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에 사는 사람보다 더 한국인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히 말투가 30년 전 구식이라 타임머신을 타고 온 한국인으로 보이는 것 같다(웃음). 미국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한국 소설과 시를 좋아했다. 특히 ‘아리랑’,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벙어리 삼룡이’는 내 안에서 창작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게 해준 작품들이다. 특히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 극 중 영화제목으로 쓸 만큼 좋아한다.
30년 전 한국을 떠나왔음에도 한국인이라는 강력한 정체성을 품어온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자리하나?
부모님은 애국심이 무척 강하다. 공부나 성공에 대해선 한 번도 뭐라고 한 적이 없지만 태도와 인격에 대해선 엄격하셨다. 그중엔 한국인으로 갖춰야 할 올바른 정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부모님은 수십 년간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1년에 네 번씩 조상의 제사를 지냈다. 나의 정체성은 모국과 조부모님, 부모님이라는 깊은 뿌리에서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자라났다.
인종차별을 감수하면서도 한국 이름을 계속 유지해왔고 한국어도 능숙하다. 타국에서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선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겠다.
이름을 바꿔야 하나 압박감을 느낀 건 딱 두 번이다. 처음 이민을 갔을 때,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할 때다. 많은 미국 회사에선 외국어 이름을 가진 지원자의 이력서는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 이름을 바꾸지 않은 건 자부심 덕분이다. 내 이름 주혜(宙慧)는 ‘우주의 지혜’라는 뜻인데 어렸을 때부터 나의 큰 자랑이었다. 게다가 경주 김씨 시조는 천년 왕조 신라의 마지막 왕이지 않나! 그러니 저 귀한 이름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영어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한글은 어머니가 오리건 한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덕분에 큰 노력없이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 전역엔 한글학교가 자그마치 1000곳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산하 각 지역협의회에서도 한국어와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재외 한인사회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엔 윤봉길·안중근 의사 등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특별히 감명받은 인물이나 사건이 있나?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홍범도 장군이다. 호랑이 잡는 포수 출신으로 ‘날아다니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한반도 북부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기반으로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 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당한 뒤 카자흐스탄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는데 그 당시 기록을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이끈 의병과 식솔들을 지켜냈다. 소설 속 포수 ‘남경수’는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분 한 분 이름을 다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무명의 학생, 민초들이 큰 울림을 줬다. 20세기 제국주의하에서 침략을 받은 나라는 한둘이 아닌데 이처럼 온 국민이 거세게 저항한 경우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작품 속에선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하고 일제에 순응하며 신의를 저버린 인물이 안락한 여생을 살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나마 인물들에게 현실과 다른 엔딩을 안겨줄 충동은 없었나?
‘작은 땅의 야수들’은 고전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독자의 안락함을 위해 행복한 결말을 쓰려는 생각은 없었다. 독자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는 건 허구로 인생의 어둠을 덧칠하는 게 아니라 진실 그대로를 보여주되 그런 어둠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양심도 함께 그리는 것이다. 현실의 안락을 위해 모두가 피하는 비극을 눈 뜨고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임이다.

작품은 한인 입양인, 이민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3·1운동 부분을 읽으며 울음바다가 됐다는 그들과, 누구보다 한국 독자들의 반응이 절실했다던 스스로에게 고국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화인데 처음 한국에 책 홍보를 하러 왔을 때 늦은 밤 호텔 TV에서 방송 종료를 알리는 애국가를 듣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한 사람이 부모로부터 모든 걸 물려받아 자라나듯, 그리고 그 부모를 가장 사랑하듯 나는 한국 땅에서 태어나 형성됐고 한국을 가장 사랑한다. 입양인과 이민 2~3세 한인들도 개개인이 느끼는 바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몸속에 흐르는 한국인으로서의 연대감은 꼭 닮아 있다.
스스로 ‘작은 땅의 야수들’은 “지금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말했는데.
한국은 다방면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나지만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자연환경 파괴, 둘째는 인문교육의 부재다. 특히 인문교육이 붕괴하면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독립적 사고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역사 교육은 국제 상호관계를 이해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그러니 한 세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적으로 큰 손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내 작품을 통해 누군가 자신의 뿌리를 알고 역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나아가 이를 통해 기후위기와 전쟁에 맞설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나에겐 더없이 큰 보람일 것이다.
미래의 한국 또는 한국 디아스포라를 다룬 작품도 구상 중인 걸로 안다.
올해 11월엔 미국과 영국에서 ‘세상 끝의 사랑 이야기(A Love Story from the End of the World)’가 동시 출간된다. 단편모음집으로 그중 몇 편이 한국인 혹은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다. 또한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첫 단편소설 ‘바이오돔(Biodome)’은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이다. 2028년엔 장편 소설 ‘신곡(The Divine Comedy)’이 출간되는데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다. 대한독립 운동의 대하소설을 쓴 작가로서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5월엔 UC버클리대학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이 함께한 심포지엄이 있었고 6월엔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왔다. 광복절엔 블라디보스토크 코리아 축제에 참여한다. 그곳에 가면 100년 전 찌는 듯한 폭염 속 복숭아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늠름한 자세로 사진을 찍던 일꾼들, 갖은 고생을 해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두 보낸 이들, 그리고 광복절이면 어김없이 그런 이들의 무덤에 가 태극기를 꽂고 절을 올리는 추모단체 회원들을 만난다. 대한독립의 정신과 역사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평화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신한 선조들의 희생을 고국에 계신 이들과 함께 추모하고 싶다.
출처 :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인터뷰
https://gonggam.korea.kr/newsContentView.es?mid=a10202000000§ion_id=NCCD_PEOPLE&content=NC002&code_cd=0102000000&nPage=1&b_list=9&news_id=8cb1c28a-e38d-4355-9e4b-76aeddcfbf10
장편 ‘밤새들의 도시’ 출간 톨스토이문학상 작가 김주혜
9세 때 미국 이민, 영어 소설 쓰며 세계적 작가로 부각
뿌리 탐색 첫 소설 이어 발레 모티브로 예술의 본질 탐색
지난해 첫 장편 ‘작은 땅의 야수들’로 러시아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았던 한국계 미국 작가 김주혜(38)가 두 번째 장편 ‘밤새들의 도시'(김보람 옮김· 다산북스) 한국어판을 펴냈다. 그가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러브스토리’라고 밝힌 것처럼 이 장편은 발레를 소재로 그 세계의 핍진한 디테일을 세세하게 살리면서 예술의 본령을 천착하는, 활자로 ‘훨훨’ 풀어낸 무대처럼 뜨겁고 역동적이다.

조선의 야생 호랑이를 소재로 대한민국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담아낸 ‘작은 땅의 야수들’이 14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국제적인 작가로 부각된 김주혜는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오랜 전통의 영국 문예지 ‘그란타’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첫 소설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루었던 그가 이번에는 어린 시절부터 친숙했던 발레를 붙들고 예술을 직면하는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성장한 중심 화자 나탈리아. 1막에서 그는 어린 시절 앞집의 우크라이나인 부부의 아이가 발레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 세계에 입문했고, 입학하기 어려운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들어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는 가장 높이 나는 발레리나였다. 그가 마린스키에서 활약하다 모스크바의 볼쇼이에 스카웃돼 다시 활약을 하는 가운데, 그곳의 험악한 경쟁체제 속에서 견제와 음해에 시달리다 ‘사샤’라는 발레리노와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이 2막이다.
이어지는 3막에서 파리 발레단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연인과도 헤어지고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무대를 떠나는 과정이 전개된다. 결정적인 클라이맥스 무대 ‘코다’에서는 그녀가 다시 2년 만에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마린스키에서 헤어졌던 연인과 ‘지젤’을 추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전개된다. 그들에게 사랑은 이제 별개의 문제다. 예술만이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대에서 체험한다.
3막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발레 무대를 보는 듯하기도 하고, 작가의 말처럼 사랑을 말하는 모차르트의 23번 피아노 콘체르토의 3악장을 활자로 듣는 듯한 구조이기도 하다. 한국 기자들과 만난 그는 “클래식 음악과 발레는 저에게 늘 안식처이자 가장 뜨거운 열망이었다”면서 “이번 소설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 사람의 솔리스트가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는 이 협주곡을 바탕으로 나탈리아의 스토리를 통해 예술가와 예술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아가 “인류가 맞이한 전쟁과 기아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순수예술을 하면서 정직하게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영어로 작품을 쓰는 본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저를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늘 한국인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김지하 시인 같은 분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에게 왜 미국문학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 없었는지, 답을 찾았다. 저에게 본보기가 된 지성인의 콘셉트가 사실은 한국에 있었다. 미국 소설가나 지성인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문학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침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한국 문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한국어로 직접 집필하지 않는 이유는?
“저에게 영어가 더 쉬운 것은 맞는데, 영어와 한국어가 주는 장점은 각기 다르다. 영어는 구조상 문장을 길게 쓸 수가 있다. 긴 문장과 더불어 문단도 길어지고 완성된 글 자체가 더 길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호흡이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 자체가 논리적으로 순서가 진행되기 때문에 긴 문장도 머릿속으로 잘 이어갈 수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글을 좋아한다. 한국어가 저에게 주는 첫 번째 장점은 철학이다. 한국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성질이 주는 가치관과 사고방식, 그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과 따뜻함과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메타포적(은유적) 성질이 강한 한국어는 굉장히 문학적인 언어이다.”
『밤새들의 도시』 ‘2막’
“모차르트는 특히 그렇죠! 그의 음악은 상징으로 가득하니까요. 예를 들어, A장조로 곡을 쓸 때마다 모차르트는 사랑을 묘사했어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식용 금박을 입힌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실망스럽게도 평범한 초콜릿케이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발레의 모든 동작과 움직임도 내재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모차르트의 A장조처럼요.”
| 클래식 음악이 소설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일단 어떤 감동을 느껴야 되는지 알게 된다. 저에게 책은 한마디로 음악을 책의 형식으로 옮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A장조 23번을 들었을 때, 아 저렇게 사랑은 고결한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타락한 것이구나, 이런 걸 느꼈다. 모차르트가 사랑을 말할 때는 A장조로 작곡한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클라리넷 협주곡도 그러하다. 클래식 음악의 구조와 리듬, 각 악장의 테마와 카운터 테마, 감정선, 각기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악기들, 이런 것들을 글로 옮긴다.”
| 발레 소재 소설은 흥행이 어렵다는 주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이유는?
“제가 갖고 있는 예술에 관한 생각을 절규하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만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 예술은 과연 지금 이런 세상에 사치스러운 것인지, 어떻게 하면 예술가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지 답을 찾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름다움은 결코 사랑과 정반대가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운 예술은 결국 사랑과 인간애로 갈 수밖에 없다. 유행을 좇기보다 내 작품이 앞으로 반세기, 1세기가 지나도 독자들이 찾을 만큼 가치 있는지 돌아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춤을 어떻게 추든 간에 세상은 계속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 재가 날리고 불이 타오르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클래스를 듣고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진정한 예술을 실천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예술의 정점은 이타심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쟁을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모두와 친구이며, 이들은 각각 국적이나 출생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자아를 갖고 있다.
『밤새들의 도시』 ‘3막’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 고민되지는 않았나?
“이 소설 집필을 시작했을 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략하기 전이었다. 저와는 무관하게 이렇게 세계 정치의 흐름이 바뀌었다. 저는 단 한 번도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 책을 쓰지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또 다른 검열이다. 저는 제가 목숨을 걸고 증언할 수 있는 소설만 세상에 낸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누가 공격을 하든 떳떳하다. 소설을 읽고 판단해 달라.”

| 아홉 살 때부터 배운 발레는 문학에 어떤 영감을 주는가.
“제 능력은 발레리나에 못 미치지만 감수성이나 천성은 발레리나이다. 마린스키의 유명한 무용수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딸은 너무 이성적이어서 발레리나를 못한다고 말한 적 있다. 발레를 할 때는 비합리적인 예술에 대한 희생과 열정과 애정이 필요하다. 제 천성이 바로 그렇다. 문학에 바치는 열정도 마찬가지고, 제가 느끼는 영감과 희열도 마찬가지다. 문체에도 온도가 있는데 제 온도는 굉장히 뜨거운 편이다. 이런 에너지와 영혼이 발레를 굉장히 닮았다.”
서로 상처를 주고 헤어졌다가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다시 만나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의 춤을 추는 ‘지젤’ 속 나탈리아와 사샤. 그들은 춤이 끝난 후 둘 다 울면서도 서로를 위로하지 못한다. 무대에서 중력을 거스르며 예술에 몸을 맡긴 그들을 두고 김주혜는 “삶의 모든 아름다움과 비극은 ‘어떻게 될 수 있었는지’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의 간극에서 일어난다”면서 “그러나 내가 꼭 말하고 싶은 건, 그 간극이 대부분 아름답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도 끝이 있는 법이다. 사실, 위대하려면 반드시 끝나야 한다. 그러나 삶에는 결코 끝이 없다. 한 가닥의 실이 매듭지어지고 다른 가닥이 끊기더라도, 영원히 흐르는 음악에 맞춰 계속 엮이며, 오로지 무한대의 높이에서만 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밤새들의 도시』 ‘커튼콜’
조용호 KPI뉴스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출처 : 문학뉴스(http://www.munhaknews.com)
후천성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
첫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 출간
시력 잃은 소녀의 솔직함 돋보여
그야말로 ‘손끝’으로 쓴다. 남들이 연필을 쥐거나, 자판을 두드릴 때 그는 점자 전자 단말기로 초고를 쓴다. 이를 PC로 옮겨 음성 프로그램으로 들으며 퇴고한다. 열다섯에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고, 후천성 전맹 시각장애인이 된 조승리(39) 작가 이야기다. 2023년 샘터 문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 3개월 만에 “뭐에 씐 듯” 써 내려간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달)가 최근 17쇄를 찍었다. 신인 작가의 첫 에세이로선 이례적인 기록이다. 지난 4월 두 번째 에세이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세미콜론)을 낸 데 이어, 지난 11일엔 첫 연작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다산책방)을 출간했다. 그는 여전히 금·토·일은 안마사로 일하며 나머지 4일만 글을 쓴다.

지난 23일 광화문에서 만난 작가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아 이렇게라도 일하는 게 좋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세월이 담긴 몸을 손끝으로 느끼는 게 재밌다”고 했다. 그는 작가를 ‘밥 빌어먹기 딱 좋다’고 생각하는 충청도 시골에서 자라, 중소기업 경리를 꿈꾸다 20살 때부터 안마사로 일했다. “늘 마음속엔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8~9년 전부터는 일기 한 자도 써지지가 않더니, 마침내 차올라 터져 나온 것 같다.”
단편소설 4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서 화자는 모두 시력을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는 소녀다. 모든 문장이 조승리의 것으로 읽힌다. 그는 “에세이의 형식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아 허구의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성장통’. 첫사랑을 시작한 소녀는 자신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상대도 자신만큼 망가지길 소원한다. 그러면 “당당히 네 옆에 있을까” 해서다. “나처럼 이렇게 세게 성장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렇게 견디다 보면 희망도 있다.’”
그는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 놓는 게 내 글쓰기의 사명”이라고 했다. 전작인 에세이에서 그는 백두산에 올라 시각을 뺀 나머지 감각으로 천지를 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하다, “근데 날씨가 흐려도 난 괜찮다. 어차피 나는 못 보니까. 남들도 못 보면 쌤통”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을 코앞에 두고 ‘저런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식당 주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더욱 어깨를 곧게 펴고 국을 떠먹는다. 단골 미용실 주인은 그에게 묻는다. “아니 근데 자기는 장애인인데 왜 이렇게 못됐어?”
“책을 읽고 ‘몰랐는데 내 주변에도 장애인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이 많다. 사실 그들은 늘 있었다.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 세상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캄캄한 세상의 일을 밝은 세상에 내놓는 일을 계속하겠다.” 소설을 쓰는 건 그에게 어깨를 곧게 펴는 일이다.
출처 : 조선일보
‘모든 계절의 물리학’ 낸 김기덕 박사
獨서 초전도체-반도체 등 연구하며
야구배트 등 일상속 물리학 풀어내
“아무도 이해못하면 소리없는 외침”

“물리학은 마술이 아니에요. 미스터리할 게 하나도 없죠.”
일반적으로 ‘물리학’ 하면 다소 난해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재직 중인 물리학자 김기덕 박사(35)는 이러한 이미지는 사회적 통념이라고 반박한다. “지금까지 물리학의 트렌드는 너무 미스터리한 것들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등은 쉽게 다가서기 어렵죠. 물리학을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리 보낸 겁니다.”
최근 신간 ‘모든 계절의 물리학’(다산북스)을 출간하며 한국을 찾은 김 박사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 박막기술팀장이자 초전도체, 반도체를 연구하는 고체물리학자다.
신간에는 물리 중독자의 렌즈로 본 세상이 가득 담겼다. 야구 배트나 커피포트, 러닝화, 노이즈캔슬링 등 일상 어디에나 있는 물리학 원리를 소개하려 했다. 그는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아내를 타깃 독자라고 생각하고 썼다”며 “원고를 먼저 보여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할 때까지 계속 보완했다”고 했다. 책에 실린 삽화 54개도 태블릿PC로 직접 그렸다.
김 박사의 주된 연구 과제는 수 나노미터 두께의 양자 물질 ‘박막’을 만드는 것. 그런 바쁜 와중에도 대중 저술 활동을 병행하는 이유에 대해 “물리학은 하나의 교양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물리학에서 ‘이게 중요해요’라고 말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리 없는 외침에 불과하죠. 가령 국내에서 ‘LK-99’ 초전도체 진위 논란이 있었을 때도 물리학의 기본적 지식만 있으면 오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초전도체는 역사가 100년이 넘은 연구 분야예요. 비슷한 스캔들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분야죠.”
그가 속한 막스플랑크 연구소 역시 대중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만 39명을 배출한 세계적 연구기관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리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을 꿈꾸는 사람들, 또 저와 함께 물리학을 연구할 이들이 줄어가고 있는 셈이죠. 관심 갖는 사람이 많아져야, 그중 1%라도 물리학자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는 이를 위해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더 늘어나길 소망했다. “과학이 하나의 취미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을 보면 굉장히 열정적이거든요. 몇 시에 어디를 봐야 무슨 별이 보이는지 줄줄 꿰고 있죠. 아마 별을 보는 즐거움, 어느 위치에 어떤 별이 뜨는지 아는 즐거움 때문일 텐데요. 물리학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50421/131454336/2
‘이제야 보이네’ 재출간한 김창완
“옛 원고 정리하다 다시 만난 청춘
자신을 가두거나 포기하면 곤란
허탈감-불안도 일상 속 아름다움”

“오래된 옛얘기겠지 했는데…, 나도 잊고 지내던 ‘청춘’을 동네 카페에서 마주한 느낌이에요.”
가수 김창완(71)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글’로 표현하며 생애를 지내 왔다. 1977년 전설적인 록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한 뒤 48년 동안 싱어송라이터로서 노랫말을 지어 왔다. 30여 년간 라디오 진행의 오프닝 원고도 항상 직접 썼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처럼, 김창완 역시 음악과 함께 글로 다진 길에서 우리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온 예술가다.
19일 출간한 책 ‘이제야 보이네’(다산북스)는 1995년 그가 썼던 첫 산문집을 다시 다듬고 손봐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딱 30년 만에 새로 단장한 산문집을 핑계로 21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낮술 한잔’을 청해봤다.
- 남루한 노래도 남루하지 않게”
이번 산문집은 원래 ‘집에 가는 길’(문예마당)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었다. 이후 2005년 ‘이제야 보이네’(황소자리)로 개정판을 냈고, 다시 20년 만에 새 글 8편과 그림 20점을 더해 펴냈다. 30년의 세월을 관통한 산문집은 취업을 걱정하던 청춘기부터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장년기까지 일상에서 느낀 삶의 소중함이 오롯이 담겼다.
“예전 원고들을 정리하다 보니 지나온 청춘이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나도 까맣게 잊고 있던 옛 모습을 다시 알게 돼 반가웠죠, 하하.”
가수와 배우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김창완은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닮고 싶은 어른’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된다. 2023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69세 가수의 깊은 내공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지난해 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도 “매일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동그라미 같은 하루도 아름답다”며 청춘을 위로했다.
“그렇게 불린다고 해서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에요. 다만 할 수 있는 위로를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는 “위로와 격려에 목말라 있는 청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그들의 결핍이 때론 희망의 씨앗이 되고, 인간의 근본을 파고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개정판에 새로 실린 시 ‘내 노래’를 보면, 반세기를 가수로 살아온 그의 음악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하다. ‘50년 동안 부른 남루한 노래/소매가 나달나달하고 단추가 떨어지고 … 그걸로 애도 키우고/그걸로 봉양도 하던/남의 얘기 같은 내 노래.’
김창완은 “내 옛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끔 ‘이미 남루해진 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그 노래를 남루하지 않게 부르려고 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 “불안도 허탈함도 아름다울 수 있어”
이번 산문집에선 그간 김창완이 좀처럼 내보이지 않았던 ‘연한 속살’도 드러난다. 30년 가까이 투병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나 2008년 세상을 떠난 막냇동생(김창익)을 잃은 상실의 아픔도 배어 있다.
뭣보다 그의 노랫말처럼, 책은 일상 속의 먹먹한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은 뒤 빨리 일어서는 무뚝뚝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긴 이별 앞에 있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묻는다. 그는 “길고 긴 인생에서 짜장면 한 그릇의 순간. 이 짧은 순간이나마 몇 번이나 될지”라며 그 시간을 회상한다.
“90세가 된 어머니를 보면 지금도 예뻐요. 공연도 보러 오실 정도로 건강하시니까 항상 고맙고 장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김창완은 오래된 원고 속에서 흘러가 버린 삶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다가올 일상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 그는 “책에 있는 것은 내가 지나온 흔적일 뿐”이라며 “책 바깥에 있는 나의 부끄러움, 두려움, 근면과 목마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떠올렸다.
“삶의 방향성을 잃었다면 ‘일상 속 아름다움’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가두거나, ‘나는 안 맞아’라며 미리 포기할 필요 없어요. 허탈함 속의 나를 발견하거나 괜한 불안을 느끼는 것도 일상 속 아름다움 아닐까요.”
출처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50325/131272740/2
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번역 출간…영국서 50만권 팔린 베스트셀러
이야기 수집하는 청소 도우미 그려…”평범한 이들에게도 특별한 이야기가”

황재하 기자 = 평범해 보이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청소 도우미 재니스는 사실 뛰어난 제빵 솜씨를 갖추고 납땜인두와 전동 공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청소 장비를 직접 만드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뛰어난 실력으로 신망받는 재니스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자기 머릿속의 도서관에 수집한다.
오페라에 매료돼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무작정 가출해 런던으로 떠나 성악가가 된 이야기, 괴한에게 공격당하는 남성을 구해줬다가 그 남성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이야기,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내고 장의사가 되는 이야기까지.
재니스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는 좀체 털어놓지 않는다. 그런 재니스가 새로운 고객인 90대의 괴팍한 노인 ‘B 부인’ 댁의 청소를 맡게 되는데, 이 부인은 재니스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 자네의 이야기는 뭐야?”
재니스는 이 질문에 당황하며 답변을 피하는데, B 부인은 대답을 다그치는 대신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매료된 재니스는 차츰 이 괴팍한 부인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기만의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이른다.

국내 번역 출간된 영국 작가 샐리 페이지의 장편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의 줄거리다. 이 책은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한 청소 도우미의 삶을 보여준다.
최근 연합뉴스와 화상으로 만난 페이지는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가 있고, 겉보기에는 평범할지라도 놀라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소설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재니스는 청소 도우미라는 직업 때문에 그리 주목받지 않으면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집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며 “이야기를 찾고 듣는 데는 아주 적절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는 곧 ‘인생’ 또는 ‘사람’과 동일시된다. B 부인이 재니스에게 “모든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페이지는 “이야기는 곧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야기에는 각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담겨 있고 자기 인생 속 최고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작가가 되기 전 여러 직업을 가졌고 여러 사람과 만나왔는데, 평범하게 수다를 떨다가 상대에게서 갑자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소설에 등장한 여러 이야기는 대부분 실화에 바탕을 뒀다고 한다. 한 경찰관과 경찰서를 찾아온 여성이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 사랑 이야기는 작가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다.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이 소설 속에 담긴 여러 이야기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페이지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런던 광고업계에서 일했으며 여가 시간을 활용해 플로리스트 과정을 공부하다가 꽃집을 열었고, 꽃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데뷔 소설인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2022년 영국 출간(원제 ‘The Keeper of Stories’) 당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원고를 다 쓰고도 출판해줄 회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는 “끝내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도 계속 쓸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에 이르렀다”고 당시를 돌아보며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글 쓰는 자체를 사랑하니까 계속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될 때만 해도 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출판사에서 마케팅 비용도 많이 배정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6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국에서만 50만권 이상 팔렸다.
페이지는 “이 소설은 ‘평범해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그 점이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한 독자는 ‘자존감이 낮았는데 재니스를 만나 위로받았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했다.
데뷔작 이후 페이지는 영국에서 세 편의 소설을 더 펴냈지만, 한국에 작품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소감도 전했다.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한국 독자들이 제 이야기를 즐겁게 읽고 이야기에서 울림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250329046200005?input=1195m
우리는 가난한 삶과 죽음에 비극이란 명패를 붙여
특별 취급하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다룰 게 아니라
분명한 현실로 인지해야 합니다.

자살하는 아이들, 개똥과 뒤엉켜 사는 남자, 홀로 죽어 겨우내 썩다가 봄에 발견된 노인, 쓰레기장보다 더러운 집…. 사고 현장에서 세상의 고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도하는 사람, 119 구급대원. 8년 차 소방관 백경 작가가 구급차를 타면서 마주한 삶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생에 관한 이야기를 첫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를 통해 꺼낸다. 사회의 아픔과 타인의 고통을 ‘특별한 비극’이 아닌 ‘세상의 일부’로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진솔하고도 뼈아프게 써 내려간 글들을 읽고 나면, 그간 우리가 마주하기 두려워 외면해 온 세상의 아픈 얼굴들을 조금은 더 용기 내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김금희 작가님의 추천사를 빌려, “죽음과 가난 그리고 사고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백경 작가님과 이 책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요. 작가님을 처음 접하는 채널예스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백경이라고 합니다. 저는 소방관이고, 올해로 8년 차 구급대원입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다른 작가님들처럼 제 삶에는 두드러지는 서사가 없습니다. 공부 마치고 군대 다녀온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인데, 그냥 하는 일이 평범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의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들에 대해 끼적인다고 생각합니다. 소방서에 들어온 뒤로 죽음과 가난, 사고는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적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그것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책 『당신이 더 귀하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어떻게 쓰게 되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책 소개를 해주세요.
부끄럽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구급차를 탄 뒤로 제 마음이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구급차를 타며 마주하는 매일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제 글쓰기의 처음이었습니다.
그 매일은 언뜻 비참해 보이지만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당신이 더 귀하다』는 그런 인간의 삶을 위에서도 아래서도 아닌,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과 트위터(엑스)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계시죠. 덤덤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작가님의 시선이 인상적이에요. 한편으론 애써 덤덤하고자 노력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 담백한 시선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더 극대화시키는 것도 같은데요. 소방관으로서 모든 일에 100%의 감정을 쏟아낼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주변을 바라보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글에 담아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덤덤하려는 건 아닙니다.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덤덤함을 ‘갖추었다’라기보단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덤덤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혹 읽는 분들이 거기서 슬픔을 느낀다면 저의 상실에 알게 모르게 공감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제 스스로는 덤덤함이 부끄럽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마주할 때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느끼려 합니다. 그렇게 해야 겨우 제 안의 인간다움이 무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도 같은 자세로 쓰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목도한 것들을 담다 보면 뼈아픈 이야기를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한 글을 쓰실 때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신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여러 고민들과 부침 속에서도 계속해서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성공과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굳이 세상의 아픈 구석을 들추어 낸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벌써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길 멈추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세상의 아픔에 등돌려서는 안 된다는 저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우리는 가난한 삶과 죽음에 비극이란 명패를 붙여 특별 취급하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다룰 게 아니라 분명한 현실로 인지해야 합니다. 손 내밀어 보듬어야 할 상처가 바로 곁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세상은 좀 더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소방관들의 자살률이 순직률보다 높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겪는 (내·외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안고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마음의 상태는 모든 소방관이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픕니다. 그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생긴 흉터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요. 자살률이 순직률보다 높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이나 음주,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아픔이 해소될지 모르겠지만 상처로부터 잠시 시선을 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안고 살아가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참는 거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소방관들은 잘 참거든요.
머릿속이 복잡하면 달리기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책 속에서도 삶을 달리기에 빗대어 “사는 건 그냥 달리기일 뿐이라고, 맨몸이든 잘 차려입었든 나아가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님께 달리기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저에게 달리기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달리기 위한 달리기. 살을 뺀다든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특별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땀 흘려 한 발 한 발 내딛는 행위 그대로가 목적이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돈, 명예, 행복, 사랑 같은, 개개인을 이끄는 목표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도록 애써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실제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어떤 뚜렷한 목표 덕에 빛나는 게 아닙니다. 삶은 달리기처럼, 살아내는 그대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안녕. 난 소방서에서 일하는 구급대원이야. 초면부터 반말지거리인 게 맘에 안 들면 뭐라 떠드나 지켜보는 심정으로 봐도 좋고, 상관없다면 그냥 편하게 내 얘길 들어줬으면 좋겠어. 미리 말하지만 세상이 살 만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야. 세상은 지옥이야. 특히 요즘은.
우리끼리는 요새가 자살 시즌이라고 해. 왜냐하면 이제 정말 봄이거든. 내가 소방서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사람들은 겨울엔 자살을 많이 안 하더라고. 왜 그럴까 고민해 봤지. 아마도 봄이 오면 날은 풀리는데 사람 마음의 온도는 차가운 그대로여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 그 괴리를 견디기 어려운 거야.
비슷하게 비가 오는 날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 사람은 따뜻할 때 더 많이 죽어.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래.”
_195쪽
‘오늘 자살하는 너에게’라는 편지 글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사람이 많아요. 이 글이 쓰여진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 글은 마음이 넘쳐서 글이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에서 깬 날이었습니다. 새벽 네 시쯤이었을 거예요. 그날따라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다섯 시간 뒤면 출근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보게 되리란 강렬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새벽 공기에 온기가 스민 걸 느꼈거든요. 불쑥 봄이 찾아오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적었습니다. 유리병에 넣어 바다에 띄운다는 마음으로. 그 편지가 다만 한 사람의 삶이라도 죽음으로부터 건져냈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독자에게 이 책을 건넨다면 어떤 한 마디와 함께 건네고 싶으신가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읽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전할 방법이 없네요.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면 이렇게 말씀드리며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내 안에 사람의 뿌리를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어서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배부르게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못다한 말이 있다면 마지막 인사와 함께 전해주세요.
개인의 시점으로 쓴 책이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어요. 이 지면을 빌려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나의 소중한 소방관 동료 여러분, 늘 안전하시고 건강하세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세상의 그림자 속에 숨어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나가길, 어둡고 서늘한 시절을 회복시키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80741
공동번역자 시미즈씨… 대학서 한국어 전공 후 기자 근무
블라디보스토크-간도 등 직접 찾아
“탐욕에 눈 먼 조준구도 사정 있어
사람을 한쪽만 볼 수 없단 걸 배워”

토지 일본어판 번역가 시미즈 치사코 씨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주갑’을 꼽으며 “어디 매인 게 없는 자유인이자 속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생전 박경리 선생님도 주갑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토지’는 불륜, 사랑, 질투, 시기, 살인, 치정, 복수에 이르기까지 700여 명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K드라마’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20권(사진)을 최근 공동으로 완역한 일본어 번역자 시미즈 치사코 씨(56)는 ‘토지’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교정 때만 (전권) 3번을 읽었고 번역 작업 때까지 포함하면 세기 어려울 정도로 ‘토지’를 탐독했다”는 그는 공동 번역자인 요시카와 나기 씨와 함께 진행한 토지 20권 전권의 일본어 번역 작업을 올해 마쳤다. 2014년 번역에 착수한 지 10년 만. 일본어판 ‘토지’의 마지막 권은 지난달 30일 현지에서 출간됐다.

일본어판 전권 출간을 나흘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만난 시미즈 씨는 여러 감정이 혼재된 느낌이었다. 그는 다양한 사투리 표현과 방대한 역사적 배경에 번역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작품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탐욕에 눈이 먼 조준구도 아들 조병수를 통해 보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70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사람을 한쪽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두 번역자가 교체 없이 뚝심 있게 번역했기에 주인공 서희 등 등장인물들의 어투 등을 일관성 있게 옮길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미즈 씨는 서희가 광복 소식을 듣고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결말 장면에 빗대 “10년의 대장정을 마쳤을 때 어깨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일본 오사카 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요미우리신문에서 15년간 기자로 일한 그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황선우) 등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그는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품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군을 비롯해 중국 간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등을 종횡무진 누비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송정 푸른 솔은’을 부르며 의지를 다진 중국 용정의 비암산 소나무도 보고 왔다고. 시미즈 씨는 “제가 ‘토지’ 번역가니까 갔지 그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이젠 역사를 볼 때 일본, 한국만 보는 게 아니라 아시아를 보게 된다. 아마 ‘토지’의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토지’ 독자들을 대상으로 답사 사진들을 보여주며 강연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토지’에 소위 미쳐 있던 그였지만 처음에는 번역을 망설였다고 한다. ‘토지’가 반일(反日) 소설이라는 일각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번역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중 당시 토지학회 회장이던 최유찬 연세대 교수를 만난 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최 교수님이 ‘토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반일 소설로 읽는 건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를 얻었어요. 실제 번역해 보니 일본인을 나쁘게 그리는 장면도 있지만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작가가 일제와 개인을 구별해 그리려고 한 것이 보입니다.”
‘토지’의 일본 내 관심은 높다. 1, 2권이 동시 출간된 2016년 일본 도서관협회 추천도서로 지정됐고,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 등 주요 신문이 비중 있게 보도했다.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엽서를 보내왔는데 ‘눈이 점점 안 보이고 곧 죽을 수도 있으니 번역을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시미즈 씨는 올 8월 마지막 퇴고 작업을 하며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3주간 머물렀다. 당시 근처 버스정류장에 박 작가의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작가들을 엄마처럼 지켜보는 따뜻한 마음을 표현한 시였어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이 거기 계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촌 골짜기를 떠나 도시로 가면/그들도 어엿한 장년 중년/모두 한몫을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우습게도 나는/유치원 보모 같은 생각을 하고/모이 물어다 먹이는/어미 새 같은 착각을 한다’(박경리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중에서)
작성자 :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출처 : 동아일보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 위해 첫 방한
“독자들 따듯한 ‘오지라퍼’ 오베에 공감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 부담 컸지만
익숙함서 벗어나 계속 새롭게 시도 중”
아이패드가 뭔가. 컴퓨터인가, 아닌가. 어느 날 스웨덴의 한 애플 매장에서, 한 중년 남성이 젊은 점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컴퓨터를 사려고 가게를 찾은 남성은 아이패드라는 제품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점원이 아이패드를 추천하자 자신이 생각하는 컴퓨터와 차이를 묻고 따지다가 마침내 언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남자는 정말로 화가 나 있었고, 상황은 정말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프레드릭 배크만은 남성과 점원 간의 언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사람들 간 논쟁이나 다툼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 그였다. 노상에서 싸움을 하거나, 자동차에서 내려 다투는 상황 역시. 어느 순간, 배크만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언쟁 장면이 소설이 될 수도….

잡지사 동료 요나스 크램비는 웹사이트에 ‘오베’라는 남자가 미술관에서 티켓을 사다가 아내가 개입할 때까지 분노를 폭발하는 것을 본 이야기를 블로그 글로 썼다. 그런데 아내가 우연히 크램비의 블로그를 읽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삶이야말로 당신이 사는 삶이잖아!”
잡지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2011년, 배크만은 오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능숙하지 않던 그는, 잡지에 자신의 짜증과 폭발에 대한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바로 “나는 오베라는 남자다”. 많은 독자들이 오베라는 캐릭터에 반해 이야기를 더 써볼 것을 권했다. 그는 블로그를 계속 써나가면서 자신이 매력적인 허구의 캐릭터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최민우 옮김, 다산책방·사진)의 주인공, 그러니까 깨알 같은 규정에 집착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혼돈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그럼에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잃지 않는 ‘오지라퍼’ 오베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들이 옳으리라. 그는 그 점을 결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회성이 없다’고도 했다. 오베는 이 말이 자기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싹싹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제정신이 아니었다.”

59세의 아저씨 오베는,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규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고 지지를 보내준 아내 소냐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죽기를 바라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죽기로 다짐할 때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번번이 일어난다. 새로 이사를 온 이란인 여인 파르바네와, 정보기술(IT) 계열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 ‘멀대’ 패트릭, 그들의 어린 두 딸들, 아내 소냐의 도움을 받기도 했던 과체중 청년 지미 등 ‘머저리 같은’ 별난 이웃들 때문이다.
오베는 새 이웃의 차를 고쳐주기도 하고, 눈더미에 묻힌 갈 곳 없는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고, 기차에 치일 뻔한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하거나 남을 도우면서 죽음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된다. 이상한 이웃들 때문에 자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오베,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닥쳐오고, 마침내 영웅적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소설 곳곳에선 유머와 코믹한 상황이 마치 좀비처럼 출몰한다. 유머와 단막극 같은 에피소드, 죽은 아내를 향한 사랑의 기억을 따라 느리게 가다 보면 빵빵 터지던 웃음은 어느새 감동의 눈물로. 소설 ‘오베라는 남자’는 2012년 출간된 이후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만 무려 84만부 넘게 팔렸고, 전 세계 25개국에서 번역 출간돼 280만부가 판매됐다. ‘스칸디나비아 루아르’와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작품 세계가 당도한 순간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오베라는 남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왜 사람들은 고집불통의 괴팍한 남성 오베에 열광하는 것일까. 작가의 여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스웨덴의 젊은 작가 배크만을 최근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을 위해 방한해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만났다.

―오베라는 남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아이디어를 오래 품고 있었다. 오베는 규정에 집착하는 인물로, 사람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아나키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앞으로 나가는 자동차 엔진을 좋아한다. 아나키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는 아티스트처럼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 없고 체제를 따라야 한다. 오베는 소설 말미에서, 굳이 우주에 나가 외계인과 싸우지 않더라도,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현대사회를 자신의 적으로 상정한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일종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한 오베가 독자에게 큰 공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 줄 알았다면 주인공 이름을 오베라고 짓지 않았을 것이다. 오베라는 이름은 스웨덴에서만 흔한 그 세대의 이름이다(웃음). 스웨덴에선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오베가 너무 스칸디나비아적인 캐릭터이고, 성격이나 유머를 다른 문화권에서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그런데 번역되고 나서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서른 살 전후 ‘오베라는 남자’를 썼을 때 사람들은 묻더라. 왜 제 나이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남자를 상정했느냐고. 당시 나이 차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저와 오베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공통점이었다. 저는 어려서 친구가 거의 없고 늘 외로움에 시달려 왔는데, 이런 지점을 녹여내고 설명하려 했다. 저는 또 ‘이상한 사람’에 관심을 가져왔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 다른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에 관심이 있다. 저는 그 지점에서 글을 쓴다.”
1981년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태어난 프레드릭 배크만은 2012년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그는 이후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베어타운’, ‘불안한 사람들’, ‘위너’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많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 세계에서 15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첫 작품 ‘오베라는 남자’가 계속 언급돼 작가로서 부담감이 많을 텐데.
“만약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처음에 미슐랭 스타 세 개를 받으면 최악일 것이다. 노력하겠지만, 앞으로 내리막만 있고 목표로 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저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부담감은 있었다. 실망시키지 않을까. 과연 반응이 좋을까. 의구심이 커졌다. 그래서 다른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로서 경력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의 경우 에이전트가 절대 출간하면 안 된다고 말리더라.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출판사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대로 차기작을 썼다면 작가로서의 성장은 거기에서 멈췄을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계속 새롭게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집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쓴다. 중간에 음악도 듣고, 종종 게임도 하기도 한다. 오후 늦게 아이들을 픽업해 집으로 데려오고 저녁을 차려준다. 귀가한 아내와 아이들이 꿈나라로 가면, 배크만은 다시 글의 세계로, 상상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곳에선 죽음을 완고하게 의식하면서 오히려 삶을 더 충실하게 살고 있는 오베도….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종종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924513914?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