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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경영

수신에서 치국까지, 정조가 묻고 세종이 답하다

2012년 07월 0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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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수신에서 치국까지, 정조가 묻고 세종이 답하다

조선을 대표하는 위대한 두 성군의 대화가
최초로 이루어지다!
조선의 두 개혁 군주, 세종과 정조가 용안(龍顔)을 맞대고 나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논하다

『왕의 경영-수신에서 치국까지, 정조가 묻고 세종이 답하다』는 2010년 8월부터 운영된 세종과 정조의 트위터 가상계정에서 시작하여 2012년 1월부터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연재한 원고를 최종적으로 보완하여 엮은 책이다. 1418년에 즉위한 세종과 1776년에 즉위한 정조는 35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만난 적도 없는 까마득히 먼 할아버지와 손자다. 하지만 저자의 기발한 상상으로 오늘날, 최초로 세종과 정조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수신에서 치국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주며,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학문에 뜻을 품고 정진한 젊은 정치철학자 김준태의 첫 책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대부분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세종과 정조를 온전히 복원해 내고 싶었던 저자의 소망을 충실히 반영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세종과 정조의 ‘업적’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추구하고, 이루고자 했던 바’를 좇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종과 정조라는 두 찬란한 별을 앞으로 나아갈 등대로 삼아야 한다고 말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개혁 군주 세종과 정조의 만남은 오늘날 우리에게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의 철학과 사상이 어때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1. 정조가 묻고 세종이 답하는 대화 형식
두 임금의 대화는 우연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세종실록』과 『정조실록』,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를 읽으면서 주요 대목을 정리하고 있던 중,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치를 하면서 세종의 시대를 그리워하곤 했던 정조이기에 저자는 만약 이 두 임금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떨까 상상했고 이를 트위터에서 실현했다. <이산>이나 <뿌리 깊은 나무> 등 드라마로도 익숙한 이 두 조선 왕에게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졌고 두 임금의 팔로워 수는 2만 오천 명이 넘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지진이 일어났을 때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음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나, 재난을 당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다.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라. (세종13.5.2/19.12.12)”라는 세종대왕의 멘션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화제를 몰며 리트윗 되기도 하였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좋은 말씀들이 수많은 트위터리안에게 리트윗되었다. 저자의 이 기발한 시도로 세종과 정조는 21세기의 사람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시작했다.

2. 정교한 주석과 풍부한 해설로 읽는 조선의 통치 철학
이 책에서 이루어진 세종과 정조의 대화는 모두 실제 어록과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포용(包容) 장에서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사사건건 정조의 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신하들 때문에 화가 난 정조가 세종에게 조언을 구하자 세종은 임금이 신하를 다그치면 신하들이 진언(進言)을 할 통로를 막아버린다며 정조를 꾸짖는 것이다. 이는 정조 24년(1800년) 5월 30일, 오회연교(五晦筵敎, 정조가 연석筵蓆에서 내린 교시)를 발표한 후 신하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신하 심환지(1730∼1802)를 불러놓고 격정을 토로한 기록/세종 앞에서 “전하께서 명철하지 못하시니 어찌 신이 조정에서 벼슬을 하겠습니까.” 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고약해(1377∼1443)를 용서한 사건/사사건건 세종의 정책 추진에 발목을 잡던 신하 허조(1369∼1439)를 감싼 세종실록의 기록이 교차하며 어우러진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각각의 원전 기록을 창작을 가미하여 엮은 후 인용된 부분을 따로 표기했다. 또 독자들이 이 기록의 역사적 맥락과 사실 관계를 오해하지 않도록 주석에 원문과 번역문을 정리했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석 자체만으로도 원전을 즐길 수 있으며 정조와 세종이 남긴 말씀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세종은 표현의 자유를 신하들은 물론이고(93p) 백성에게도 열어 두었으며(80p) 공법을 재정비할 때도 사전 여론조사를 실시하고(28p), 출산을 앞둔 여노비들이 걱정되어 백일간의 휴가를 준 후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는 등(119p) 지금 돌이켜봐도 매우 선진적인 복지를 실현하였다. 저자는 시간과 공간,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옷만 갈아입었을 뿐 인간의 본질과 감정의 흐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3. 백성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정치를 행함이다
『세종실록』 3권, 1년 1월 6일의 기록을 보면 “임금이라는 자가 백성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오히려 조세를 징수하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다. 하물며 지금 묵은 곡식이 이미 다 소진되어서 창고를 열어 진휼미를 나누어준다고 해도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백성이 있을까 염려되거늘, 도리어 굶주리고 있는 실태를 파악하고, 조세를 면제해주지 않는다면, 대체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해줄 일이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爲人君者 聞民且飢死 尙徵租稅 誠所不忍 況今舊穀已盡 開倉賑濟 猶恐不及 反責租稅於飢民乎 且遣監察 視民饑饉 而不?租稅 復有何事爲民實惠乎)라는 세종대왕의 말씀을 볼 수 있다.
세종과 정조는 타고난 군주였고 당대에 성인으로 추앙받던 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밝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무를 살피느라 몸이 쇠약해지는 것도 몰랐다. 두 임금은 하늘이 내려준 임금이라는 자리에 사명감이 깊었고 지도자의 도덕성과 자기반성을 언제나 강조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백성을 사랑했다. 그들을 치열하게 몰고 간 것은 오로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모범이 되기 위한 마음이었다. 두 임금은 이 책에서 자기관리, 공부, 복지 등 나를 다스리는 것을 넘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까지 세세한 고민들에 대한 해법과 방향을 치열하게 주고받는다.

4. 조선의 두 성군에게 인생의 길을 물은 젊은 학자
저자는 2003년 정조의 정치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이래, 10년 동안 『세종실록』과 『정조실록』『홍재전서』를 거듭 읽었다. 리더십에 관련한 책들이 외국 인물에 국한되어 있고 『한국정치사상사』의 목차가 개화기부터 시작하는 것에 의문을 가진 이 젊은 학자는 이 의문이 계기가 되어 이제껏 리더십과 철학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역사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연구소 홈페이지 상에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 책은 대중과 원활히 소통하는 새로운 역사 인문서의 첫걸음이 될 것이
  • 쪽수: 344쪽
  • ISBN: 9788963709062

목차

  • 서문


    정치政治 “올바른 다스림을 이룩하는 요체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법치法治 “법을 집행하는 까닭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가 없어지기를 바라서이다.”


    인재人材 “각기 그 재목의 특성에 맞추어 사용하면 천하에 버릴 재목이란 없다.”


    현장現場 “저들은 실로 죄가 없다. 저렇게 만든 자들이 죄인이다.”


    포용包容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게 하라.”


    복지福祉 “곡식은 풍년이 들기를 기다려 보충하면 되겠지만, 한 번 백성을 잃고 나면 장차 어떻게 보충하겠는가.”


    농사農事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인생人生 “타고난 재주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반성反省 “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엄격嚴格 “모든 빛나는 공적은 작은 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성공成功“태산의 정상에 올라서 다시 또 다른 태산을 찾아 오르라.”


    공부工夫 “만 줄의 글을 열 번 읽는 것은 열 줄의 글을 만 번 읽는 것보다 못한 법이다.”


    유조遺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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