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호로 하여 펼쳐지는 이번 《에픽 #09》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앨리스를 읽으며 환상의 나라를 꿈꾸었던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의 원더랜드가 휩쓸고 간 지난 몇 년을 떠올려 보게 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세대와 젠더를 비롯한 여러 집단 사이의 갈등이 유난히도 많았던 것 같은 2022년 가을, 과연 앨리스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우리도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환상 문학의 정점에서 왜곡된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재미나게 비틀어 보여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지금의 현실이 곧 환상이고 모험이라는 아이러니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는 원더랜드의 다음 이야기를 경이로운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우리가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진다.

《에픽 #09》의 커버스토리 ‘i+i’는 시인 안미옥이 바라본 일본의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의 예술관과 여러 활동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작가의 문장과 음악가의 음률을 병치시키며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행위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한다. 그리고 쓰나미가 덮친 학교에서 본래의 소리를 잃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연이 조율해준 것’이라 말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다큐멘터리 한 장면에 주목하며,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결국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묘파해 낸다.

part 1의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에서는 시인 권창섭과 소설가 정지향이 경험한 상실을 바탕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누군가를 잃는 상실을 다시금 마주하며 써 내려가는 더없이 다정하고 쓸쓸한 편지는 글을 읽는 독자에게로 다음 편지의 배턴을 넘겨준다. 정신분석가 박영진은 라캉의 정신 분석 이론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의 남자와 남성, 남성성과 남자다움에 수반되는 폭력과 상처를 탐구한다. 뒤이어 구술록에서는 이주영 PD가 해방 이후 최초의 민중 항쟁이었던 대구 ‘10월 항쟁’ 유가족들의 오랜 시간 묻혀 있던 목소리를 담았다.

part 2 버츄얼 에세이의 ‘if i’에서는 뮤지션 천용성이 룸메이트의 고양이와 겪는 갈등과 애정의 곡선을 그려낸다. 이번 ‘1+1 리뷰’는 문학을 아끼는 편집자들의 공간으로 채워졌다. 김정택, 배윤지, 이상화 편집자는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평범함 속에 감춰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번 part 3의 픽션 파트에서는 권여선, 문진영, 배명훈, 오선호, 차현지 소설가가 지면을 빛내주었다. 단연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다채롭고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며 작품 각각의 뚜렷한 색채를 보여준다. 작가 의외의사실이 그래픽노블로 바라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번 호의 대미를 장식한다.

• 쪽수: 328쪽
• ISBN: 9772733807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