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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2022년 02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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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나의 아버지, 1만 권의 책, 그리고 길바닥에서의 탈출에 관하여
“막다른 벽을 마주할 때마다
답은 항상 아버지의 서재에 있었다.”

윌리엄스는 이 회고록에서, 피 튀기는 싸움질이나 하며 여자친구를 함부로 대하고 잘하는 건 농구밖에 없는 비쩍 마른 십대에서, 한 명의 어엿한 철학도이자 작가로 탈바꿈한다. 이 모든 일은 그의 아버지 덕분이었다.
_타라 맥캘비, 『뉴욕타임스』

이 책은 잘못된 대중문화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영혼과 방향을 잃을 수 있는지로 시작하여,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는지, 그리고 거기에 가족의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냈다. _자바리 아심, 『워싱턴포스트』

동시대에서 ‘가장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진보적인 비평가’로 꼽히며 『하퍼스』, 『르몽드』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세계적인 문화비평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십대 시절만 해도 책은 위험물로 취급하고 거칠고 잘나가는 형들을 동경하던 길바닥의 망아지가, 어떻게 거리의 질서를 거부하고 헤겔과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배움의 희열을 느끼는 철학도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을 각오로 쓴 처절한 배움의 연대기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팬우드. 문화적으로 별다른 유산도 갖지 못했고 시내에 서점 하나 보이지 않는 이 지역은 뜻밖에도 매우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곳이다. 바로 미국과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는 문화비평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의 이야기다. 그는 동시대에서 ‘인종 문제에 관하여 가장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진보적인 비평가’(『더 크리틱』)로 꼽히며 『뉴욕타임스매거진』, 『하퍼스』, 『르몽드』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런 그가 이곳 팬우드에 살던 십대 시절만 해도 피 튀기는 싸움질이나 하며 여자친구에게 손찌검을 하고 잘하는 건 농구밖에 없는 껄렁껄렁한 소년이었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이 책에는 한때 길바닥의 망아지였던 저자가 주어진 어두운 환경을 극복하고 어엿한 철학도로 거듭나는 과정이 적나라할 만큼 진솔하게 담겨 있다. 다만 윌리엄스가 이 책에서 드러내려는 것은 한 불굴의 인간이 이루어낸 ‘개천의 용’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개천의 용 따위를 꽃피울 의지도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사회적 현실을 당사자이자 경험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1980~90년대에 걸친 저자의 학창시절은 거친 힙합 문화가 군림하던 시대였다. 갱스터랩을 들으며 지식과 호기심을 금기시하고 힙합만을 유일한 진리로 떠받들던 또래 흑인 사이에서는 몸짓과 말투로 깡패를 흉내내는 것이 삶의 필수 요소였다. 특히 흑인 소년이라면 굳이 원치 않아도 무릇 흑인에게 요구되는 터프함을 표출해야만 학교라는 야생의 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우리’가 아닌 사람들 앞에서 강해 보이고, ‘우리’ 사이에서 정상인으로 보일 수 있었으니까.

또래를 지배하고 있던 정신적 빈곤에 마찬가지로 흠뻑 젖어 있던 윌리엄스는 점차 길바닥의 질서를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명의 나’로서 존재하기로 한다. 세계로 나 있는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여태껏 자기에게 활짝 열려 있던 문을 닫고자 한다. 그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진흙탕 한가운데 외딴섬처럼 떠 있던 아버지의 서재,
그곳은 ‘진짜’ 세계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저자에게는 주변의 친구들에게는 없던 특별한 아버지가 있었다. 클래런스 리언 윌리엄스. 아버지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출신의 흑인으로, 그 시대의 여느 흑인들이 그러했듯이 아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살아왔다. 그는 흑인이 교육을 받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라는 말이 오가던 시대에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끝내 사회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가히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후 학자로서의 경력을 그만두고 입시학원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책을 향한 사랑(또는 강박)이 극진했고, 그의 좁은 집을 1만 5천 권 이상의 책으로 빽빽이 채웠다. 그 모습은 흡사 “인테리어 디자인의 문법은 물론이고 물리학의 법칙마저 시험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자연히, 아버지는 저자에게 어릴 적부터 지성의 함양을 요구했고 일대일로 앉아 공부를 가르쳤다. 아들을 위해 닌텐도 게임기와 밤샘 파티 대신에 삼단논법, 공간 추론, 어휘력 향상, 연산, 독해 등으로 구성된 체계적인 고강도 학습 계획을 세심하게 마련해두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윌리엄스는 밖에 나가서는 또래 집단의 거친 문화에 휩쓸리는 한편, 집에서는 여지없이 아버지 앞에 앉아 얌전히 공부하는 이중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열여덟 살 즈음에는 동네의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는 ‘진짜’처럼 보이는 동시에 아버지까지 만족시키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를 책 속에 파묻히게 한 아버지의 태도가 결코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줄 줄 알았고,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조언을 들려줄 줄 알았다. 저자는 이런 아버지를 “악역을 맡고 싶지 않아 내적 갈등을 겪는 온화한 독재자”였다고 표현한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 철학도의 길을 걷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고 미적 추구의 수단으로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저자는 아버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도 좁은 집을 1만 5천 권의 책으로 포위시킨 따뜻한 독재자가 실은 즐겁게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 펜을 쥐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아들아. 밑줄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냐. 뭐라도 지식을 건져서, 뭐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건져서 내 인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였지.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나한테 뭐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그래서 나한테 필요한 지식은 모두 책 속에 있을 테니까 책만 열심히 읽으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래, 책이란 걸 그냥 예술 작품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지.” (225~6쪽)

윌리엄스는 스스로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가 똑같은 책을 즐겁게 읽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닫고 부채감을 느낀다. 그렇게 자신이 한 세대 이전의 흑인인 아버지가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유롭다는 사실은 심히 비극적이면서도 심히 희망적이기도 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씌운 굴레,
다시 말해 ‘문화’에 있었다

『배움의 기쁨』의 탄생은 저자가 뉴욕 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교수로부터 자유 주제를 골라 강경한 입장에 서서 논평하라는 과제를 받은 그는 자신이 목격한 힙합 시대 흑인 문화의 타락에 관한 글을 단숨에 써냈고, 이 논평이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면서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이 주제에 관한 심각한 담화가 존재함을 발견한 윌리엄스는 해당 논평을 책으로 진전시킨 『배움의 기쁨』에서 흑인 사회가 안고 있는 정신적 빈곤이 피부도, 색깔도, 모발의 질감도, 심지어 돈도 아니고 문화에서 비롯한다고 고발한다. 문화 때문에 지독한 제약을 받고 호되게 속아왔으며, 그 최악의 굴레를 흑인이 스스로에게 몸소 씌워왔다는 매우 도발적인 이야기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도, 흑인 사회에 뿌리내린 정신적 빈곤, 피상적 사고, 도덕적 미성숙, 기계적 순응이야말로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진짜 주제임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강경한 주제와 별개로, 저자는 이 책이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개인적인 회고록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읽는 순간 빠져드는 만드는 한 청년의 서사가 문학적인 재미를 선사하기에 소설을 읽듯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동시에 주요한 사회적 관점을 환기하기 때문에 독자는 이 책을 가볍게도 그리고 무겁게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첫 책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타락한 힙합 문화에 취해버린 또래 집단을 향해 보내는 절연장이자, 주변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감사 편지이자, 우리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독창적이고 강력하고 매력적인 문화를 쌓아올린 이전 세대 흑인들을 위한 헌사이다.”

2010년 원서 출판사와의 인터뷰 요약

Q. 책을 쓴 이유가 있다면?
혹독한 좌절감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이었고 힙합은 더 깊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디플로맷츠나 솔자 보이 같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식한 뮤지션들이 문화와 방송을 지배했고, 그때 내 안의 무언가가 툭하고 부러졌다. 나는 뉴욕 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고 한 교수님이 자유롭게 주제를 골라 강경한 입장에 선 논평 기사를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나는 도서관으로 곧장 향했고, 내가 목격하던 힙합 시대 흑인 문화의 타락에 대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온 천 단어를 서너 시간 만에 단숨에 써냈다.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에 ??워싱턴포스트??에 실리게 된 그 글은 찬성과 반대 어느 쪽으로든 대단히 열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심각한 담화가 존재함을 발견했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마무리할 즈음이 되니, 글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버지에 대한 감사 편지였으며, 지금의 우리가 문화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것, 랩으로 떠들고 있는 것, 일상적으로 하고 것들을 치욕스럽게 여길 이전 세대의 흑인들에 대한 헌사가 되어 있었다. 이 책은 나의 또래 집단을 향한 절연장으로 시작하여 아버지를 향한 러브레터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Q. 당신은 어릴 적부터 BET로 대표되는 흑인문화와 래퍼들에게 빠져들었다. 어떤 매력 때문이었을까?
리처드 라이트(작가), 조세핀 베이커(가수), 루이 암스트롱(재즈 음악가)의 시대 이후로 모든 세계를 흑인 문화에 유입시킨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문화는 독창적이며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악랄한 노예제도와 채찍질의 상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 제임스 볼드윈의 산문, 에어 조던 운동화, 블루스, 재즈, 문워크, 갱스터 랩에 이르기까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흑인 힙합이 지배하는 문화가 가진 ‘유혹적’인 성격이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문화가 내 또래 흑인들과 나에게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가했다는 점이며, 흑인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딱히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확고하게 믿는 바에 따르면, 그 이유는 우리 흑인이 힙합을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하게 접근한 데 있다. 우리는 “진실되게 굴어야” 한다며 기를 썼고 힙합이 지배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진정한 흑인으로 존재하는 전제조건 정도로 여겼다. 반면에 흑인이 아닌 사람들은 일종의 아이러니로서 힙합을 더 건강하게 포용할 수 있었다.

Q. 자라는 내내 아버지의 교육을 받았다. 지금도 그 덕분에 스스로 힙합 문화의 악영향로부터 벗어난 것을 훌륭하게 여기는 듯하다. 당신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어떤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자랑스럽다. 솔직해질 필요는 있겠다. 나의 아버지는 두려운 역경을 마주하며 주변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내가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웃, 좋지 못한 롤모델이었던 고등학교, Hot 97, BET, MTV 등 24시간이고 집안으로 쏟아지는 끈질기고 강력한 선전 캠페인을 상대해낸 것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헛소리의 불협화음 속에서 그의 메시지가 들릴 가능성이란 크지 않았는데도.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찰스를 제외하고는 책에서 언급한 어느 동창과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지 않다. 찰스는 나에게 형제나 다름없고 나의 부모님에게도 아들이나 다름없다. 너무나 잘 지낸다. 최근에 미국에서 손꼽히는 로스쿨을 졸업했다.
주변에서 듣거나 페이스북에서 본 바에 의하면, 어떤 동창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지 않다. 지금보다 훨씬 잘될 수 있을 만큼 똑똑했던 친구들인데 그리되지 않아 슬프다. 물론 아버지의 격려와 지도가 아니었다면 찰스도 나도 이 정도나마 성장하지 못했을 것을 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문화였다. 우리 중 누구도 지적인 것을 “진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책에서 이야기한 대부분의 동창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예외 없이 대단치 못한 일자리를 갖고 있다. 그나마 몇 명은 잘 풀렸으나 몇 명은 심각하게 실패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몇몇은 어이없게도 여전히 래퍼가 되기를 꿈꾼다. 걔네들이 전부 범죄자이고 약물 중독자여서 그런 걸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짚어주고 싶다. 반면 잠재력의 쓸데없는 낭비가 있었을까. 무조건이다.

Q. 아버지에게 1만 5천 권의 책이 있었지만, 책에는 당신께서 한 번도 즐거움을 위해 읽은 적이 없다고 쓰여 있다. 책을 향한 당신의 태도와 아버지의 태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버지는 칠십대인 지금도 매일 아침 신문을 펼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읽기를 워낙 좋아하는 분이다. 하지만 좋은 책을 읽으며 휴식을 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읽기란 그에게 늘 ‘일’일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실용적인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느꼈다(심지어 소설을 읽으면서도). 흑백 분리 정책이 시행되던 1930년대 남부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찍부터, 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누구도 자기한테 가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와 달리 나는 순수하게 심미적인 면에서 문학을 읽는 것이 대단히 즐거운 일임을 체득하며 자랐다.
대학에서 그리고 이십대에 나는, 미적 추구로서 그리고 공상적인 깨달음을 위해 책을 읽었고, 그것은 다소 호화롭기는 하나 꽤 소중한 경험이었다. 요즘은 작가로서, 그리고 문장을 깊게 사유하는 사람으로서, 예전보다는 훨씬 더 실용적으로 읽고 있는 듯하다. 나의 일에 기술적이고 고무적인 지식을 더하기 위해 읽는다 할까. 그러다보니 조금은 아버지의 독서와 비슷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거기에서 아름다움, 적어도 아름다움과 비슷한 것을 찾으려 한다.

Q. 『배움의 기쁨』에서, 당신은 힙합을 “문화”, “세계 속에 존재하는 방식”, 일종의 종교, “아편”, “포획자” 그리고 때로는 그저 음악으로 정의한다. 지금 당신에게 힙합의 의미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힙합이란 여전히 그 모든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내게도 그러한 것처럼. 나 자신의 삶에서는 그 어떠한 것보다, 힙합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사운드트랙’으로서 존재한다. 미래가 아닌 과거를 뜻한다. 성장기를 기억하게 하는 대상이라면 그 무엇이든 각별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힙합은 그 성질상 기본적으로, 이 세계와 진지한 관계를 맺는 데의 장애물로 본다.

Q. 카녜이 웨스트나 제이 지 같은 슈퍼스타 래퍼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음악적으로나 형식적인 관점에서 힙합을 비판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이나 바람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첫째로,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둘째로, 나는 이미 그들의 활동이 매우 흥미롭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존중할 만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는 제이 지나 카녜이 웨스트 같은 음악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무언가가 특히 있다고, 그들의 재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D’Evils”이나 “Can I Live?” 같은 노래에서 제이 지가 구사하는 말장난은 하버드나 예일 대학교 학생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카녜이 웨스트로 말하자면, 그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능 있고 독창적이고 유명한 음악가 아닌가.
우리가 어떤 재능을 발견하고 경이로워하는 것을, 받침대 위에 모셔두고 얼빠진 듯 바라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들이, 단지 자신들의 영리함을 전시하고 그것을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일보다 그리 또는 전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윤리, 관심사, 가치, 가사의 내용 면에서, 래퍼들이 듣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은 거의 없지만 크게 해를 끼치는 일은 많다. 외우기 쉽게 우리를 사로잡아 자신을 경탄하게 하고 그들이 생산하는 것을 갈망하도록 하지만 그 안에 영양가라고는 없다. 즉, 그들을 소비하는 것이 영양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조앤 디디온이나 제임스 볼드윈을 한 시간 소비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Q. 아버지는 당신의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버지는 작가의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고, 언제나 작가가 되기를 권했으며,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극진히 애썼다. 그러니 이 책 자체가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나의 방식이다. 책을 아버지에게 권하며 많이 긴장했는데, 그가 극도로 사생활을 존중하는 사람이며 내가 이 회고록에서 천박하고 부끄럽게 보일 내 이야기를 많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형에게 그랬던 것과 달리, 나는 원고를 금방 아버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교정쇄가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한 부를 전했을 때, 그는 서재로 들고 가더니 쉬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게다가 필기까지 하면서! 그는 사실 관계의 작은 오류 두 가지를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외에 아버지는 즉각적으로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냥 앉아서 풋볼 경기를 보았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굉장히 행복해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게임 내내 즐거운 기분으로 웃고 어머니와 나한테 계속 농담을 건넸으니까.
앞표지에서 뒤표지까지 적어도 세 차례는 읽고 난 그 교정쇄는 아주 밑줄 투성이가 되었다(역시 또다시 밑줄을!). 우리는 하이데거의 사상이라든가 좀더 철학적인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는 책의 후반부에 반영되었다. 이런 것이 아버지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군중 속에 휩쓸리는 일이 없었다. 그는 어떤 풍경에도 속하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 내내 스스로를 규정하려, 그리고 남에 의해 규정되지 않으려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 역시 그 영역에 도달하게 된 것을 아버지는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 쪽수: 312쪽
  • ISBN: 9791130680019

목차

  • 서문


    1부_이중생활

    흑인다움의 발견

    사악한 램프의 요정

    진흙탕을 뒹구는 망아지

    내가 누구라고 반대하겠는가?


    2부_결별

    굴레를 벗고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3부_자유롭게

    서광이 비치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우물이 세상의 전부

    모든 비밀은 힘을 잃는다


    후기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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