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존한다는 착각』은 묘하다. 이 책은 16세기 북극 항로를 개척하려 했던 네덜란드 항해자 빌럼 바렌츠의 행적을 벼리로 삼는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논픽션 작가인 지은이의 시선은 항해 자체보다, 그 항로 주변에서 자신이 마주한 일곱 동물에게 향한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던 바렌츠와 탐사대는 생물 다양성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동물은 식량이거나, 바다코끼리 상아처럼 값비싼 전리품을 제공하는 사냥감이었다.
중세 동물지에서 영감 받았다는 이 책은 생물학과 생태학, 민담과 역사, 탐험담과 도시의 사건들을 한데 엮는다. 지은이는 자신의 기억과 감상까지 풀어놓고, 장르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짧은 단상과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방식은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첫 장은 일각돌고래의 엄니에서 시작된다. 2019년 영국 런던 테러 당시 한 시민이 근처 건물에 귀중품으로 전시된 일각돌고래 엄니를 뽑아 범인을 제압한 사건이 중세 유럽의 유니콘 신화와 교차 편집된다. 사실 일각돌고래의 ‘뿔’은 길게 자란 엄니일 뿐이지만, 중세 말 유럽에서는 귀중한 ‘유니콘의 뿔’로 여겨졌다. 바렌츠의 탐사대도 ‘유니콘의 뿔’ 하나를 가져와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후 노르웨이레밍, 유럽뱀장어, 검은기러기, 북극곰, 순록, 왕게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주인공이라기보다 인간의 욕망과 무심함, 폭력과 착각을 비추는 매개에 가깝다. 레밍의 집단자살이라는 유명한 속설은 1950년대 디즈니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연출한 장면에서 비롯되었다. 왕게는 소련이 사할린에서 옮겨와 바렌츠가 묻힌 북극권의 노바야제믈랴 제도 부근에 방류한 이후 주변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1930년대 검은기러기 급감 사태는 스탈린이 설치한 강제수용소 사람들이 살기 위해 막대한 수를 사냥한 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이하게도 지은이는 분노나 단죄, 존경과 상찬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소개하고 대조하며 배열한다. 라투르가 제창한 ‘사물의 의회’를 소개하면서도 자연을 대변하는 언어조차 인간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식한다. 각 생명체는 저마다 다른 감각 세계 속에 살아간다는 윅스퀼의 ‘움벨트’ 개념과 인간만이 자신의 움벨트 너머를 상상하는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강연도 인용한다. 동시에 인간이 다른 동물의 움벨트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점도 빼놓지 않는다.
_중앙일보 기사 중 일부