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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더 큰 빛으로

한화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의 사업 철학

년 월 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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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한화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의 사업 철학

“나에게 사업은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오직 조국을 지키고 키우는 역사적 사명이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던 길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만 했던 길…

우직하고 찬란한 뚝심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온 한 사람,
불꽃처럼 타오른 한화그룹 창업주 현암 김종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사업의 이유, 기업가의 소명

휴전 이후 처참해진 폐허 위에서 출발한 한국 경제는 비참했다. 무너진 국토 위에서 국민들은 그저 굶어 죽지 않기만을 소망했다.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도 어느 누군가는 지금보다 더 부강한 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품었고 그 일에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내던졌다. 한화그룹 창업주이자 화약으로 조국의 미래를 밝힌 현암 김종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당장 돈이 되는 사업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업’만을 고집했고, 그가 혼을 바쳐 뿌린 사업보국의 씨앗은 건강한 나무로 자라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크고 안락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화약과 에너지, 방산 등의 실물 유산 못지않게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중요한 유산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척 정신,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룬 창의와 혁신 정신, 그리고 우리도 세계 무대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란 정신적 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그런 현암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현암의 사업 철학과 기업가로서의 소명, 다방면에 걸친 사회공헌 활동과 인간적 면모를 다각도로 조명한 최초의 결과물이다. 변치 않는 초심과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국가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현암의 삶은 편법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단 1%의 거짓도 허용되지 않는 화약의 세계에서 100%의 정직함으로 사업을 일구어낸 그의 ‘정도(正道)’ 정신은 오늘날 기업인과 비즈니스맨들에게 경영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나는 해방된 조국의 화약계를 지키는 등대수가 되겠다!”
[사업보국] 스스로 조국 근대화의 도화선이 되다

해방 이후 조선 땅에는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오직 화약만을 고집하는 현암에게 주변 사람들은 ‘위험하고 돈 안 되는 화약 대신 우리도 삼백산업에 참여해 한몫 보자’는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현암은 흔들림이 없었다. 떼돈이 벌린다 해도 공익에 반하는 일이면 거들떠보지 않았고, 설사 공익에 반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소비성이거나 사치성 사업이라면 손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요.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랍니다!”

1942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한 이후 현암은 화약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고, 화약을 지키기 위해 피난마저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화약이 실린 적재함에 올라 목숨을 걸고 공비가 출몰하는 길 위를 달리기도 했다. 그 바탕에는 ‘화약계를 자신의 손으로 지키겠다’는 변치 않는 신념과 ‘사업을 통해 국가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의 노벨’이자 오늘날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을 맨손으로 일군 불굴의 창업주 현암 김종희는 대한민국 화약산업을 본격적으로 태동시킨 근대 화약사의 산증인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 경제계를 빛낸 거목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발자취와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그런 현암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경제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의 선구자적 철학을 정리해 오늘의 독자들에게 전한다. 자신보다는 기업을 기업보다는 국가를 우선했던 현암의 사업보국 정신과, 화약처럼 정확하고 정직하게 쌓아 올린 그만의 ‘정도 경영’ 철학은 오늘을 살아가는 기업인과 비즈니스맨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나에게 사업은 조국을 지키는 역사적 사명이다!”
[사업확장] 신념으로 더 나은 세상의 길을 열다

현암은 창의와 혁신을 기반으로 미래를 기획하는 최고의 전략가였다. 석유화학이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 현암은 석유화학산업이야말로 조국 근대화에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이에 자신이 먼저 정부에 사업을 제안하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행보를 펼쳤다. 또한 정유사업 진출을 꾀하던 중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화력발전사업이라는 묘안을 내 마침내 제3정유공장 사업자로 선정되며 차별화 전략에도 성공했다. 이러한 현암의 노력들은 국가적 과제였던 공업화의 기초를 세우는 기반이 되었고, 그가 뿌린 씨앗들은 훗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성장 전략에 밝은 현암은 사업을 확장할 때에도 ‘사업보국’이라는 가치를 늘 최우선에 두었다.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하는 데 기계공업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10년 적자가 예상된다’는 기획실의 검토를 뒤로하고 신한베어링공업을 인수,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국내 기술력 향상에 이바지했다. 한편 1973년에는 오직 기간산업만을 고집하던 현암이 서비스업에 진출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사업보국’이라는 가치 실현의 일환이었다. 국가 정책에 적극 협조해 관광산업 진흥에 기여할 서울프라자호텔을 짓고, 위기에 처한 낙농가를 살리기 위해 대일유업(현 빙그레)을 인수하는 등 현암은 경영자로서 대의명분이 충족되면 자신의 고집을 과감히 꺾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약인은 화약처럼 정직하고 정확해야 한다!”
[사업철학] 위험하고 힘들어도 옳은 길만을 고집하다

물질의 속성상 정해진 때와 장소에서 정확하게 터져야 하는 화약처럼, 현암의 경영 철학은 화약의 속성과 같이 정확하고 정직했다.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어도 옳은 길만을 고집했던 현암의 ‘정도 경영’ 철학은 강도 높은 감찰 조사에서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만큼 깨끗한 청렴의 문화를 꽃피웠고, 사소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키는 신용과 의리의 뿌리가 되었다. 또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시기 절대 권력 앞에서도 옳지 않은 일에 대해 ‘No’라고 외칠 수 있는 강단의 기반이 되었다. 현암은 직원들에게도 항상 ‘정직’과 ‘정확’을 강조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편법을 싫어했던 그는 ‘화약’이라는 독점사업에 임하면서도 늘 한 치의 티끌 없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실천했다. 특히 직원을 뽑을 때에는 혈연·학연·지연을 철저히 배제했다.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추구하는 헌신의 자세로 경영에 임했던 현암의 면모는 1977년 벌어진 ‘이리역폭발사고’에서 그 빛을 발했다. 이리역폭발사고 당시 현암은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전 재산인 90억 원을 피해 보상금으로 내놓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한 기업가가 실천한 살신성인 정신은 존폐 위기에 몰린 기업을 살렸고,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로했다. 이러한 현암의 결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기업인에게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사회환원] 불꽃, 더 큰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다

현암이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열어가는 일 못지않게 열중한 것이 있다. 장차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육성하는 것, 즉 교육사업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한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현암은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늘 ‘국가를 위해서라도 돈이 없어서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되풀이했다. 그런 가치관을 지녔던 현암의 큰 뜻과 포부는 천안북일고등학교의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그밖에도 현암은 예술·스포츠 분야의 인재들을 돕는 일에도 정성을 쏟았다. 뛰어난 실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화가들이나 생활고 때문에 자신의 예술 세계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1970년대부터는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을 위해 사격·승마·복싱·골프 등의 종목에 투자하며 각 분야의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게 도왔다.

현암의 유산이자 오늘날 밤하늘을 환히 밝히는 불꽃놀이처럼, 현암이 남긴 사업적 유산과 철학은 밝게 빛나는 것이었다. 적자를 각오하면서도 기계공업에 뛰어들었던 용기,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화약과 에너지사업을 끝까지 이루었던 신념, 평생의 꿈이었던 육영사업을 펼치고 예술·스포츠 분야를 지원한 봉사 정신에 이르기까지 그는 운명에 굴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기업가로서 보낸 29년의 여정 자체가 대한민국 현대 경제사에 유의미한 기록이었고, 현암의 59년 삶 전체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한 울림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왜 사업을 하는가? 나는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일평생 현암이 치열하게 묻고 답했던 질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 역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빛나는 혜안과 어떤 좌절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추천평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바르고 옳은 길인가?’ 현암은 이 질문에 스스로가 떳떳하게 답할 수 없다면 제아무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라 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설사 처음에는 돈을 많이 못 벌고, 시작은 조금 어렵더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명분이 있으면 현암은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는 늘 기업보다는 국가를 앞세우는 투철한 공인으로서 묵묵히 애국을 실천한 기업가였다.

현암 김종희가 세상에 태어난 지 어느덧 한 세기가 지났다. 기업인으로서 뜨겁게 불태웠던 세월을 뒤로하고 피안의 세계로 떠난 지도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대한민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현암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기업가 정신과 사업적 유산은 이 순간에도 여전히 기업 경영의 금과옥조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남긴 진정한 ‘사업보국’ 정신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길이 될 것이다.
- 박영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쪽수: 400쪽
  • ISBN: 9791130694528

목차

  • 프롤로그│스스로 조국 근대화의 도화선이 되다


    1부 도화선 | 나의 사업


    1장 [어두운 시대를 밝힌 불꽃] 사업보국의 사명을 키우다


    [01] 가난한 식민지 소년, 불꽃을 품다

    소년을 키운 신학문과 신앙심|명문 경기도상에 입학하다|나라 잃은 설움이 폭발하다


    [02] ‘다이너마이트 김’의 탄생

    마침내 화약인의 길로 들어서다|조선화약공판의 지배인이 되다|미8군을 거래처로 삼다

    국내 화약 생산의 꿈을 키우다|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지켜낸 화약


    [03] 대한민국 화약산업을 개척한 선각자

    삼백산업을 외면하고 택한 외로운 길|운명처럼 다가온 인천화약공장 복구|도쿄대 도서관에서 찾아낸 설계도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의 쾌거|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일등 공신 | 국민을 위한 선물, 연화


    2장 [세상의 길이 된 신념] 한화 100년의 여정이 시작되다


    [방산] 반세기 전 뿌린 K-방산의 씨앗

    방위산업 진출의 계기가 된 1·21사태|국가 방위산업체로 지정되다|여수 제2공장 건설|K-방산에 이어 우주산업까지


    [기계] 10년 적자를 감수하고 뛰어든 기간산업

    ‘사업’과 ‘사명’을 고민하다|화약 이외의 업종에 처음 도전하다|열차와 차량용 베어링을 국산화하다


    [화학] 멀리 내다보고 한발 앞서 도전하다

    선진 공법의 국내 최대 규모 PVC공장 건설|현암이 겪은 첫 번째 경영난|국내 석유화학 진출의 교두보가 되다


    [에너지] 될 때까지 도전해 뜻을 이루다

    눈앞에서 놓친 제2정유공장 사업권|국내 유일 수도권 정유사, 경인에너지 출범|세 차례 도전 끝에 완성된 석유화학 콤비나트


    [호텔·낙농] 대의를 위해 꺾은 고집

    본사 터에 지은 서울의 랜드마크|농가를 도와 국민 브랜드를 만들다


    [육영] 인재를 키워 나라에 보답하다

    일류 시설에 일류 교사로 꾸린 학교|반세기 만에 부활한 ‘북일’|2대에 걸친 육영사업


    [이리역폭발사고] 절망의 끝에서도 놓지 않았던 사명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꿈, 반도체|일생일대의 재난과 마주하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단|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


    [10대 그룹 도약·제2의 창업] 위기를 넘어 다시 비상하다

    2년 만에 극복한 이리역폭발사고|두 차례 오일쇼크의 파고를 넘다|무역과 건설로 해외 영토를 넓히다

    마지막까지 사업보국으로 살다|제2의 창업으로 되살린 불꽃


    2부 불꽃 | 나의 철학


    [정도] 화약은 정해진 때와 장소에서 터져야 한다

    현암의 다이너마이트 정신|절대 권력 앞에서도 ‘NO’라고 말하다|회장님을 꾸짖은 경비원


    [청렴] 1000만 원을 손해 봐도 10원 도둑질은 안 된다

    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다|회사에서 제일 청렴했던 구매부의 전통|부당한 거래는 거부한다


    [자강불식] 군살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든다

    직접 녹음해 오디오북을 만든 기업 총수|배움엔 나이가 없고 모두가 스승이다|시계처럼 정확했던 사람


    [추진력] “하면 된다”

    “당신은 스스로 적극적인가?”|통대의원 선거 전국 1위 당선


    [관성타파] 밥은 은행 대리라도 만나서 먹어라

    독점사업의 무사안일을 경계하라|구전으로 전한 『불모지대』의 경영 철학


    [인재] 사람 경영이 기업 경영이다

    신입사원 인사카드를 외우다|북일고 교정에 능수버들이 없는 이유|회장님의 넥타이 선물


    [안전] 안전에 99퍼센트는 없다

    우리의 하루는 안전으로 시작해 안전으로 끝난다


    [신의] 돈은 잃어도 신용은 잃지 마라

    내 돈만큼 남의 돈도 귀한 줄 알아라|신의를 저버린 상술에 전쟁을 선포하다


    [검소] 무희(無喜)라고 불리다

    신문지 귀퉁이가 늘 찢어져 있던 이유


    [이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현암이 평생 고수한 기부의 원칙 3가지


    3부 빛 | 나의 삶


    [01] 인간미가 넘쳤던 사람, 김종희

    프로 바둑기사도 인정한 비상한 기억력|손을 잡으면 정이 ‘뚝뚝’ 흐르던 사람|“여보, 당신은 내게 성모마리아나 마찬가지요”

    딸이 선물한 묵주를 평생 간직한 아버지|성공회 신자 ‘디도’로서의 삶


    [02] 백년대계를 세웠던 육영사업가

    북일사립학교의 빚을 북일고의 빛으로|‘북일사관학교’의 전설|북일고 야구단 창단의 비화


    [03] 진심을 다한 민간외교관

    일본 재계에서 더 유명한 현암|친형제처럼 지낸 리처드 워커 미국대사|미8군 골프장 프리패스

    ‘엿가위’ 선물 외교|반세기를 이어온 그리스 명예총영사


    [04] 문화·예술·체육 후원가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을 후원하다 | 가난한 화가의 숨은 조력자|강태영 여사의 ‘아단문고’


    에필로그 | 그의 하늘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해제의 글 | 현암 김종희 회장의 경영이념과 기업가 정신

    사진으로 보는 현암의 발자취

    현암 김종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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